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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19. 2018

23층에 사는, 친애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가을은 잘 지나갔나요. 이 편지가 닿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자마자 바로 답신하고 싶었던 마음을 잠깐 누른 채, 숨을 고르고 기다렸습니다. 

마음이 널뛰지 않고 차분해질 때까지. 또한 미리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이곳에서만큼은 조금 흘려 놓는 것에, 먼저 용서를 구합니다. 


당신과 나는 다른 듯, 닮은 삶을 살고 있었네요. 

23층에 살고 있는 당신과 2층에 살고 있는 나. 우리는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술실에서의 간호업무가 고되진 않았나요. 어떻게 견뎌냈나요. 죽어가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순간들이 쌓일수록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생을 대했을까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줄 정도의 따뜻한 마음이 살아 계신 당신이라면. 이미 그 시간들을 이리도 잘 통과하셨을 테니. 결국 지금 당신과 내가 이렇게 연결될 수 있었겠지요. 


모든 건 당신 덕분이라고.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 덕분이라고 

그래서 두 사람에게 참 고마운 또 다른 사람이 여기 있다고. 감히 어쭙잖게 마음을 드러내 봅니다. 당신의 글자가 새겨진 연분홍빛 한지 편지지가 들어있는 소포를 배달받았을 때.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당신이 쌍둥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누군가를 기르고 보듬는 나와 비슷한 시간을 먼저 통과했을 사람이라는 것도. 


당신이나 나나, 그녀들에게 편지나 꽃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잖아요. 이미 이것만으로도 우린 닮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 당신의 모든 것들이 제 마음에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사람 사는 게 뭐 그렇게 각인될 정도로 일이냐며. 물론 호들갑을 정도의 것이 아니겠지만, 제게는 특별하니까요. 네. 당신은 이제 제게는 '특별' 합니다. 가능하다면 되도록 인간이 가진 망각이라는 선물이 찾아오기 전까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의 벗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말이죠. 그 시간이 나의 시간에 중첩되어 이미 두 세계가 만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만난다는 것. 이것은 대단하고도 어려운 일이라, 그만큼 고귀하고 소중하며 감사한 생의 이벤트겠지요..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지만. 

그런 당신이 제 글을 읽어 주시며 어느새 어떤 이야기들과 마음을 되려 들려주셨던 몇 주간의 시간 덕분에 저는 연재 글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향한 편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는 걸, 또 다른 저의 '당신' 은 이미 알아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되려 제 어쭙잖은 글들이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당신에겐 미안해집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런저런 이유로 제 글에 끌렸다던 당신은 기억해내셨을지도 모를 테니까요. 애써 마음 깊숙한 곳에 겨우 잠재워두셨을지도 모를, 당신과 그녀의 마지막 3개월.. 그 시간들을 말입니다. 당신의 마음속 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어디선가 들려와도, 그렇게 사무치게 보고 싶어도 목소리조차 전할 수 없는 곳에서 이제는 당신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다른 그녀 생각이 나서, 제가 뭐라고 감히도 말입니다. 그만 당신의 편지를 읽어 내리면서 결국 눈물을 쉽게 멈출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드러내기까지에도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던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보이는 일은 어렵다 하셨죠. 맞아요. '나'의 민 모습을 누군가에게 드러낸다는 건 사실 쉽지 않잖아요. 당신이 간혹 신기해하시는 대로, 저는 좀 유별나게 들키거나 드러내고 싶은 편이기도 하니. 어쩌면 당신이 가지고 싶었던 모습을, 되려 가지고 있었던 누군가에게 끌리셨던 걸까 싶은 마음에.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여전히 못나 보이는 제 모습이 저는 싫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하물며 이런 제게 끌리는 누군가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날 보이고 싶은 순간이, 그런 대상이 생긴다는 것은 제게도 기적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꺼려진다는 당신에게 나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허락하신다면, 당신이 밀어내지만 않는다면.. 제 일상과 당신을 응원하는 마음을 건네보고 싶습니다. 아니 이미 그럴 작정입니다. 


오래오래 제 글을 읽고 싶다고 하신 자애로운 당신에게. 

미처 다하지 못한 여전히 모자란 필력과 어설픈 마음의 드러냄과 늘 제멋대로인 못난이 글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어서 읽어주시는 고마운 당신께는 참 죄송하지만, 글을 대하는 투명한 이 시간, 곧은 이 마음만큼은 되도록 오래 가져가 볼 용기가... 덕분에 뿌리 내어집니다. 정말 덕분에... 더 말입니다. 베스트셀러가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당신이라는 단 한 명이 제 글을 읽고 싶다 하셨으니까요..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좋지만, 언젠가 들려주시는 날을 또 기대합니다. 

당신의 또 다른 오늘이라는 이야기들을. 일상이라는 여행을 지나며 살다가 번의 눈물이 당신 마음에 드리워졌을 때. 생각이 난다면 들려주세요. 당신의 마음. 같이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살다가 서로의 나눔이 다시 겹쳐지는 날이..


다시 만나는. 우리가 그렇게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 Sarah 




'오래오래 혜원씨의 글을 읽고 싶어요' 라는 이 한 문장 덕분에 흘린 눈물과 감사의 깊이 만큼...간직할께요. 마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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