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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28. 2018

내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는 '쓰기'의 시간

쓰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썼고, 여전히 쓴다.

좋은 글은 질문한다. 선량한 시민, 좋은 엄마, 착한 학생이 되라고 말하기 전에 그 정의를 묻는다.

좋은 엄마는 누가 결정하는가. 누구의 입장에서 좋음인가.

가족의 화평인가, 한 여성의 행복인가...


- 글쓰기의 최전선 -





삶에서 편함보다 불안이 앞설 때.

어쩌면 '쓰기'라는 행위가 가장 빛을 발할 때는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살면서 좋은 순간보다 그렇지 않은 순간을 맞닥뜨리기가 더 많았을지도 모르는,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이번 주는 '(글) 쓰기'로 인한 삶의 작은 변화들과 그로 인해 이루게 된 경험담을 잠시 털어놓을까 한다. 다가오는 새해에 작은 용기와 희망을 드리고 싶은 어쭙잖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또한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고 난 이후 단 한 명이라도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발현되셨다면, 이미 이 글은 '성공'이겠고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상처를 글로 쓴다는 행위의 힘.

상처가 없다면 삶이 얼마나 황량한 사막처럼 건조해질까 싶다만 사실 까놓고 보자면 누구든 상처 받고 싶진 않을 것이다. 아프고 두렵고 무서우니까. 어쩌면 상처를 피하고 싶은 건 보호본능이 있는 인간으로선 당연하다. 자신 스스로 지금 안 아프다고, 괜찮다고 말은 할 수 있을지언정 사실 아픈 건 정말이지 아픈 거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못할 테니까. 설령 스스로 꽤 잘 속이며 사는 삶이더라도, 따지고 보면 그게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을뿐더러 그렇게 살아서 남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서 썼다. 나는 나를 속이고 싶지 않아서.

현실 세계에서 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글'로 표현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일기든 소설이든 편지든 낙서든 핸드폰 안에 휘갈겨 적은 그때그때의 아이디어나 메모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뭔가를 '기록' 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feat. 활자중독 환자)



아이들을 낳고 키우기 시작하며, 먹고사는 일에 힘에 부치고 감정이 극에 달하는 날은... 더 열심히 썼다.

어떤 역할로 한 사람을 정의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정확히 말하자면 도망치고도 싶었을 때. 정말이지 있는 힘껏 열심히 썼다. 쓰고 있을 때의 나는 정말 '나' 같았으니까.. 힘든 순간의 그 현실 장면이 내게 가하는 폭력에 부딪히고 난 이후, 쓰고 있다 보면 어느새 고통스러운 감정이 조금은 희석되는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쓴다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다만 스스로의 태도나 생각에 약간의 변화를 줄 수는 있다고 본다. 혹시 내가 부정 열매를 먹고 있다던가, 괜히 별거 아닌 것에 꼬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일종의 자기반성을 가져다준다. 또한 불행의 이유를 혼자 분노해가며 적고 있다가도 어느새 스스로 의문을 품게 되고, 왜 내가 불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글은 한껏 감정 폭발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쓰고 난 이후엔 이성이 차츰 돌아와 객관적인 시선이 주어지기도 했다는 반증이겠다. 무엇보다 일단 쓰고 나니 그것만으로도 후련해지기도 하더라... 그걸로 충분하지 싶었다. 최소한 치유의 글쓰기를 행했던 나로서는...



글쓰기라는 장치를 통해서 나를 구속하거나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황과 이별할 수 있었다.

그러니 글 쓰는 시간은 더없이 내게는 소중했고 여전히 살면서 공기 같은(?) 존재여서 쓰는 행위를 끊지 못하겠다. 나로선 삶을 좀 더 매끈하게 만들며 내면을 '치유' 하는 좋은 처방전인 셈이다. 그 어떤 정신과 치료나 우울증 약이나 알코올 보다도 강력한 셀프 처방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그래도 맥주는 사랑이지만 말이다. 술먹고 쓰는 글이 그렇게 최고일 수 없다는. 역시 글은 음주빨이다..) 



그러니 이 글을 혹시 힘든 누군가가 보신다면, 부디 써 보시길... 권하고 싶다. 다만 절대적으로 자신에게만큼은 자유롭게, 타인이나 사회의 잣대나 잘 쓰고 못쓰고의 기준을 염두에 두지 말고, 부디 '검열' 없었으면 좋겠다. 이게 또 참 중요한 포인트인데 어찌 표현이가 서툴기 짝이 없어서 아쉽다만 마음은 당신과 통했기를 바란다.



물론 내면을 치유하려 하는 자유로운 글쓰기의 약발은 그리 오래가진 않는다.

쓰고 나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진 않는 것이 냉정한 생의 현실이다. 다만 달라지는 건 그저 나를 대하는, 내 삶을 대하는 '태도'일 뿐. 그치만 이 약발은 살아가며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쓰면 그만이니까.





쓰기의 힘 중 가장 먼저 '치유'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픔을 제대로 '이야기' 하고 난 이후엔 그 자체로 충분히 위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통의 원인 자체는 당장 제거될 수 없을지라도. 혼자 보는 노트에 진득하니 온갖 문장을 외설적으로 내려가곤 했고 이후에 찾아오는 희열과 해소(?)를 느꼈으니까.


