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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10. 2018

코끝에 슬픔, 그러나 행복

슬픔이 차오를지언정, 그럼에도 행복할 권리. 


'엄마 내가 아까 미아내' 


일요일 저녁 8시. 친정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어코 둘째 아이가 나를 울린다. 

한껏 꾹 참고 있다가 터져 흐르는 눈물은 이렇게 순간적이다. 나은지 일주일이 겨우 지났을 뿐인데 다시 장염과 모세기관지염에 걸려 버린 둘째는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았지만 요 근래 연신 먹은 것들을 게워 내거나 설사를 하기 일쑤다. 어제도 그랬다. 


실상 우리 네 식구는 친정엄마의 생일을 축하하러 갔다지만 되려 점심과 저녁 두 끼 모두를 근사한 집 밥을 얻어먹었다. 도착하자마자 이미 차려져 있는 정갈한 한 상차림 위 갈비찜을 보자마자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기 시작했다. 미안함과 슬픔은 하루 종일 나를 쫒아올 걸 마치 예견하는 것처럼.  


- 엄마.... 

- 니 먹으라고 한 거야. 하여튼 고기 요리는 내 적성에 안 맞는다니까. 

-.... 임신할 때 되게 많이 먹었었는데... 엄마. 지금 또 해주네. 
- 별 수 있냐. 딸년이 힘 빠져 있는데. 너 병자 같아. 요새. 핏기 없고 골골대고. 좀 챙겨 먹어 이것아. 
-....... 엄마 생일인데 내가 생일 같네.



케이크에 생일 초를 꽂고 불을 켠다. 아이들의 앳된 새는 발음으로 그렇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 생일 추카하미다. 생일 추카하미다. 사랑하는 하머니. 생일 추카하미다.


리듬도 발음도 온통 엉망인 아이들의 노래가 거실에 울려 퍼진다. 
어느새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게 보인다. 덩달아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려 했지만 꾹 참아 본다. 요 근래 쌓여있던 알 수 없는 스트레스와 오른쪽 팔목의 통증,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심장의 두근거림은 어느새 노래에 휩쓸려 조금씩 가시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이라는 일상이 조금씩 저물고 가고 있었다. 

- 이거 가지고 가. 
- 엄마....
- 정음이 죽 끓였다. 애 잘 메겨.  일한다고 제대로 메기기나 하겠냐. 나 지방 가 있으면 너 혼자 아등바등할 거 아냐. 
-.... 나도 반찬 만들어 놨어요. 걱정 마요.
- 가져가. 애 잘 보고. 정음이 약 잘 발라줘라. 똥구멍이 아주 원숭이 엉덩이처럼 시뻘겋더라.
..... 네. 매번 고마워. 
- 가 어서. 
-..... 미안해... 엄마. 생일인데...
- 됐어. 별거냐 생일이.  



그녀의 생일은 사실 별거였다. 내게는. 
그만큼 챙겨 주고 싶었던 특별한 어떤 하루였으니까. 돈이든 선물이든 마음이든, 뭐든지 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 해 주고만 싶었으니까. 



안 먹겠다 해도 매해 케이크를 사는 건 내 쪽이었다. 매년 그녀의 생일에 편지 적어 주는 즐거움이 컸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어느새 몇 해째 제대로 된 손편지 한 통 적지 못한 나였다. 언제나 대체하는 건 인터넷 뱅킹의 용돈 송금 내역뿐. 언젠가부터 돈으로 때우기 일쑤다. 마음으로 치자면 돈 만한 게 없다 우스갯소리로 하시곤 하나, 그 돈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어떤 감정들은 도대체 어떤 숫자로 대체될 수 있을까 싶다. 

저녁 8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친정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인터넷뱅킹으로 용돈을 보내며  SMS 문자메시지에는 달랑 '미안해. 축하해'라는 말을 적으려다가 그것도 말아 버렸다. 그때였던 것이다. 아이가 날 울려 버리던 순간은.  

- 엄마. 내가 아까 미아내

아이는 칭얼대고 친정엄마의 생일엔 되려 챙김을 받아 버리고. 
이 모든 상황이 미안하고 슬퍼서. 나는 나에게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행동은 마음과 달리 엉뚱한 곳으로 튀어 버렸다. 기저귀를 갈지 않겠다고 똥을 찬 채 여기저기 울며 데구루루 바닥을 굴러다니는 둘째에게 소리를 질러 버렸던 것이다.

북받쳐 오르던 마음은 사실 아이를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었는데. 
아이는 잘못한 게 없는데,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니었을 텐데. 되려 내게 결국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 내가 아까 미안하다고.. 그리곤 낮잠을 자지 않은 탓에 그대로 차에서 골아떨어져서 뭐라 중얼대고 있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마에 흘러내린 앞머리를 쓰다듬다가 나는 끝내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한꺼번에 흘리기 시작했다. 하루만큼 참아냈던 눈물은 기어코 폭포수처럼 쏟아져 흘러내린다. 조용한 저녁이면 요즘은 늘 그렇다. 



- 거봐.. 그니까 애들한테 화를 왜 내. 
-... 뭘 알아. 자기가. 
- 요새 힘든 거 알아... 그래도 장모님도 애들도. 다 혜원이 좋아하잖아. 
-......
-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가 옳았다. 
아무 이유 없이 날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해주는 존재가. 이렇게 곁에 살아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마음에 가시지 않은 어떤 슬픔이 사그라들지 않은 채 담아두고 있는 내가 원망스럽다. 바보 같다. 행복을 누릴 자격은 어쩌면 일상의 작은 행복들과 소중한 것들을 알고, 지키고, 끝까지 소중하게 다룰 줄 아는 이들이 비로소 가지는 것일 텐데. 난 여전히 미숙하다. 코끝에 이미 다가온 행복을 잊어버리기 쉬운 요즘의 나는.. 



그래도. 이게. 지금 내가 겪는 나만의 행복이라면. 
코끝에 슬픔이 차오를지언정, 행복이 또한 같이 숨어서 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잘 지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슬퍼만 하기엔 흘러가는 이 시간이 아깝고 미안하다. 헌법 10조에도 적혀 있는 걸 이제 알면서도. 



헌법 10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미안해서라도. 나는 온 힘을 다 해내고 싶어 진다. 

순간의 감정들이 슬픔으로 가득 차오를지언정. 내가 가진 이 소중한 행복을 지켜내 보고 싶다. 기억하고 싶다. 잊고 싶지 않다. 여전히 먹먹한 감정이 잠드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 코를 내가 보지 못하는 것처럼. 코 끝에 이미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행복'을 모른척하지 않기를. 두 손으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 내면서,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까 하지 못했던 말을 혼자서 중얼거려 본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 축하합니다. 


당신이 옳았어요..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들. 곁에 있는데. 안 행복한 게 이상하잖아...기억할께요. 기억할거야.  


                                   

               

#생일_축하해_여전히_미안해_이런_나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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