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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07. 2019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새 달력을 맞이할 수록 다짐하게 되는 어떤 것들..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 스티브 잡스 - 






진부해도 진리인 저 말 처럼. 남들의 시끄러운 의견을 듣고 사느라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파묻어가며 다른 사람처럼 살고 싶은 이는 없을 테다. 오히려 내면이 뭘 말하는지 다만 모를 뿐이지.. 요즘 집중하고 있던 '성장 매거진'의 일주일 중 금요일 담당 필진으로 참여하며 시간을 겨우 쪼개어 아이를 겨우 재워 두고 밤에나 돼서야 초고를 쓰고 있으면서 종종 떠오르는 생각이다. '내면'과 '나' 그리고 '시간'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엉뚱하지만 묘한 연결고리를 갖고 덕분에 더 진해지는 요즘이다. 



나라는 사람의 성장 포인트를 고민하다가 '상상'에 관한 이야기를 썼었다. '당신의 상상은 성장'이라고.

엉뚱하지만 나로선 삶의 모토나 다름없는 그 진지 가득한 생각을 글로 담을 수밖에 없었고 이후엔 '글쓰기'라는 나의 버팀목을, 그리고 지난주엔 삶의 모토와도 다름없는 '사랑'을 상기해내며 글을 쓰며 새해를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음 발행 글을 위해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이 듦'을 떠올렸다.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실제로 한 해가 지나가기도 했고 한 살 더 먹었다는 핑계로. 



나이 든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에겐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암울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나이 먹어 가는 것에 이젠 오히려 감사한 기분이어서 그런가 보다. 젊었던 시절로 별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그렇다고 요즘 삶에 충분히 만족하지도 않지만  다시 돌아간다한들  딱히 지금보다 더 낫지도 않을 것 같아서. 이 말을 하고 보니 요즘 꽤 잘 사는 건가도 싶다.






아이가 어느새 꽉 찬 세 돌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새로운 한 해를 또 지냈다. 엄마로 사는 새 삶을.. 
친정에서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귀가한 후, 카시트에서 어느새 잠든 두 아이를, 언제나 그랬듯 그이와 나는 각 1명 전담마크하여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패밀리 침대 위에 눕혔다. 그는 씻으러 들어간 사이 나는 바리바리 싸 보내주신 반찬을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정리해 나갔다. 


그리곤 캔맥주 한 캔을 까 마시며 습관처럼 노트북을 열었다. 

쓰다만 가계부와 원고가 언제나 기다리고 있기에 다 해내지 못한 채 늘 남아있는 찝찝한 과업을 향한 일종의 독기이지 싶다. 파김치가 된 몸을 침대 속 이불 안에서 혼연일체 시키지 않고 이 와중에도 손가락을 키보드 위로 올리는 것을 보면. 


타자를 한창 치다가 잠깐 멈추었을 때, 그의 뒷모습이 그제야 시야에 들어온다. 

늘 그랬듯 육아를 마친 이후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면 그는 영화를 보고 나는 글을 쓴다. 영화를 보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뜬금없지만 나이 들어감에 대해서.




- 그 나이 들면 어떤 생각해?

- 글쎄.. 아무 생각 없어.

- 자기는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

- 응. 지금이 좋아. 둥이들도 예쁘고. 그런 건 아쉽지. 애들 키우면서 예쁜 모습이 지나가니까.

- 하긴.. 그래 맞아. 즐겨야겠다. 아기들 이 모습 지나가니까.. 근대 말이지. 여전히 쉽지 않아. 정말이지 난 아직도 힘들다..

- 하는 게 많아서 그렇잖아. 힘든 거 아는대 좀 버티며 살자. 삼 년. 금방 지나갔잖아. 아이들 많이 컸어. 

- 맞아. 컸지.. 근데 여보. 버티다 먹는 게 나이라면 이렇게 버티는 것도 뭐 나쁘진 않네... 그래야겠지? 엄마니까..

-  잘하고 있어. 그만하면. 둥이 어미야.

-  대단하다고도 해줄래. 이만하면. 둥이 아비야. 




