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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31. 2018

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그 참담한 기록물.

변하지 않은 시스템의 변화를 주장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를..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아주 오래전 어떤 다큐멘터리와 신문 기사에서였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당시엔 그냥 넘겼었다. 어떤 비장함이나 비참함 보다는 그저 '훌륭한 마음을 가진 사람' 정도의 느낌으로 그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그 해 취업 준비에 바빴고 내 먹고 살 걱정만 했었다. 그렇게 이기적이었고 여전히 세상에서 나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쉬웠다.


수년이 지나고 그를 다시 알게 되었다.

'이국종'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탓에 한 강연장에서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15분간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새삼 반가웠다. 그 영상물의 조회수는 폭발했고 그 이후 잠깐 미디어는 핫했다. 그러나 금세 뜨거움은 사라졌고 이야기는 다시 묻혔다. (https://www.youtube.com/watch?v=A_zuHvBlvkA&t=262s)


한 사람의 시선과 철학에 따라, 똑같은 현상은 다른 진실이 되기도 한다.

난 그가 말하는 것들과 그의 이야기들이 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무의식에서 기억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나 보다. 짧은 강연을 몇 번을 다시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소름이 돋았고 분노가 치밀었다. 아마도 당시 '세월호' 사건의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간접적으로 그의 목소리를 통해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 영상으로 그와 재회하고 난 이후의 나도 변했다. 미혼의 취업준비생에서 11년 차 열혈 워킹맘 엄마로...


골든아워 1-2권. 이국종, 흐름출판,  2018. 10. 02.  p.820 (전 2권)




2002년부터 2018년. 생과 사의 기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약 2권에 걸친 그의 에세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활자로 기록하는 것이 이제 남겨진 시간의 최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정경원에게'라는 첫 페이지의 문구에 담긴 마음은 어쩌면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없는 필드에서 그럼에도 다른 믿을만한 누군가는 다시 바통을 터치받고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책 두 권이 나온다는 소식 이후 바로 사전 예판으로 신청을 하고 (이후 또 2권을 감사히 선물 받받는 기적까지도! ) 사무실에서 택배로 발송된 책 두 권의 표지와 그의 사인이 들어 있는 필체를 보자마자 이상하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버가 심했나. 그렇지만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내 마음은... 최소한 알고 있었나 보다.



세상은 언페어 하고 더럽게 이기적이고 참담하다는 걸.




고작 2권의 책으로 이뤄진 활자로 기록된 이야기들에 불과할지언정.

독특한 나의 개취에서였을까. 이런 독특한(?) 누군가의 진정성 있고 세상의 '불편한 진실'이 담긴 이야기들 - 특히 자전소설이나 가볍지 않은 에세이 - 이야말로 상업출판의 세계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서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서 작은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믿고, 또 열심히 침 튀겨가며 주장하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많이 기다렸었다. 이 이야기들을. 그리고 기다렸던 만큼 읽어 내려가는 시간 또한 참 오래 남겨질 것 같다.

남겨지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미 생각은 변했고 행동도 변했으며 이젠 세상 속 사람들을 대하는 어떤 인식의 변화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어떤 텍스트로 감히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세상을 작지만 느리게 변화시키는 책과 독서의 파워는 바로 이런 것들일 테다.





책 이야기를 좀 해보자...라고 생각했다가 키보드를 치는 손의 back space를 몇 번이나 지웠다.

사실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솔직히 없다. 그냥 '무조건' 읽으셔야 한다고,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계속 권했다. 오죽하면 마음이 앞서서 완독을 하기도 이전에 유튜브 시작한 지 하루 차 만에 편집이고 나발이고 개손편집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오로지 핸드폰 하나 손에 쥐고서 '골든아워' 책 소개 영상을 찍어낼 정도였으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rfQoF77F4oo&t=24s)



골든아워는 이국종 교수와 그 팀의 '중증외상센터'에서 그와 그의 팀, 소수들이 겪어낸 약 20년의 기록물이다.

죽어가는 노동자를 구출해 내기 위해 에어 앰뷸런스가 필요하지만 병원 시스템은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병원이라는 세계에서도 극 도하 게 부와 빈의 격차는 존재한다. 정치와 권력은 당연히 이루 말할 것 없다. 소수로 구성된 팀원들에게 워라벨? 워라벨은 개뿔. 생명을 다루는 그들에겐 가당치도 않다. 돈? 월급은 당연히 병원에서 주지만 돈 때문에 이 일 하시는 거라면 안 하느니 못한 걸. (못 먹고 못 자고 피 터지는 현장에서 수술하고 다시 헬기 타고 이게 사람이 사는 모습인가 싶을 정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는 그와 그 팀의....... 정말 '비극' 적이고 참담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여전히 팽배한 이 나라의 아이러니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꼭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감히도.. 가벼운 갬성 에세이는 이제 좀 집어치우고 우린 어쩌면 이런 걸 읽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 계발 주식투자 부동산 갭 투자 동기부여 그래 다 좋지만 말이다. 그런 책들도 꾸준히 보시면서 부디 '이런 살 떨리는 현실의 이야기' 들에도 관심 갖고 읽어보시는 독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라고 내가 뭐라고 꼰대 훈수를.. T-T )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된다.. 골든타임이 아니라 '골든아워' 다....



