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쓴 편지를 다시 읽으며.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
- 엄마를 부탁해 -
시간은 고집 없이, 멈춤도 없이, 부지런히 흐른다.
때 되면 돌아오는 명절, 그리고 집안일도 마치 그런 시간 같다. 고집을 피워서 피하려 발버둥 쳐봤자 결국 피해지지 않는 것들. 그래서 끌어 앉고 약간의 합리화 미학을 펼쳐가며 그 일상을 즐겨야만 비로소 괜찮게 흐를 수 있는 것들..
엄마의 허리가 망가지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명절이 싫다고 했었다.
제사음식 노동의 피크치는 역시 '장보기' 다. 마치 김장할 때 '배추 절이기'가 팔 할의 일인 것처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비싸고 좋은 재료를 사 들이는 것이 포인트란다. 크면서 큰며느리였던 그녀의 장보기 준비를 도울 무렵부터 엄마 앞에서 철없는 볼멘소리를 하곤 했었다.
돕는 주제에 말이다. 도움과 하는 것은 '책임'의 차이겠다.
'돕는' 딸이었던 나에겐 책임이 없지만 '하는' 큰 며느리였던 엄마에겐 책임이 붙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 그녀의 초연한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안쓰러웠다. 얄궂은 유교문화가 한 여자의 삶을 은근히 옥죄는 이 나라의 문화도 싫었다. 정말이지 도망칠 수 있다면 그녀를 데리고 제사 전후로는 어디든 도망치고 싶었던... 그랬었던 나였다.
-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두면 뭐해. 이게 뭐야. 산 사람만 힘들고.
- 그렇지.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힘들어
- 안 하면 안 돼?
- 그런 생각 하면 아무것도 못 해. 그냥 하는 거야.
이젠 제법 나도 그녀의 모습을 닮아가는 걸까.
결혼하고 명절을 지내게 된 지 햇수로 8년째. 내맡겨서 즐길 줄 알게 된 둘째 며느리 나름의 근육이 붙었다. 물론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완벽히 없는 건 아니다. 언젠가부터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형님네 가족 (아주버님은 제사 때 식사하러 오시지만)의 부재를 그이에게 툴툴거려 보았으나 영 석연찮은 반응에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 굳이 깊숙하게 알려 하지 않는다.
내 방식대로 또 다른 식구인 그녀를 그저 이해하려고 애쓸 뿐이다.
그게 '가족' 이 '가족'을 대하는 나름의 배려 같아서. 물론 형님은 나를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걸까 싶은 생각에 음식을 만들다가 흑감정이 마음 한편에서 살포시 피어오르면서도 이 또한 올해는 더욱 초연해졌나 싶다. 별로 신경 쓰이거나 불편하지 않다. 다만 뭐랄까... 어머님이 안쓰러울 뿐. 이젠 시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정도 친정엄마를 위하는 나의 그것처럼 적잖이 붙어버린 걸까. 아니면 이제야 철이 들어가는 걸까. 모르겠다만..
명절 전후로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대부분 좋지 않은 시선들 뿐이다.
물론 안다. 시대는 바뀌었고 여성의 목소리는 조금씩 느리지만 힘이 붙고 있다는 것. 그런 시대를 통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명절 문화는 전적으로 '여성' 에게 불리한, 여전히 누군가들에겐 잔존하는 문화제도라는 것을. 특히 도움 조차 주지 않는 꼿꼿하게 미련 맞은 배우자를 둔 가정의 아내이자 며느리 역할을 틈틈이 해내야 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명절은 적잖은 스트레스 일지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제사를 완벽히 파업하지 못한다면.
볼멘소리 나올 수밖에 없는 악조건에 처했을지언정, 우리는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순종이 아닌 인정이고 내가 아닌 타인들을 배려한다는 숭고한 선택을.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부디 그녀들의 이런 선택에 아낌없는 찬사와 뜨거운 조력이 결국엔 붙어주기를..
감정의 골이 겹겹이 쌓여 뒤늦게 땅 치고 후회하기 전에.
미련 맞은 가부장적 남자들이여 부디 회개하고 각성하라고 외치는 처절한 모드까지는 아니더라도 곁에서 지켜보는 배우자의 모습에서 정말이지 순수하게 미안함이 앞선다면 말 한마디라도 상냥하게. 그거면 정말로 충분하다. 그리고 올해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아빠가.. 엄마에게 그 상냥한 말을 건네셨다는 걸, 목욕탕에서 듣고는 나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뻔했다.
-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지. 엄마 숙제 하나 끝나셨네.
- 응. 근데 너희 아빠가 웬일로 올핸 그러더라. 자기도 제사가 싫다고. 미안하다고.
- 아빠가?
- 생각해보면 딱해. 장남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거 아니잖아. 엄마도 그렇고..
어쩌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은, 소박하지만 매우 확실한
이런 작은 의미에서부터 오는 건 아닐까 싶다. 결국 오랜 시간이 흘러 아빠가 엄마에게 그랬던 근사한 한마디처럼..
사실은 상냥한 말. 하고 싶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목소리들..
작년에 일주일에 한통씩 이곳에서 편지를 써냈다. 그리고 그 편지들이 한 편의 묵직한 이야기들이 되어 올해 봄... 오디오북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오늘. 그 작업들의 시작인 이번 주 토요일에 있을 녹음을 위해 한번 더 교정을 본 원고를 드디어 송부했다.
사실 올 설에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육아에 전념' 이 여전히 모토인 분인지라 이해받지 못할 걸, 바라지 않게 되었으니까. 다만... 엄마의 등을 이태리타올로 박박 시원하게 밀어 드리며, 마음속으론 기대해봤다. 아빠가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그 말을 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나와 그녀 사이에서도 시간이 좀 더 겹겹이 쌓인 어느 날 즈음에 닿아 있다면, 그때는 명절 에피소드처럼, 가볍게..그렇게 들려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일 테니까.
정작 들을 사람이 없어지기 전에. 뒤늦은 후회 덜 하며 살고 싶어서.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살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도, 안부를 묻는 밤이다. '엄마. 우리는 서로 엄마를 부탁해 라고 말하며 살자' 고.
서로의 기억이 마음에 있는 한, 우리는 그렇게 잘 살 수 있을 거라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