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문제 있어도 사랑스러울...사랑해서 마땅한 '착한 여자'에 대해
남편과 어린 두 딸. 그리고 시부모들.
폴린은 이들과 휴가를 보내며 동시에 틈틈이 연극 연습을 한다. 가정주부인 그녀에게 연극 출연 제안은 그 무엇보다도 '특별' 한 것이었겠다. 비록 그것이 보잘것없는 아마추어 연극이라 할지언정. 파티에 참석했다가 어떤 글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디션도 없이 캐스팅되었다면 이건 그녀의 삶을 흔들만한 '사건' 이겠다. 그리고 이런 사건은 반갑다.
살면서 어쩌면 제일 반가운 몇 가지의 것들은 바로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 버리는 것들일지도 모를 테니까.
착한 여자의 사랑, 앨리스 먼로, 문학동네, 2018.
책을 읽는 내내 폴린의 감정선에 몰입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착한 여자의 사랑' 은 8개의 목차로 구성된 '여자' 이야기다. 그중 '자식은 안 보내'라는 내용이 담긴 티저 북부 터 읽게 되었는데 뭐랄까. 그 속의 엄마이자 여자로, 그리고 연극배우의 시간에 발 디디려 하는 폴린의 모습이 위태롭게 보이면서도 근사하게 보였다고나 할까.
잔잔했던 그녀의 삶에서 활력이 되어 주는 건, 남들에겐 무의미할 수 있다.
남들에게 - 가족이라 할지언정 - 무의미한 어떤 것들은 때로 나의 삶을 흔드는 것처럼. 때로는 요동치며 때로는 활력을 주기도 한다. 책에서 만난 폴린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녀는 점점 연극 시간이 기다려진다. 기다림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연극의 연출가인 제프리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것이며, 그녀의 감정은 예측할 수 없다. 그녀만의 것이니까.
그녀는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런 먹구름이 연극 걱정 때문인지, 그러니까 그녀가 연습에 불참한다는 단지 그 사실 때문뿐인 건지는 차마 물어볼 수 없어서 입을 다물어 버렸던 것처럼.
'착한 여자의 사랑' 은 예측 불가능한 사람과 사랑의 단편을 보여준다.
특히 '여자'의 시선에서. 그녀들의 삶에서 예측 불가능한 사랑과 그것의 모호함. 모호해야 살아지며 그래야만 된단다. 환상을 품고 살며 현실에서 때로 쇼를 해야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처럼.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언정, 결국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찔러주는 이야기다. 안나 카레니나나 마담 보바리가 될 수 없다는 걸 폴린도 알고, 저자인 앨리스 먼로도 알 것이며 심지어는 이야기를 엿보고 있는 나도 안다. 그럼에도 이 세 여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겠다. 그녀들이 하고 있는 행동은, 어디서 들었거나 읽었던 것이라는 것.
안나 카레니나가 했던 것이고 마담 보바리가 하고 싶어 했던 것.
그러나 쉽게 그 영역에 들어갈 생각은 단지 마음에서나 주춤거리듯 망설이는 것. 폴린에겐 그게 연극무대였고 저자에겐 소설이었고 나 또한 읽거나 쓰는 시간만큼은 역할극을 벗어내 '나'로 살아가는 잠시로 만족해한다. 그녀들은 언젠가의 스치는 미풍처럼, 그렇게 살아 있다가 사그라져버리는 어떤 장면과 기억들의 단편을 붙잡고 다만 오늘을 그냥 아무래도 좋을 사람처럼 살아 보는 게 전부일 지도 모른다.
사라져 버리게 내버려 두지 않는 은밀한 뜨거움.
예기치 못한 길로 인도하는 무언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폴린은, 저자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독자인 나는. 우리 세명은 이렇게 만났다. 만나서 잠깐 연결되었고 그 잠깐의 시간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 순간 느끼지는 않겠지만, 고통 없는 상태가 여러 날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얻은 그것을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그 고통을 무디게 하거나 유배시키는 요령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공평하지 않고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것
그쯤은 알고 있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편을 택하며 오늘을 지내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다. 선택하지 않았는데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결국... 이 책 - 착한 여자의 사랑- 이, 손에 닿은 것도 어제의 내가 이뤄낸 움직임에 의해서 결국 다가온 것처럼. 또한. 브런치의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과 내가 이 짧은 시간 연결된 것처럼.
11월의 마지막은 'slow down'. 좀 더 느긋해져 보기로 한다.
착하지 않았던, 착한 여자의 사랑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