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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14. 2018

내 꿈은 당신보다 먼저 죽는 거야

잠깐 들켜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마음이었다는 걸. 

편지 열둘) 그 정도 마음이었습니다. 당신에게 기댔던 순간은.   


후회가 덜 되는 선택을 해야 해요. 늦기 전에. 당신이 곁에 있을 때. 우린 서로에게 그러기로 해요. 





  

밤새 비가 내렸나 봅니다. 아침 출근 길이 젖어 있더군요. 

엄마. 사실 비가 좀 더 많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알아서 적당히 내리고 그친 비를 보고 잠시 생각에 빠졌었습니다. 비는 영원히 내리지 않고 언젠가 그치며, 해는 지고 또 뜬다는 것, 넘어져서 울어도 두 다리가 멀쩡한 아기들은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순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때로 순리에 반하기를(?) 바라는 제 모습이 종종 보일 때마다 요샌 바보 같단 생각을 꽤 하며 삽니다. 당신 말대로 '미련 맞은 헛똑똑' 인가 봅니다. 

 

비 오는 날이 어렸을 적엔 정말 싫었습니다. 시장 보러 갈 때면 당신 손을 못 잡았어요.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또 한 손엔 한껏 장바구니를 쥐고 있었으니까. 당신 뒤를 따라가다 어느새 운동화 속으로 자꾸 물이 들어오는 거예요. 발은 축축해지고 그런데 걸어는 가야 하고. 당신 발도 축축이 젖는 게 보였었죠. 그래도 앞에서 당신은 씩씩하게 걷고 있었어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멈출 수 있겠어요. 난 고작 봉지 하나 들고 어설프게 우산을 쓰고 쭐래 쭐래 따라갈 뿐이었는데. 차라리 내리는 비를 만끽하거나 하늘 한번 올려다볼 생각을 했더라면 좀 덜 싫었을 텐데.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완급 조절에 실패하곤 합니다. 피하고 싶은 상황에, 그대로 갇혀 버리는 게 아니라 다른 좋은 쪽으로 에너지를 돌려야 한다는 걸 왜 자꾸 잊고 마는 걸까요. 



비는 언젠가 그치죠. 내릴땐 몰라요. 그 사실을. 기억하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계속 내리지 않는다는 걸. 그친다는 걸. 



다 컸어도 걱정덩어리라 미안합니다. 당신에겐 곧잘 들키고 마네요.

누군가에게 정말 미안해지거나 화가 나거나 어떤 감정이라는 늪에 빠져 버리면 입을 꾹 다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침묵이란 때로는 약이지만 때로는 독이기도 하죠. 타인에게든, 나 자신에게든. 어쩌면 삭힌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이제는 좀 더 깊숙하게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삭힐 줄 아는 게 진짜 어른이라면. 




저는 지금. 그 시간을 아프게 통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 어떻게 되면, 나 니 애들 안 키워!  
엄마.. 갑자기 왜 또 그러셔. 나 건강해. 멀쩡하다니까. 오버하시긴. 이상 없다고 했다니까...
툭하면 상처 나고. 피곤하고. 코피 흘리고. 어지럽다 하고. 기억도 못하고 멍하고! 내가 모를 줄 알아! 
.... 아이 키우면 다들 그러고 산다며..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뭘 그래.. 
정도껏 이어야지! 다 필요 없고 너. 나중에 써. 읽지도 마. 당분간. 그냥 평범히 살아 제발. 도대체 뭐가 우선순위야. 무슨 생각 하면서 사는 거야!
..... 엄마.. 
정신 똑바로 차려. 나 심장 터져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너 같은 성격은 읽으면 더 우울해지잖아! 
... 진정해 엄마. 미안해 미안. 그래. 안 읽어. 안 읽을게. 걱정 마..
이 년아 네가 내 입장 되봐. 다 큰 딸년 여전히 이렇게.... 내가 너 때문에 여전히 울어! 
엄마.... 
네가 내가 돼보라고. 어미 죽는 꼴 볼 거야 진짜! 

 





'아임 낫 파인' 인가 봅니다. 

