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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13. 2019

간직하고 있어서.

그리움을 놓치지 않아서. 아직도... 

머리에 계속 남아 생각을 변화시키는 꿈이 있어. 

그 꿈들은 마치 물에 포도주를 섞듯 내 안으로 샅샅이 스며들어 내 마음의 빛깔을 바꿔 놓지.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도 그런 꿈 가운데 하나인데, 웃지 말고 들어야 해. 


-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 






'작가님... '  피식 웃게 만들면서 묘하게 불편해지는 명사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불러준다는 것이, 사실은 흐뭇하다기보단 뭐랄까.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옷 같기만 하고 때론 불편해지기도 한다. 평범하게 글 쓰는 생활인에 불과할지 모르는, 그저 그런 나에게 '작가'라는 단어가 풍기는 기묘한 느낌은 어쩌면 스스로 아직 '굿 라이터'라고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눈높이가 높아진 걸까. '작가' 라 불리기에 정말 인정할 수 있는 이들의 기준은 무엇인가. 흔해 빠진 시시한 글은 역시 쓰고 싶지 않은 걸까. (그러면서도 어느새 흔해 빠진 '흔글'을 쓰고 있고) 



시시하다는 기준은 또 누가 만드나. 

어쩌면 다 엇비슷한 내용일 수 있지만 쓰는 사람만의 고유한 문체와 개성이 있다면, 설령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평범에서 약간 틀어졌을지언정, 괜찮다고 본다. 검열 없이 자유로운 문장으로 글 속에서 유영하고 싶은 사람들은 흔글도 자기만의 문체로 바꿔 쓸 테니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단어와 문장만이 머릿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닌다. 조합이 안 된다. 다만 그저 흘겨 쓸 뿐.. 이렇게- (결국 흔글로 가는 중인가) 



현실 세상이 인정하는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며, 

출간하는 책들이 서점 매대에 오랫동안 세로로 놓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쇄에 들어간 적도 없다. (중쇄를 찍자. 현실 자본주의에 어느 정도 찌들어 있는 나는 언제나 목표는 단 하나!) 여전히 소설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 품고 살지만 아무도 모른다. 수면 밑에 가려진 그냥 수 천 편의 온라인에서 떠도는 글 중 한 편에 그치는 건 일상다반사다. 



이젠 그냥 자유롭게 쓰고 싶을 때 남기는 정도.. 딱 그 정도로 읽고 쓰며 산다. 

반대로 써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린 실용서를 위한 글쓰기 시간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내가 정말 원하는 나인지, 아니면 글이 나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지 모를 지경에 잠시 빠져버리고 만다. 물론 쓰면서도 생각은 계속 부유한다...(내가 뭐라고. 나 원 참..) 



생각만 앞서다 백지와 마주한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그럼에도 '작가'로 살아보고 있다. 

대단한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엄청난 필력을 지닌 것도 아닌 내가 24시간 중 유일하게 '나'로 살려는 최후의 발악.. 일지 모른다. 아이라는 고귀하고 신비로운, 내가 낳은 타자들에게 온 시간을 쏟아내야 했던 시간, 그 시간이 유난히도 지독한 성장통을 같이 겪은 터라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을 때. 그즈음에 글을 본격적으로 '다시' 쓰기로 마음 단디 먹었을 무렵 브런치에 '등단' 했다. 그리고 줄기차게 쓰다가 반년이 흘러가는 즈음의 어느 날, 설레는 의뢰를 하나 둘 받았다. 그렇게 좀 더 열심히 쓰는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 졌다..(현재 진행형의 추억) 



한때, 이곳에서 약 14회 분량의 이야기를 언급했던 시간이 있었다.

매주 금요일 1편씩, 그렇게 잠잠했던 과거의 기억을 끌어다 다시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때로는 억지로 때로는 여전히. 기억을 기록하며 그렇게 시간을 채워 나갈 때마다, 나는 슬펐고 기뻤고 우울했고 그래서 울었고 또 웃었다. 독자로 연결된 귀한 인연도 만났고, 비록 소수의 독자분들과 소통함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나는 외롭지 않았다. 약간 그 시간 자체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가 탄생했고 나도 몰랐던 감정을 들춰보며 새로운 서사가 보이기도 했다. 연재가 끝나고 다시 시간이 흘러... 지금 이 글을 쓰는 요즘, 나는 그 이야기를 손가락이 아닌 '목소리'로 다시 써 내려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맙소사. 






어제, 홍대 녹음 스튜디오로 퇴근을 마치자마자 발걸음을 옮겼다.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이 없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시간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손에는 어느새 녹음을 위한 시나리오 원고로 다시 교정된 글이 인쇄된 A4 용지 한 뭉치를 꽉 쥐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분당선에서 2호선 왕십리역을 거쳐 홍대 입구에서 내렸다. 그렇게 녹음 스튜디오에 도착, 2시간에 고작 1개 분량의 원고 밖에 소화해내지 못했으나 - 음향, 녹음의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중 - 이 시간 나는 최선을 다하려 했다.. 



돌아오는 길, 심장이 뛰었다. 왜... 두근거렸던 걸까. 

그 옛날 꿈만 꾸어 왔었던 게 현실에서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서, 괜한 상상에 나도 모르게 아랫배가 아파올 만큼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심박동 수를 증폭시킨 걸까. 아니면 차오르는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에 복받쳐서, 혹은 잘 해내고 싶은데 막상 좋지 않은 목소리 컨디션을 가진 터라 너무 가라앉으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앞서서? 



간직하고 있어서. 

여전히 이렇게 '나' 만이 알 법한 소중한 것들을 간직하며 살 줄 아는 인간으로... 아직 살아가고 있어서. 타자들이 보기에 무모한 시도, 지인들이 보기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그럼에도 나에게만큼은 커져버린 마음을 동력 삼아 앞으로 앞으로... 그저 나아보려는 어떤 마음 때문에. 



그리움을 놓치지 않아 보고 있다. 

간직한 것들을 향한 그리움.. 그것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일 테니까.



'당신' 에게 닿기 위해 나는 오늘도 시간을 채워나가 본다. 그리움을 간직하며.. 



버려진 유리병이라고 빛나지 않는 건 아니다. 없어지지 않았다면.  



#아침_단상   #꿈_그리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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