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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7. 2018

10월에 만난 책, (그리고) 여행

여행은 이미 진행 중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 떠나기 전에는..

10월의 반은 다른 세계로 나를 던져 넣었었다. 

4년 반 만에 찾아간 그곳은 낯설면서 익숙했다. 타국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인 비행기 탑승 전. 게이트 앞에 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계속 매만졌다. 그리고 탑승. 기내라는 공간은 날 매번 설레게 만들기 충분한 곳이지만 설렘은 짧고 곧 익숙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매번 아쉽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역시나 '도망'이었다.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오는 단어가 이젠 어색하지도 않을 만큼 나는 언제나 도피 혹은 도망이라는 욕망을 꿈꾸나 보다. 현실이 후지거나 구린 것도 아닌데. 차오르는 비현실의 욕심이 현실을 앞선 탓일까.. 어쨌든 그렇지만 이번엔 좀 색다른 도망이랄까. 약 2주간의 시간 동안 이번엔 혼자가 아닌 둘이 도망쳤으니까. 둘이지만 혼자 같았고 혼자였지만 함께였던 시간들을 보냈다. 

떠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선명한 삶을. 부재의 소중함을. 

일상의 시간 그 흐름 자체들이야말로 바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시간 여행이라는 것을.. 덕분에 알았다. 오늘에서 내일로 가는 여행 문턱 그 사이에서. 사람은 사람을 떠난다. 그리고 또 만난다. 그렇게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다. 사는 게 그랬고 나 또한 예외의 삶을 사는 건 아니었다. 별게 없으면서도 별 걸 바라는 내 삶에서 유일하게 날 떠나지 않았던 건 역시 이야기였다. 


서사. 나의 서사...
내가 떠나지만 않는다면 곁에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던, 유일한 나의.... 이야기... 완벽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은 읽고 빠져드는 그 시간들. 여전히 10월에 잘 지켜냈고 또 만들어 냈다. 나의 서사들을. 

10월에 만난 책 중 내내 마음에 남는 책 덕분에 몇 권 많이 읽지 못했지만- 
활자로 매달 읽고 느꼈던 책의 이야기를 멋대로 남겨보는 이 시간이 언제부터 중독이고 강박이 되기도 했지만, 기쁘다. 이 자체만으로. 기뻐서 중독돼도 상관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마 읽고 오늘의 기록을 남기는 분들도 같이 아실 테다.. 





시크하다 (조승연, 와이즈베리, 2018. 08) 
 이게 왜 이기적인가라는 반문을 해보았다. 그만큼 내가 이기적이라는 반증일지도 모르겠지만. 저자의 프랑스 유학 시절 경험했던 프랑스인들의 생활 모습을 통해서 '비교'에서 오는 소확행 인문학 에세이라는 콘셉트를 달고 나온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사실 좀 안타까웠다. 

'파리지앵' 이 모두 정답일 수 없고 그게 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모습 또한 아닐지언정, 중요한 건 '나'의 삶의 기준을 '내가 정해서' 그게 이기적인 자유로움이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건 나를 속이지 않는 것에서 찾아오는 편안한 행복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의 고질병을 간접적으로 잘 꼬집어 내주신 저자의 문장력에 감탄한다. 

반대로 안타깝다고 표현한 건, 여전히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개인이 어쩔 도리가 없는 시스템과 '집단' 주의가 애달프다.. 그래도 작은 희망을 내 건다. 조금씩 천천히 사회는 그리고 개인은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나'를 향해 변하고 있다고..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청울림, RHK 코리아, 2018. 07) 
이 분의 열정과 실행력과 끈기 하나만큼은 지극하게 존경한다. 나 또한 그와 비슷한 직장인이고 그는 퇴사해서 월 천만 원의 돈이 돈을 부르는 소위 부자 시스템을 스스로 구축했고, 나는 아직 그러지 못(안) 않다에 묘한 괴리감과 숙연함을 동시에 느낀다. 재테크 경제서라기보다는 일반인 성공 혹은 자기 계발서에 충분히 가까운 책. 그러면서 약간 아쉬웠던 건 대한민국에서 일반인 투자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필드 중 가장 '단타' 치기 빠른 건 역시 주식 혹은 부동산밖에 없는 것일까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스스로를 옥죄이다가, 그쳤다. 답 없는 질문이기에. 