요 근래 정신 빼고 산 저를 보며 괜한 심각한 생각까지도 하셨다면서요. 오랜만에 생일 축하해 준다고 친정 가서는 잃어버린 핸드폰 찾는다고 갑자기 나가버리고 전화는 받지 않고. 되레 점심 저녁 다 근사한 집밥 대접받고 오기나 하고. 챙겨 줬어야 했는데. 둥이들이 그 와중에 '할머니 울어?' 이 소리 한방에 훅 가셨죠. 나도 모르게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압니다. 그 마음. 저도 그랬고 요새 한창 다시 도지고 있거든요. 아이들이 곁에 와서 '엄마 울어' 할 때 그 목소리. 그 하얗고 작은 손바닥으로 내 머리카락을 만질 때의 그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동시에 기쁨과 동시에 미안함.....

 

근데 엄마. 당신의 걱정 어린 표현들. 여전히 가끔 숨 막혀서 미안하게도 침묵하는 편이 잦아졌어요. 인정이나 수긍이라기 보단 그저 부딪히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도망 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난..
그렇게 모범적이지 않아요. 도덕적이지도 않고. 




마음이 피폐해지면, 되려 시간에 갇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흘려 보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데 말이죠. 

 



당신에게 차마 하지 못한 이 말을 어제는 전화하다가 문득 건네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하고 나면 당신이 분명 어이없이 웃으며 기어코 화 내실 테니까. 주변 사람은커녕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년이라고 또 마음 아파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엄마. 저는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가슴에 담고 삽니다. 부모에게는 최고의 불효를 말이죠. 효도해도 모자랄 판에 저는 어쩌자고 이런 마음일까요. 


요즘 내 꿈, 더 선명해지는 꿈은요. 사실 유명 전업 작가도, 퍼펙트한 슈퍼맘도, 그럴싸하게 행복을 주장하는 겉으로 번지르르한 잘 사는 삶도 사실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일찍 죽는 거. 그게 요즘 내 꿈이기도 해요.

 

 

성숙하지 못한 마음이라는 걸 압니다. 

당신이 없는 세계를 상상 해봤었어요. 무서웠어요..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당신에게 기댔던 만큼 했었습니다. 어쩌면 그만큼일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여전히 일상 속에서 투닥이며 싸우고 그렇게 지내면서도 사실은 당신과 계속 이렇게 연결되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그렇지만 언젠가 시간이 계속 흐르고 흐르다 보면 우리도 곧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오는 먼 미래를... 어리석지만 그럼에도 그냥 바랍니다. 

 

이번 생이 흘러가는 동안, 당신이 계속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그건 즉 
 


당신의 부재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말이죠. 상대적인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고요. 

가족이라는 때론 떨어지고 싶지 않은 감사하고 행운스런 존재임과 동시에, 또 때론 버려버리고 싶은 존재들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 울타리 안에서조차 우리들은 때로 고독을 느끼니까요. 당신이 가끔 울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요즘처럼. 그리고 혼자 원고를 쓰거나 이 편지글을 쓰고 있는 시간엔 더더욱 차오를 듯한 두근거림과 동시에 아파오는 외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은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이 같기도 합니다. 연애하는 남녀에 비유하자면요. 아니 사랑에 빠진 누구라면 다 그런 거겠죠. 그렇다면 엄마. 전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을 이만큼의 마음으로 걱정하고 미안해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당신뿐 아니라 저 스스로도 어떤 감정들에 쉽게 잠식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내 이야기에, 내 삶에, 당신의 독설과 동시에 당신의 그 따뜻해서 미안한 걱정,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틀어준 음악. 그 음악과 그 시간들에...



요즘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당신과 함께 살았던 그 시간들. 왜 그때 좀 더 감사해하지 않았을까...

 


대개 '자신'밖에 몰라보여도 실상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  

결국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순간 마음을 쓰게 되는 존재. 그게 바로 가족이고 사랑이겠죠. 마음을 너무 많이 쓰게 되는 것도 그다지 좋은 건 아니겠습니다만... 엄마. 요새 당신의 마음이 온통 걱정 한 가득으로 저를 생각해 주시는 만큼 저는 그래서 글을 계속 쓸 생각입니다. 집필 노동을 여전히 꾸역꾸역 해 볼까 합니다. 쓰는 행위로 일단 살아있음을 느끼는 저는. 오늘도 이렇게 당신에게 쓰면서 고백해 봅니다. 

 

당신보다 더 일찍 죽기를 바라는 나약한 마음으로. 이렇게 잘. 살아 있다고.



약해도, 시간 지나면 그 또한 지나간다고. 
때로는 이런 마음이어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고마워요_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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