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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12. 2019

자기만의 방, 쓰기의 위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 

여자는 자기만의 재산과, 방해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 


- 버지니아 울프 - 





버지니아 울프도 그런 생각이었을까 

여자에겐 특히 '돈'과 자신의 '시간'을 가감 없이 소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굳이 여자 남자 가릴 것은 없겠다만, 사실 '여자'로 태어난 나는 대학교 때 그녀의 이야기를 도서관에서 처음 접하며 한 퀴에 읽어 내렸었던 '자기만의 방' 속 희열과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십 대의 그것은 삼십 대 중반을 통과하는 지금에 와서도 쉬이 사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어떤 꿈틀거림이 내면에 존재한다. 



지금보다 더 매몰찼던 그 시대에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는 예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건 사실 너무나도 공감이 된다. 예민한 사람들끼리만 알 수 있는 어떤 동지애인 걸까. 그렇지만.. 그러하다. 그녀가 예민할 수밖에 없는 건 분노할 줄 알고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건 아니었을까. 



사유 재산권은커녕 참정권이나 교육을 받을 권리 조차 억압받아야 했던 시간

그럼에도 '목소리'를 자꾸 내려 안간힘을 쓰는 이 '여자'. 무엇이 새롭고 또 무엇이 낡은 것인지를 기어코 날카롭게 비평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또 고루한 시대에 자신의 온 에너지를 내뿜어 결국 사투하려 하는 작가. 글을 쓰는 생활인으로 고군분투하면서도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기어코 스스로 찍어내기까지 한 독립 출판인.. 그녀를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비평가이자 페미니스트, 이런 식으로 섣불리 단정 짓기엔 어딘지 아쉽기만 하다. 뭘랄까 고유명사 속에 갇혀 두기에 어딘지 모르게 무례한, 나에겐 그런 존재. 그만큼의 위로, 여성으로 살며 어떤 것들을 '자각' 시켜 주게 만든 동력임은 분명하니까. 



불 하나에 의지한 채 읽고 써 내려가는 시간. 나에게도, 나의 엄마에게도. 그리고 그녀에게도 있었겠다. 분명..그러하다.





'엄마'라는 역할로 양육이라는 과제가 주어지고 가족의 화평을 챙기는 시간

그렇게 개인에서 집단을 향한 일상이 좀 더 많은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반대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무언의 결핍감을 종종 아니 실은 자주 느끼곤 했다. 물론 여전히 가끔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그녀를 떠올리고 마는 나를 종종 발견하게 되는데, 예컨대 이런 시간이 그렇다. 무심결에 흘러넘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느새 사부작사부작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리는 '이 공간'에서의 '이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다 보면, 어느새 그녀가 말없이 찾아오고 만다. 단 한 문장으로. 



현실의 부조리함이나 극명한 비열함 들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며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을 쌓아낼 때마다, 슬픔을 감춰야 했다. 때론 다수의 비겁함에 같이 동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때, 옆 동료의 부당함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을 때, 지저분한 농담을 눈 지그시 한번 감고 더 지저분한 농담으로 맞받아쳐내면서도 심장은 연신 쿵쾅 질 해댔을 때. '담배 빨러 가자'라는 모양 빠지는 권력자들의 말이, 웃지 않고 일을 하면 '까칠한 여직원'으로 소비되고 마는 이 풍토 이 곳에서 일하는 시간이 쌓여갈 때마다 이상하게 나는 그녀가 더욱더 그리워진다. 



그러나 안다. 그리움만 품고 살기엔 그녀에게 호되게 야단맞을 것을.

그래서 줄기차게 움직여낸다. 그녀처럼 목소리를 내려한다. 어쩌면 그게 내가 현재 터무니없을 정도로 만들어 보고 있는 여러 대외활동들의 동력일지도 모른다. 경제 활동을 여전히 하려 고군분투하고, (그것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마음껏 소신 있게) 남초 회사에서 목소리를 내다 되려 까임 받기 일쑤이지만, 그럼에도 목소리를 내다보니 원치 않게 적을 만들어 버리기도 하지만... 스스로만큼은 감추고 싶지 않나 싶다.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그녀가 그리울 땐 다시 책을 들쳐본다.

그녀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을 때는 - 디아워스 -  몇 번이고 되돌려 보곤 했던 나는, 사실은 요즘 들어 품고 있던 용기가 사그라드려 한다... 그래서 더 그녀가 그립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 같은 벗들이 그리워진다. 겉으로 보기에 여러 왕성한 대외 활동(?)을 행하고 있는 이 와중에 (정말이지 나도 때론 놀라울 정도로 이 에너지의 동력은 어디인가 싶지만 굳이 찾으려 애쓰진 않는다. 다만 그냥 해보고 싶어서 시도해 보는 것들이 결국 나를 이끌고 있는 걸 테니까) 뭐랄까. 한편으론 에너지가 급히 소비되는 탓에 정작 마음이 순식간에 흐트러지게 될 때면 자꾸 어딘가에 '기대고'만 싶어 져서, 그것마저도 사실 두려워진다. 울프는.. 그럴 때 '글'에 기댔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이렇게 쓰면서 위로를 얻는 것처럼. 



그럴땐 기댄다. 책에. 마음과 시간을 안전하게 쏟아낸다. 그러면 또 괜찮아진다.



나만의 공간에서 위로를 찾는 시간 

그건 바로 자기만의 방이 내게 주는 보이지 않는 안식일 테다. 안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음에 감사해하는 이번 주다. 시댁 부모님이 올라오시어 아이들의 양육을 적극 도와주고 계시는 덕분에. 그 덕분에 나는 이렇게 좀 더 깊숙한 안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는 걸 모르지 않기에, 용돈 봉투와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곤 오늘, 나는 재빨리... 집에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가방을 보니 읽다 만 책 한 권이 시야에 들어왔다. 

책을 다 읽고, 계획했던 원고를 순탄하게 마무리 짓는 시간.. 자기만의 방에 갇힐 줄 아는 자유. 좀 더 만들어내 보고자 하는 어떤 발악질 끝엔 언제나 죄책감 어린 모성이 마음에 닿은 건지, 결국 출근길에 갑자기 눈물을 터져 나오고 만다. 그때 그녀가 다시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일어나, 괜찮다. 잘 흘러가고 있다' 고 위로해주듯. 너는 '너만의 방'에 가서 늘 그러했듯 다시 글을 쓰고 마음을 챙기면 그만일 것이라고. 



#아침_출근_아무 말_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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