올해 초에는 무슨 바람에서인지 이곳 브런치에서 간혹 그런 경우에 직면할 때 글로 간접적인 상태나 마음남겨두기도 했었는데 그랬더니 신기하게 2차 위로(?)가 오신다. 댓글이 달리더라. 글에 공감할 있는 타인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한 순간이었다. 세상과 단절된 줄만 알았던 내가, 글을 씀으로 인해, 그리고 그 글을 남들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기로 결심한 순간, 다시 세상과 연결되더라...



쓰다 보면 '공감'을 얻기도 한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타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살면서 커다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누군가가 나의 글에 공감하며 그로 인해 내 삶이 좀 더 좋아진다면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진 않을까. 글을 쓰기 시작한 덕분에 나의 고통은 나라는 사람의 개인의 심신에서 시작되었을지언정, 그 개인의 고통은 누군가의 지지와 흘려보내는 댓글 한 마디를 통해 서로의 사회적 공감의 촉매 역할을 해낸다고 생각한다. 나의 상처는 글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세상의 상처와 교신할 수 있게 되었던 올해, 특히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의 고맙고 귀한 인연도 생겼으니. 이로서 삶은 충분히 가치 있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어떤 바람(hope)이나 꿈(dream)을 꾸는 이라면, 반드시 써야 함을 감히 권한다.

'반드시'라는 부사를 굳이 집어넣으면서까지 강조하는 이유는, 내가 사실 그래 봤던 사람이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장담 쉽지 않다만)



예컨대 이런 경험들..

- 돈을 좀 더 '잘' 관리하고 싶어서 가계부를 쓰며 살아보니, 지금 재테크서 저자가 되어있다.(실화임..)

- 남 이야기 말고 내 이야기 쓰다 보니 정말 책이 나오더라. (신이시여. 이것도 실화임..)

- 타인의 기준에서 자유로워지려 글을 쓰며 살다 보니, 없어졌던 용기가 다시 생겼다. (스물스물)

-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기록하다 보니 어느새 그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실제 이룬 것들이 그러지 않은 것보다 더 많은 올해였다. (대놓고 자랑질은 낮 뜨거워서 개인 매거진에만 좀 흘려 보련다. 이젠. 못할 일은 없지 싶다... 그냥 이렇게 되는대로 산다. 소신껏 막 산다는...)



정말이지 이런 순간이 또 찾아올 줄이야... 감사한 시간은 계속..멈추지만 않는다면.






내 안에 잠든 '거인'을 일깨우는 시간, 다름 아닌 '쓰기' 였다고.

이젠 감히 자랑처럼 낮 뜨겁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나는 오늘 '쓰기의 힘'에 대해 당신에게 이렇게 마음을 표현해 본다. 정말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한 당신에게 라면 더더욱 말씀드리고 싶다. 거침없이 자신의 내면을 한번 글로 써 내 보시기를. 연약한 내면의 소유자일지언정 우리 가슴속에 저마다 잠들어 있는 새로운 거인, 바로 자아가 깨어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테니까.



되도록 자유롭게 '당신의 이야기'를 써 보시길.

특히 권하고 싶다. 어떤 필요에 의한 목적 다분한 그럴싸한 이야기가 아니라. 거짓이 아닌 진짜 '자신의 이야기' 를 검열 없이 자유롭게 써 보시라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애쓸 필요가 사실 없다. 그저 자신의 인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나는 누구인지,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리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 보고 싶은지 써보면 말이다. 좀 더 오늘이 어제보단 성장해 있진 않을까. 남 보라고 잘 사는 인생 아니고, 내가 잘 살자고 사는 인생이다. 물론 남들과 '함께' 동반 성장하여 잘 살면 더 의미 있는 삶일 테지만.. 여담이나 내가 잘 살아야 내 옆의 사람도 잘 살 수 있다. 우선 내가 잘 살고 봐야 도움도 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잘, 살아 보고 싶다..)



필요에 의해 쓰든, 그렇지 않든. 나는 쓰기의 힘을 믿고 오늘을 흘러가 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을 기록하며 글을 쓰며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누리는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누구도 읽지 않을 노트에 단어를 적어 넣는 기쁨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은 그렇게 조금씩 자신만의 삶을 채워나갈 줄 아는 진짜 '주인'일테니까. ('오늘의 이름이 나이기를 바라며' 나도 산다...이렇게 또 책 간접 홍보를..미안한 책이다. 절판되면 안되는데 큰일이다.) 



그러니 이젠 당신 차례다. 이 글을 다 읽어 내리신 '당신'의 글을 기대하며, 여전히 기다린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든 자신을 향한 내면의 고백이든,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 마음에 적는 계획적인 글이든. 뭐든 좋다. 쓰기 시작한 당신의 마음속에는 이미 잠들어 있는 '거인' 이 일어나 당신의 좀 더 근사하고 멋진 내일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부디 쓰면서 다시 되찾게 될지도 모르는 당신 마음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갈 우리들의 이야기에 행운을 빈다..



글쓰기의 은밀하고 위대한 힘은 아마 '사랑' 을 쓸 때 가장 빛나지 않을까 싶다. Love myself and Love yourself  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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