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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13. 2018

욕망의 투명함과 불투명함 그 어디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와 '다시' 만났을 때 

처음 조르바를 알게 되었을 때, 사실 물음표 인간이었다.

이 세상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외계인(?) 같기만 한 생각을 마구 표출했었던 '조르바'와 그를 탄생시킨 '카잔자키스'의 세계를 접했을 때. 그때 나는 그저 교복을 갓 벗어낸 세상을 잘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에 불과했고 그만큼 세상을 아는 척, 실은 잘 모르는 바보였다. (여전히 잘 모르는 바보로 살고 있지만) 수 십 년이 지나서 이젠 누군가를 낳아서 보듬고 키우는 진짜 인간이 되어 가는 시간 속에서  '조르바'를 다시 만났다.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치스, 문학과 지성사, 2018 


다시 만난 조르바는 새삼 반가웠으나 여전히 '불편' 한 존재로 다가왔다. 

개인의 세계와 사회 속 현실과 적당한 타협을 맺어 가던 중이었으니까. 물론 간극은 있었지만 개인의 자아와 사회와 약속한 자아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소란스러울 때 언제나 다치는 것은 '나'였으므로 ..다만 스스로 마음 챙김을 일삼아가며 그렇게 다독이며 살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는 서로 여전했다. 여전했기에 불편하다고 느꼈던 걸지 모른다. 

조르바가 그랬고 내가 그랬다. 조르바는 정말 '여전'히도 제멋대로였고 자유로웠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할 줄 아는 '인간' 이었다. 나도 한 '제멋' 을 일삼지만 아니. 그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따라지 못한다. 그의 단단하고 변할 줄 모르는 아이와 같은 본능에 충실함에 있어서는. 


기분이 내키면 치죠, 알아듣겠소? 난 당신이 바라는 대로 당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소. 노예처럼요. 하지만 사투리는 전혀 별 개요. 이놈은 야수요. 자유가 필요해요. 내가 기분이 내키면 칠 거요.

하지만 이건 꼭 분명히 해둡시다. 내가 기분 날 때만이오.
계산을 분명히 합시다. 만약 내게 강요하면, 난 떠납니다. 이건 분명히 아쇼. 내가 인간이라는걸.

인간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오?

보쇼, 자유인이란 거요.



'자유'라는 각주를 매번 마음에 달고 산들. 진짜 자유인으로 산다는 건 쉽지 않다. 어렵다. 아주 많이. 

아니 어쩌면 조르바가 일삼는다는 그 자유인으로 산다는 건 세상과 사회 속에서의 암묵적인 어떤 약속들을 처참히 깨부수는 것 같아서 우리들의 마음에 죄책감마저 불러일으킨다. 기분 내킨다고 해서 남의 것을 탐한다던가 - 사람이든, 물건이든, 꿈이든, 물질이든, 뭐든지 간에 - 자유롭고 싶어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해 버린다든가 - 그럼 아마 단박에 이 세상에서 '아웃' 일 테지 - 이런 행동들은 허락받지 못하고 용서받기 쉽지 않다. 아니 쉬워서는 안된다고 세계가 말하니까.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생이 아닌 우리는 '관계'라는 걸 사회 속에서 일정 부분 맺고 지내는 이미 '인간' 이기에. 그런 세계의 목소리륵 간과할 수가 없다- 그런 사회적으로 된 인간이길 시원하게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데 조르바, 이 양반 어쩐지 거슬린다. 실은...어느 면에서는 따라 하고 싶어지니까.

사실 이게 '조르바' 와 만나는 시간 내내 내면에서 감추고 있었던 또 다른 '자아'의 목소리였다. 난 '조르바'처럼 되고 싶다고. 그렇게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그러나 또 쉬이 그럴 수도 없고 그러지 않을 이유는 바로 '가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일지 모른다. 



다른 말로는 '버리지 못하는 욕심' 일 테다. 

사회 속에서 살아내면서 얻게 된 위치와 역할 속에서 쉽사리 '자유'라든지 '욕망'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일삼지 못하며 살았고, 여전히 그렇게 산다. 나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 그게 더 힘들다. 보통으로 산다는 것. 때로 자유를 거세하고 사회적 약속을 지켜 낸다는 것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조르바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무섭다. 