'골든아워'를 보면서 이상한 연결끈이었지만 잠깐 내 회사와 어떤 소수의 팀 생각이 났었다..

내가 속한 회사와 사업부도 (어쩌면 좀 엉뚱한 연결고리이지만) 이국종 교수 팀과 이국종 교수와 같은 인물이 없지 않은 것만도 같다. 그저 한 개의 뚜렷한 목적 혹은 어떤 과업을 향해서 달리는 팀... 이 있었다. 그 팀을 지지했고 응원했고 이미 다른 사업부가 되었지만 나는 그 소수의 그저 '도전하고 변화해서 주어진 과업을 해 내려하는 - 물론 월급 받아야 하니까 일 하시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 - 외인구단으로 뭉쳤었던 그 소소의 정예 팀원들과 그 팀의 리더분을 좋아했고 많이 응원했다. 그들과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어서 뭐라도 해 주고 싶어서 - 때로는 나 좀 스카우트 해 가라고, 이 은근한 여혐과 꼰대 저는 부릉이 사업부에서 꺼내 가라고 ㅋ - 그렇지만 해줄 수 있는 건 그들을 보고 빵긋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 외엔 달리 없어서 늘.. 그렇게 그들을 보면 마음을 내어 주곤 했다. 그러나 결국 현재 그 팀은 이상하게 해체 아닌 해체가 되었고 그 팀의 '이전 리더'는 뒤틀어진 명분과 논리에 묻혀서 권고사직을 당하신 상태... 다.


시스템은 쉽게 변하지 않고 때론 외면과 왜곡당하기 일쑤이고, 모함과 음모는 여기저기 도사린다.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데. 이국종 교수와 그 팀의 24시간은 매일 같이 생과 사의 현장에서 지칠 때로 지친 피 터지는 혈전이지만, 겉으로 고급스럽게 치장한 채, 정말 필요한 장비나 인력 충원엔 여전히 냉대하는 그 대단하신 대학병원과 정부 시스템은 '환자를 위한 병원' 이 아닌 '병원을 위한 병원 혹은 '돈 있는 환자를 위한 병원'의 모습을 교묘하게 감추며 오늘도 순한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이들이 여전히 건재하니, 소수들이 피 터지며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을 살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좌절하고 분노하면서 쉼 없이 일하고 있을 때 그들은 쉽게 변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데.. (세월호 사건 보면 답 나오지 않는가. VIP 보고 자료 때문에 시간 다 쏟고)



이게 현실이다. 저자가 말한 대로 정말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덧붙인다. 만만하지 않고 뻔뻔하게도 잔인하다. 뭣도 없는 이들에겐.



숲엔 언제나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어둠이 드리워져도 빛이 오리란 믿음으로 걸어가는 이들이 있으니 숲이 빛나는 게 아닐까..



대한민국 기업 -병원 포함- 의 대다수는 돈 안 되는 선한 가치를 위해 변화를 추구하려는 소수들에게 냉소나 퍼붓지 않으면 다행일지 모른다.

변화는 더디고 느리고 때론 돈에 묻혀 사람보단 돈이 우선이니까. 그렇게 가치는 사장되기 일쑤니까. 힘이 없고 돈이 없고 지치고 도와주는 이도 없고 냉소는 여전하단 소리다. 그럼에도 그 냉소를 견뎌가며 - 심지어는 이국종 교수님은 죽고 싶을 정도의 마음을 몇 번이고 문장으로 나타낼 정도셨으니 뭐 할 말 다 했지만 - 오늘도 그냥 묵묵히 움직이고 있으실 테다. 그리고 이국종 교수와 같은 각 업의 필드에서의 소수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나의 평화' 가 있다는 걸 이제는 더 선명하게 마음에 기억한다.



오늘 나의 평화로운 시간은, 누군가의 불편한 진실과 뜨거운 희생 덕분이라는 걸.





