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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29. 2019

나만의 별을 찾아서  

그리하여 찾았다면, 그렇게 나아가기를.

우리를 둘러싼 모든 별들이 마치 거대한 양 떼처럼 유순하게 고요히, 그들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따금 나는 이 별들 중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부드럽게 내 어깨에 내려앉아, 잠을 청하고 있다고, 상상했다.


- 별,  알퐁스 도데 -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잠든 모양이었다.

뒤척임에 떠진 눈, 자동반사적으로 손은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쳐다본다. 새벽 4시가 지나가는 중이었다. 다시 잠들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아예 일어나자고 다짐하곤 거실로 조용히 나갔다. 널브러진 장난감을 치우고, 아침을 위해 쌀 두 컵을 미리 씻어 놓는다. 그리고 노트북이 놓인 책상으로 어깃장 부리듯 슬렁슬렁 다가간다. 쓰다만 실용 원고를 쓸까 아니면 그냥 소파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을까 싶다가 책장 앞에 섰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낡은 책 한 권... 그리곤 잠깐 타임슬립... 이렇게 책이 주는 기억과 예상치 못하게 마주하면 여전히 생경스럽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인 '별'을 혼자가 아닌 '함께' 읽었던 때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 한 장면 만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었나 보다.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내가 그에게 '누나'였던 때였다. 우리는 그것이 사랑 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하는 어린 어른들이었다. 그는 스무 살, 나는 스물한 살, 우리들에겐 모두 '연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첫 번째 사랑이었다.



'별'의 한 구절을 따라 했었다.

가끔 즐기곤 했던 - 과거형이다 지금은 그럴 순수한 마음이 꽤 없어진 것 같다.. - 독특한 취향 중 하나가 '책 따라 하기'였다. 문학의 한 장면을 캡처한다. 그리곤 마음에 든 단락이 있다면 그걸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카피캣'으로 직접 해보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난 참 이상하게 놀곤 했던 것 같다. 돌아이였나



아가씨는 날이 밝아오면서 별빛이 희미해질 때까지 꼼짝 않고 그대로 기대어 있었다.
나는 아가씨의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슴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내 마음은 아름다운 생각만을 하게 해주는 맑은 밤하늘의 보호를 받아

어디까지나 순수한 마음을 지키고 있었다.



난 스테파네트처럼 유순히 잠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도 그리 순수하진 않았다.

소설을 따라 하다 서로 각자의 '비틀기'의 느낌이랄까. 책을 같이 읽다가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척'을 했다. 그리곤 약간의 상상을 가미했다. 그가 순수한 목동이 되어줄 것인가 아닌가라는 악취미 기질이 발동되어 머릿속에 온갖 장면이 부유하는 순간.



그의 입술이 다가오는 시선이 감지되었을 때 조용히 눈을 떴다.

홍조가 그의 얼굴이 생각난다. 상당히 악취미적인... 누나는 분명했었다. 미안하다. 그때 그랬을까.. 좀 고분고분하게 굴어 줄 걸 그랬나 싶다. 사랑에 취약했고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던 어린 어른의 시절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도서관에서 자주..아니 거의 도서관 앞에서 맥주를 많이 마셨던 것 같다. 그때도 책맥은 함께였구나..






15년이 지나서 '별'을 발견했을 때, 이상하게 그리워졌다.

새벽에 일어나 식구들의 밥을 준비하고 난 이후, 책장 앞에서 '별'을 발견했을 때. 십 년도 더 된 과거의 어린 어른의 그 시간, 그 자유로움이.. 그리웠나 보다. 서툰 용기만 가득해서 뭘 해도 괜찮다고 기죽지 않고 참 열심히 살아내려 애쓴... 이십 대의 용감했던 나를, 용기가 있는 '척'을 좀 더 잘 해내는 삼십 대의 내가. 잠시 그리워져서. 그래서 '별'을 다시 봤을 때 묘한 느낌이 들었나 싶다. 새벽이라는 시간이 주는 마법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투박해도 투명한, 나만의 '별' 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소파에 걸터앉아 그냥 음악을 듣기로 했다. 무릎에는 '별'을 올려둔 채. 생각에 빠졌다. 나의 '별' 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 별은 어떤 것으로 변질되었는지를. 누군가에게 별은 '꿈, 혹은  '목표' 혹은 '사랑' '사람' '자유' '시간' 뭐 이런 가치들로 각자의 의미를 담을지 모르겠다.



의미야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마음 한편에 각자의 '별'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할 테다.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 몰래 조용히 품고 있을 뿐,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해서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를, 잠들어 있는 그 '별'을. 그리고 여전히 '별'을 쫒으려는 이는 알지 모른다. 표현이 쉽지 않지만 그 마음 상태가 주는 현실 속 자신의 모습들이 어떤 '별'을 지금 만들어 가고 있을지를..



쳐다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별이 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아무도 모르는 그 꽃을 찾아서'

나만의 '별'을 두서없이 생각하고 있던 도중과 만난 귓속에 담긴 문장 덕분에, 괜스레 눈물이 나려 했다. 뭉클함은 그렇게 목울대에 닿아 심장으로 내려가는 듯 심장이 두근두근 해대기 시작했다. 요 몇 달 일상생활을 지속하다 가끔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끼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중 하나일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낸다.



나만의 '별'을 찾아서.

정말이지 '아무도 모르는 그 꽃'을 나만은 알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이들은, 그렇게 달려가고 있지 않을까. 새벽이 반복되며 오늘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렇게 매일이라는 순간이 겹겹 하게 쌓아 올려지다 보면... 어느새 '별'에 닿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마냥 순수하기만 해서 바보 같다 생각되는 가끔 찾아드는 힘이 드는 무거운 시간이 찾아와도.  



'별'을 기억하고 사는 사람의 생은 아름답다고.

분명히 아름답다고... 보이지 않아도 이미 마음 안에는 꽃이 조금씩 피어나 그렇게 보이는 바깥에서도 씨앗이 뿌려지고 만개할 날도 머지않았을 거라고.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별'을 찾아 그걸 쫒아 내는 나는 음악을 듣다 그렇게 내내 중얼거렸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어느새 새벽 다섯 시를 지나서 여섯 시를 향해가고 있을 무렵,

달력에 표시된 다가오는 공모전 날짜가 또렷하게 시선에 들어왔다. 심장이 또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늘 잠에서 먼저 깨어나 '엄'를 찾는 첫째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물을 거두고 다시 하루를 시작해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소리.



나는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별'을 품은 채 나의 또 다른 '별' 에게 다가갔다.

오늘도, 이 '별' 들이 무사하기를, 그리고 그 '별'을 여전히 잃어버리지 않기를. 손을 뻗는다. 아이를 끌어 앉는다. 그리고 인사를 건넨다. 나의 '별' 들에게 하루를 그렇게 알린다.



'사랑해... 좋은 하루'



'헤븐....'  의 별... 찾았기를. 그리하여 놓지 않기를. 아직 꽉 붙들고 그렇게... 오늘을. 맞이하기를.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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