남편의 말이 나름의 정답일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다는 것. 지금이 좋다는 것. 그것은 해묵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하되 조금씩 자신을 '비워내고' 있는 과정을 진행 중이라는 것으로 들리니까.






어느새 꽉 찬 서른 중반. 이런 속도라면 마흔은 금방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아직이기도 하고 어느새 이기도 할 법한 서른 후반 그리고 다가오는  시간.. 마흔에 대해서 특히 요즘 깊은 생각을 해 본다. 사십 대의 마음에 대해서. 아직 살아보진 않았지만 상상이 되는 현실적인 포인트는 몇 개 있다. 아이들의 나이, 초등학교 학부형, 지금의 속도로 갔을 때의 자산현황...  뭐 이런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 그럼에도 아직 통과해보지 못한 시간이기에 마흔이든 쉬흔이든 나이 때의 삶이 궁금해질 때면 책을 보거나 그 나이 때의 사람들에게 넌지시 자주 말을 거는 편이다. 그래 봤자 남편 혹은 회사에서의 아주 친한 극소수의 동료들이 전부이지만. (그래서 그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올해 기도 하다...) 




그건 마치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궁금해하고 계속 엿보려 하는 것과 같다. 

그러하니 결국 나로서는 가보지 못한 길을 사는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소설을 읽고, (쓰기도 하며)  제법 나이가 든 작가들의 노련하고 현명한 경험 가득한 무게감 있는 에세이에 눈길과 손길이 더 가게 되는 이유일 지도 모른다. (여담이나 자기 계발이나 경영서적 혹은 특정 전문 지식을 알려 주는 책들 앞에선 여전히 편식이 심한 터라 올해 나의 자기 계발은 벌써부터 망했지 싶다... 재테크 빼고.)



나이 듦이 이런 건 아닐까. 

누군가의 무엇이어서가 아니라 조금씩 개인으로서 이 세상 속에 계속 존재한다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점점 느껴보고 싶은 것. 나이가 들어서도 지워낼 수 없는 어떤 감각적 본능과 욕구를 품으며 (혹자에겐 꿈  누구에겐 욕망)  여전히 현실 속에서 예의 바르게 상호작용 시켜 나가고 싶은 것. 



그 언젠가의 주름진 나도, 젊은 나도, 꽃을 매만질 줄 아는 같은 마음의 속도로 흐르는 '나' 이기를. 




한 살 더 먹어간 나의 나이 앞에 감히 바란다.

부디 현실을 살아내는 노련미와 성숙미가 시간 지나며 비례하듯 체득되어 있기를. 나이 먹는다고 다 어른이 아니며 같은 나이라도 제각기 나이 드는 시간은 다른 것 같다. 그게 사람의 나이 듦은 아닐지.. 



나이 드는 건 비울 줄 아는 훈련의 장소이자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시야와 여유로움이 바로 나이가 주는 보너스 장착 템이라지만 사실상 여직 이 나이 먹고도 실수 연발은 곳곳에서 터지니 가끔 나이만 들었지 생각은 여전히 짧아서 스스로 괘씸해지기도 한 게 사실이니 말이다. 



새 달력을 맞이하는 마음, 나이 듦을 생각하며 어느새 다이어리의 위클리 한 페이지를 벌써 채워나갔다. 

그리곤 올해 일 년의 나이 듦을 다짐한다.  “나이 들어서 못해요”라는 말 대신 늘 새로운 것을 살피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행동하는 여전히 예측하지 못하는 내가 살아있기를. 익숙한 것과 맞바꾸려 하지 않을 용기를 품고 지내보는 올해 이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 



할 수 있다면 뭐든. 해내려 하는 지금을 살아 주기를. 

나이 들면서 찾아오는 내면의 파도타기를 즐기며 살아가기를. 현실 속에서 잠재우려고 하기에 아쉽고 미안해서라도 흐르는 나이를 대하는 이런 나이 듦의 나만의 태도를 스스로 인정하고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보는 1월


벌써 두 번의 일주일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한다. 



이번주도 꽉 채워...잘 흘러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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