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 너만의 방식으로.
가장 정확한 사랑의 고백은 오직 독백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 애인의 애인에게 -
삼월의 마지막에서 사월의 첫날이 되어 버린 새벽
매 달 마지막에서 처음으로 가는 시간에 기어코 의미를 부여하고 만다. 그러곤 달력에 습관처럼 동그라미 몇 개를 그려낸다. 새벽 다섯 시. 일상이 반복되는 시간, 오늘의 아침이 조금은 더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 덕분일지 모르겠다. 매 달 '처음' 이 주는 어떤 '시작' 들...
언제 썼더라 기억도 나지 않다가 문득 다시 소설 생각이 났다.
쓰다 만 소설.. 단편도 아니고 장편도 아닌, 어느 화에서 마침표를 찍을지 모르는 채 정처 없이 흘러가는 원고 한 꼭지로 시작해 낸 웹소설이 있다. 처음 주인공들을 현실 밖으로 그려내, 그렇게 대사를 입히고 장면을 연출시킨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과 마음이 가는 그대로 제멋대로 휘갈기다시피 한 문장들에 빠지듯 살았었던 지난 몇 달들. 마음 둘 곳 없었을 때, 괴로웠을 때 '더 잘' 탄생되곤 했던 문장들과 영접했던 시간이 어느새 요 몇 달,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들과 잠시 이별했던 시간에 이제 종지부를 찍고 다시 '시작'을 알리고 싶었나 보다.
잠들지 못했던 어제, 그리고 오늘 새벽 내내, 책을 읽다가 문득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읽던 책을 덮어 두곤 그대로 소파에서 노트북이 놓인 식탁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곤 그대로 뭔가를 두서없이 적어 내기 시작했다. 문장이 그렇게 스케치되어 결국 엉터리 같은 글 하나에 '저장' 버튼을 꾹 눌러버렸다. 13화... 초고 완성. 그리고 4월도 시작.
소설을 쓸 땐 보통 어떤 본능이나 직관을 따르곤 한다.
읽는 분들껜 여전히 죄송스러우나 최소한 소설을 쓰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내 세계'에 빠져서 욕을 듣든 말든 비문이든 아니든 그런 건 열외다.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인물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와 그녀와 교감하는 것. 연상되는 장면과 바라는 장면의 교차점이 그려지면 그걸 그대로 순간 캡처해서 손가락으로 끌어 가지고 와 그대로 타이핑.... 하는 시간들. 무슨 신내림... 의 느낌 정도다. 여기에 캔맥주 한 캔이 목을 타고 넘기면 금상첨화.. 그 날은 '해피엔딩'이다.
새벽에 몇 단락을 마치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시 '시작' 했다는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써야 하는 원고는 그리도 쌓여 있건만,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지 라는 스스로를 향한 자조적인 한숨일지도. 그래도.. 그러해도. 여전히 믿고 있나 보다. 나에게만큼은. 넌 지금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루틴 한 작업을 계속 잇는다는 것엔 얼마나 위대한 용기가 깃들어 있니 라며 스스로를 애써 달랬다.
믿을 수 없는 순간에도, 믿는 용기가 좀 더 만개하는 사월이기를 바라는 중이다.
무언가를 이유 없이 믿어 본다는 것, 또한 그 믿음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그것이 건네주는 기쁨뿐 아니라 동시에 그것을 위해 일상 속에서 수반돼야 하는 괴로움, 즉 고통도 함께 따라온다는 걸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기에. 용기라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 고통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담대한 용기란, 놓쳐버릴 것 같은 믿음을 결국 잃지 않으려는 의지이니까.
왼쪽 손등 위에 오른쪽 손바닥을 올려 둔다. 그리고 나는 내게 간청했다. 정성을 다해서.
진실과 진심이란 다를 수 있지만, 중지돼있던 진실은 다시 시작이라는 진심과 만나, 결국 직관을 따라는 용기에 닿을 수 있기를... '가장 정확한 사랑의 고백'을 마음에 품고 이렇게 독백으로 사월을 맞이한다.
나아가, 너만의 방식으로. 달려가봐, 때론 숨이 가빠질 정도로...
#점심_단상 #러시안룰렛 #원고든_뭐든_다시_시작하면_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