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동시에 '난 잘 지내지 못하고 있어요'라고 고백한다.
사실 나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어요.
제목과 다른 마음을 서문에 결국 고백하고 마는 저자 특유의 감성 내공이 묻어 나오는 책. '난 잘 지내고 있어요'를 읽으며 올해의 첫눈을 맞이했다.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밤삼킨별, MY, 2018. 11. 08, p.268
제목을 보자마자 묘하게 애틋한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몽환적인 커버 페이지와 잘 매칭 되는 애매한 듯 애매하지 않은 문구들이 배열돼 있는 책. 잘 지내고 있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익숙하게 감춰진 대답을 흔히 전하는 내 모습이, 그리고 엇비슷하게 중첩되는 저자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잠시 먹먹해졌던 걸까.
쉽게 읽히지만 또 그렇게 쉽게만 읽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특히 '더 좋아하는 사람의 몫'이라는 짧은 글 속에서 저자는 말한다.
더 좋아하는 사람은 섭섭하다 말할 수도 없고 슬퍼할 수도 없고 힘들다 말할 수도 없다.
알 것 같고 이미 알고 있다. 한쪽이 '더' 매달리는 관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권력' 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 관계에서 언제나 심적인 패자가 되는 것은 더 좋아하는 편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나감에 이기고 지는 게 없다 하지만 말이다. 이기고 지는 걸 느끼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며 언제나 그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거나 주는 것 또한 '나' 다. 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어디에 우위를 둬야 하는 걸까를 다만 스스로 되질문하며 살아갈 뿐일지도 모른다. 최대한 덜 다치고 싶어서.
삶이란 이미 일어난 장면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일의 일어나지 않은 장면들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저자도 정말 중요한 걸 우리는 삶을 통과하며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바로 '지금'의 소중함을.. '시작은 망설임 없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또한 '행복은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삶의 부분 부분에서 최소한 '사랑'을 하고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후회하기 마련이다. 저자가 말하는 사랑이란 -자기 애건, 타인을 향한 이타심이건, 어떤 특정 목표나 꿈이건 뭐든지 간에 - 뻔하고 유치하여 사랑스러운 것. 그러므로 다시는 없을 이 모든 우리의 시간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결국 다칠 걸 알면서도 사랑을 해내려는 바보 같은 사람들의 대담함과 용기를 저자는 은근슬쩍 권유하며 척 곳곳에서 응원해 주지만, 문체 속에 감춰진 그 마음이 이상하게 쓸쓸한 느낌을 여전히 지울 수가 없다. 왜 먹먹해졌을까..
그간 수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을 저자의 문장 내공과 동시에, 특유의 감성과 반복되는 쿠세를 넉넉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 읽어 내려가는 시간이었고 특히 몇 개의 옛 장면들이 상기되어 애먹는 짧은 시간을 경험해야 했다. 에세이가 주는 얄궂은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삶을 엿보면서 동시에 내 시간을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 주는 질문들에, 나에게 답장을 주는 시간을 당신은 갖고 있을까.
'나의 이야기'를 써내는 모든 이들은 이런 시간을 겪는 게 아닐까 싶다. 첫 문장이 써 내려가는 그 순간의 마음이 만약 씁쓸한 다크 초콜릿 같았어도 마지막 문장을 그려나감에 있어서는 되도록 오래 기억하고 싶은 옅은 달콤함으로 마무리 짓기를.. 유치하지만 바란다. 쓴 것이 약이라지만 그럼에도 약만 먹으며 살 수 없는 게 바로 무언가를 끝없이 갈망하는 인간이 가진 한계일지도 모를 테니까.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이들에게 좀 더 커다란 행운이 다가가기를.
아울러 난 잘 지내지 못하고 있어요.라는 감춰진 진짜 목소리에 누군가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오늘. 혼잣말하듯 소리 내어 말했다.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나는 잘. 지내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