그렇지만 부정하진 않는다. 누구라도 그의 목소리를 읽고 난다면, 마음에 와닿는 생각들 속에 휩싸여서 때론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테니까. 사실 그는 '진짜' 인간이 내고자 하는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삶을 평탄하게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조르바의 생각이 겹쳐 뛰어드는 순간, 사는 데 좀 골치가 아플지도 모를 일이고. 인간의 바닥 근저에 깔려 있는 어두침침한 내면의 그늘진 욕망을 여실 없이 투명하게 모두 드러내고야 마는 이 조르바가 일삼는 것들을 사실은 '전부 따라 하고 만 싶어져서'라는 마음을 들켜 버리고 말까 봐.



욕망을 들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테니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인간일수록 반대로 조르바 같은 타입의 캐릭터를 보면 소위 '추잡' 하다거나 '비겁'하다고 눈살 찌푸릴 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그를 봤을 때 '뭐야 이새끼' 라고 씩 웃으며 말했던 것처럼. 그러나 조르바는 단지 순수하고 때론 순진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욕망의 투명함을 가지고 그저 '오늘'을 살아내려 하는 '우리가 바라던 진짜 인간'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것에도 삼켜지지 않고 그저 자신의 내면의 무언가에 미칠 줄 알며, 욕망에 솔직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바람을 추구하려 하는 이....할 말이 없어진다. 그에 반해서 소위 '바르게 '살아온 이가 가진 이 모든 것들. 이렇게 인간이 가진 이면성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쥐여준 대단한 축복이자 실로 미안한 벌 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되물어볼까. 난 어떻게 흘러가보고 싶은 걸까

때로 끈을 끊어 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여전히도 어느 정도의 끈은 붙잡고 있는 비겁한 인간. 난 여전히 이렇게 비겁함 속에서 순진무고한 욕망을 꿈꾸며 살아가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함과 비범함, 투명함과 불투명함, 그 모든 이면을 간직한 채. '과감히 바라는 장면'을 상상해낼 줄 아는 용기... (바보?)


대장이 매여 있는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조금 더 길기는 하지만 그뿐이요.
 대장, 대장은 조금 긴 끈을 갖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끈을 잘라내지는 못했 수다. 만약 그 끈을 잘라내지 못하면……

어느 날엔 가는 그 끈을 잘라낼 거예요.

대장, 그건 어렵 수다. 아주 어려워요. 그러려면 미쳐야 하는데, 듣고 있수?
미쳐야 한단 말요. 모든 걸 걸어야 해요! 하지만 대장은 머리가 있어 그게 대장을 갉아먹고 있죠.



때로 머리와 이성을 거부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러나 기어코  '끈'을 쉽게 잘라내지도 않는다. (못하는게 아니라 하지 않는다. 이런 게 더 무섭다...의식이 어느새 이렇게 훈련되어 있다는 게.. ) 아직 정말 제대로 '미치지' 않았으니까. 그럼 앞으로 미쳐볼 작정이냐고? 아니. 난 완벽하게 미치지 않을 생각이다. 아직까지는 지켜내야 할 게 한 두개가 아니라는 비겁한 변명을 뻔뻔하게 해가며..

다만 말이다. 순간순간의 '미침'을 차곡차곡 쌓아내 볼 생각이다.
그 미친 경험들이 파노라마처럼 24시간 속에서 1분, 10분, 1시간 이렇게 마음에서 바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행하며 쌓아나가다 보면.. '머리가 마음을 갉아먹는' 것에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일정 부분 '자유' 와 타협하며 살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정답 없는 사색 머리를 잠깐 털어놔본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마음에 남아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젠 '조르바의 마음' 을 모른척 하지 않으니까. 그가 건네준 목소리대로, 때론 마음이 바라는 어떤 순간에 미처 버렸을 때 비로소 정화가 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는 오늘도 그저 이렇게 흘러가 보고 있다.

그가 내게 말을 걸어 온다면, 이렇게 되받아칠 생각이다. 
아직 나도 진짜 나를 놓지 않았다고. 묶어 두었던 끈을 때론 과감히 풀어낼 줄도 아는 당신 같은 '뻔뻔함' 실은 나도 여전히 기억하고 가지고 살고 있다고.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고 넌지시 고백해본다.. 



#그리스인조르바   #자유   #꿈   #욕망   #서평을빙자한일상속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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