몇 가지 단락들을 그저 여기에 남겨보는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이야기를 퍼뜨리고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들 - 기부든 투표든 읽고 쓰는 행위든 뭐든 - 은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믿는다.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전실 탐사 그룹 셜록이나 정치하는 엄마들 같은 연대들도 생기는 게 아니겠냐며- 잠깐 홍보 겸 딴소리)


표준과 원칙에 대한 철저한 모방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근간이 된다. 나는 외상센터 건물을 지을 때 그 점을 기본으로 삼았다... (중략)  한국의 많은 병원들이 내실을 다지기보다 화려한 외장과 외래 공간에 공을 들인다. 보이지 않는 부분은 선직국은 고사하고 중진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고 그 수준을 좇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환자들은 그것을 알 길이 없으므로 번쩍거리는 외관과 맛있는 지하 식당, 편리한 에스컬레이터 같은 것들에 쉽게 홀렸다. 병원들의 행태가 과대 포장한 불량식품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자꾸 입안이 썼다.                                                                   - 중증외상센터 편- -


조직 내에서 승진이나 진급이 갖는 의미는 직위에 따른 처우 차이도 있겠으나, 한국 사회 분위기와도 연관돼 있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에 걸맞은 직급을 원하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상사가 되는 경우를 꺼린다.

런던에서 근무할 때 병동의 수간호사는 불혹을 갓 넘긴 나이였다. 그 아래에서 일하는 말단 간호사들 중 몇몇은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으나, 누구도 나이에 따른 직급의 수직 서열화를 말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나마 의사 쪽은 젊은 교수들이 주임교수가 되면서 실제 일이 가장 많은 연령층으로 보직이 내려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간호와 행정 쪽은 변화가 적어 연공서열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 돌고래 편-


여객선이 가라앉을 때 윗선에서 VIP 보고용 영상자료를 보내달라고 실무진을 닦달한 음성파일이 터져 나와 여론이 들끓었다. 관료화되고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보고서는 몹시 중요했다. 유려한 말과 글로 이루어진 보고와 보고서에는 현장에서 몸을 던져가며 일하는 일선 노동자들이 고꾸라지는 현실은 없었다.                                                                                                                   -기울어진 배편-


잘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버텨라...... 내게 하는 말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으로 치닫고 있었다. 헐겁게나마 쌓아오던 모든 것이 허망하게 붕괴되는 한복판에서 나는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침몰하는 배 위가 내 자리였다.  - 침몰 편 -


일부 정치인들이 특별히 생각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몸을 써서 먹고살았고, 몸으로 먹고사는 노동자들은 일하다 사고로 으스러져 죽어가곤 했다.... (중략)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끼리 말의 잔치만 벌이며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논했으므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책은 실제 노동자들에게 가닿지 않았다. 부서지고 찢겨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을 눈앞에서 보는 나는 그렇게 느꼈다.     - 남겨진 파편 편 -


국회의사당과 정부청사 안쪽의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현실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아하게 회의를 하고 대책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하고서는 사라져 버린 사람들에게 우리는 쉽게 잊혔다. 우리는 버려진 소모품에 불과한 것 같았다. (중략 )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잘 자는 사람들의 책상에서 결정되는 정책에 따라, 24시간 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생사여탈이 결정되는 현실에 신물이 났다. 나는 그런 허망한, 시스템 아닌 시스템 속에서 최전선에 내몰려 있었다.   - 잔해 편 -




정경원 그리고 김지영, 그리고 이국종 교수, 그리고 모든 이들의 '골든아워'

책 뒤편에 담긴 인물들의 희생과 헌신들마저도. 모두.... 이 소수들의 바보 같은 고군분투에 깊은 존경과 감사, 그리고 현실의 비극적인 모습에 탄식을 하지만 그 탄식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 또한 좀 더 움직여 볼 생각이다. 아주 작은 움직임일지언정.... 투표를 '제대로' 하고 선한 연대에 동참도 해 보며 때론 기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음껏 거침없이 '감사를 표현' 해 보는.. 뭐 그런 그런 행동들이 전부일지 모르겠지만.


그때를 위해서 하는 데까지는 해보아야 한다. 거기가 나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정경원이 서 있는 한 버텨갈 것이라 했던, 한 쪽 눈이 이제 실명에 처하는 위기 덕분에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던 그와, 현재 이 순간에도 혈전의 업장에서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계실 분들에게. 감히 이 힘 없이 작은 하얀 웹페이지 안에서 비루한 문장과 서평 몇 자 남겨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 그리고 고마움을 진하게 또 느낀다.


골든아워가 지켜질 수 있기를. 제대로 똑바로 살아내는 사람들의 생이 더 힘을 받기를.... 바란다...


작은 화분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길 기다리며 계속 바라본다. 그러면 언젠가 결국 나갈수도 있지 않을까. 눈에 띄이는 어떤 순간



이 책을 혼자 조용히 몇 번을 다시 읽어 내려간 비행기,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의 시간을 선물해 준 그이에게도.....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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