나도 부자를 꿈꾼다. 여전히 나만의 달과 6펜스를 동시에 잘 가지고 살고 싶어서... 
(언제쯤- 아니 어쩌면 이미 자유로운 걸까. 최소한 돈에 대해서는 불안함이 예전보다 '덜' 하기에- 이 뭣도 없는 근자감이란 어디서 나오는지 나 원 참) 





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해냄, 2018. 08) 

정여울 작가를 애정하고 있다. 아주 깊이. 그녀의 전작 덕분에 이젠 믿고 보는 책이 되었는데 이번 책 덕분에 '더' 믿고 보게 되었다. 단점이나 약함을 드러냄에 현실감 있으면서도 저자만의 감성과 특유의 상냥함, 그리고 뼈 있는 한마디들까지. 여전히 이번 책에서도 그런 문장들을 만날 수 있어서 충분히 좋았다. 실망하지 않았다. 유럽 여행수기라지만 뭐랄까 수필에 가까운. 삶을 사랑하는 자의 은밀한 여행법. 나는 그녀의 은밀함이 언제나 좋다. 그 은밀함을 이렇게 책으로 엿볼 수 있으니까.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은 내겐 언제나 이런 마음과 만났을 때니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가나, 2018. 01) 
깔깔거리면서 읽다가도 진지하게 마무리되는 책. '전두엽'과 '달팽이관'의 미학을 발휘해 나가면서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며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어야 비로소 좋은 세상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누군가의 유쾌한 문장으로 읽게 되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찜찜해지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례한 사람은 아니었을까라는 반문을 해 보게 되었으니까. 

무례함보다는 상냥함이 더 많아지기를.... '너'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출판, 2018. 09) 
'골든아워'와 함께 공동 1위로 10월의 베스트 책으로 찜해두고 싶었을 정도로, 좋았다. 정말. 읽다가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매 페이지를 접어 둘 만큼. 사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으려고 도서대출로 빌려뒀다가 끝내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기억 이후의 몇 년이 지나 다시 그의 신간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번엔 꼭 읽어내리라고 친히 구매를 했던 책이다. (표지와 제목에 단숨에 이끌려서 지갑 뽐뿌 쳤다는 것은 (안) 비밀...이고 ) 

타인의 슬픔, 나아가 내면의 슬픔을 지나치지 않고 똑바로 보려고 하는 이들은 아프다. 아플 것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여리고 순수하고 약할지언정 타인을 이해하는 최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건, 이타심이 있다는 건. 그렇게 사악하고 냉정한 현재를 좀 더 나은 현재로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함 일지도 모를 테니까. 

슬픔에 관심이 많다. 아니 정확히는 기쁨보다는 마음이 더 가는 곳은 언제나 슬픔 쪽이었던 것 같다. 슬픔을 이해할 줄 아는 이를 만나는 것도 관심.. 아니 사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러나 그런 사람을 기대하기 이전에 나 자신이 누군가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책. 아마 두고두고 꺼내볼 것 같다. 슬픔을 공부하고 싶어서. 슬픔에 더 이상 중독되고 싶지도 않아서. 





골든아워 1, 2  (이국종, 흐름출판, 2018. 10) 
기내에서, 그리고 미국 여행 말미에서 두 번을 읽어 내린 책. 이번 달 아니 올해 최고의 책으로 손꼽고 싶을 만큼의 기다렸던 이 책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어떤 의사의 에세이다. 그의 책을 오랜 시간 기다려왔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그의 업을 대하는 마인드와 생과 사의 경계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과 같이 죽고 싶을 만큼의 현실과 마음을 활자로 남겨둔 그의 시간들을 책을 통해서 엿보면서. 참담했다. 이 현실과 세상이. 여전히 악순환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서. 그렇지만 아주 작은 희망 또한 내걸어 본다. 이 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힐수록 그 읽힘 자체야말로 어떤 선한 기적을 향한 작은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라고 감히 기대해 본다. 



 




11월..
어떤 이야기로 또 빠져들게 될까를 고민하면서 오늘은 시나리오집 한 편을 꺼내 들어 본다. 이 책의 한 줄 평을 이렇게 쓸 때쯤에는 11월의 책이라는 타이틀로 글을 하나 남기고 있을까. 그 시간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웃고 있는 나이기를 바라는. 이미 시작된 지금은 11월. 언제나 그랬듯이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움직이고 있음에 감사하게 오늘을 흘러가 본다.. 



11월엔 좀 더 열심히 써 보고 싶은데... 시작이 영 삐거덕거린다. 그럼에도 끝은 괜찮기를.. 열심히 움직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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