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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12. 2019

불온한 마음

서로 다른 집단이 경계를 철저히 존중할 때만 존재하는 법이지. 

모든 위반은 무질서와 불행을 불러오게 마련이야... 


- 여자들의 꿈 - 




집단의 화평을 위한 질서와 조화를 위해, 때로 개인은 철저히 이중적이어야 한다고. 

책 한 장 넘기는 것에 거의 한 시간이 걸려가고 있을 새벽의 생각은 끊김 없이 나를 찾아왔다. 마치 지속해서 전원이 들어와 있는 와이파이 라우터 마냥... 오랜 해외 체류 끝에 돌아온 그이와 시부모님들을 위한 최선의 도리를 다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주말을 함께 지내기는커녕 분명 곧 본가로 곧 가실 것이라는, 이미 예상된 예감 때문이었을까.. 



초복이라는 이벤트를 챙겨 드리고 싶었던 진심과. 한편으로는 '만회' 혹은 '인정' 받으려던 '욕심'.

이중적인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퇴근시간이 다 돼갈 무렵 나는 아버님이 좋아하는... 족발을 샀다. 차를 가지고 집으로 귀가하는 그에게 먼저 음식을 들려 보냈다. 그이가 물었다. 그리고 나는 대화를 끝내자마자 내가 상당히 뻔뻔하고 이기적인 여자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 같이 안 가?

- 나... 한동안 계속 퇴근길 걸으면서 갔었어. 부모님들 덕분에... 

- 뭐? 

- 집까지 음악 듣고 읽으며 걸어가는 시간. 오늘이 마지막 같아서. 혼자 가고 싶어. 먼저 가. 

- 그래. 같이 와서 먹자. 

- 아냐 먼저 먹어나. 도서관 들렀다 가야 해. 마트도.. 가야 하고. 

- 같이 가자. 

- 혼자 갈게.

- 그래 그럼. 



아무것도 아닐, 지극히 단순한 대화. 그러나 그는 알았을까. 두 사람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환심이, 한 사람에게 조금씩 없어져 간다는 것을. 어딘지 모르게 미안함과 슬픔이 밀려왔던 건, 마음을 여는 누군가와, 마음을 다시 조금씩 닫으려 하는 누군가를 목격하고 말아서. 그래서였으리라. 



그래도 나는 웃었다. 미소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마트에 들러 아이들의 요구르트를 샀다. 세일을 원망하는 이중적인 나를 다시 발견한다. 

세일이 아니었다면 한 묶음만 샀을 텐데 싸다는 핑계로 무려 4 뭉치를 샀다. 묵직한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들어있는 도트백은 왼쪽 어깨메고, 그렇게 한껏 무거워진 것이 짐인지 아니면 몸인지 아니면 어떤 마음인 건지 알지 못한 채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갔다. 



집 문을 열자 족발과 갖 지은 밥 냄새가 온 집안을 둥둥 떠다니며 나를 맞이했다. 

아이들은 땀에 흥건히 젖은 채 아빠와 함께 뛰어놀고 있었고 부모님은 식사를 거의 마치고 계신 상태였다. 옷을 갈아 입고 말을 섞으려 한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이미 말은 새어나갔고 그것은 한 사람의 소통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나는... 이렇게 어리석다. 언제나 뒤늦게 알아 버린다.. 



- 족발 어떠세요? 입맛에 맞으셨어요?  

-... 

- 내일 가실 것 같아서 미리 샀어요..



이상하게 나는 배가 고프지 않은 요즘을 지내고 있다. 

특히 어제는. 족발 냄새로도 충분히 이미 먹은 것 같은 더부룩함 때문일까. 아니면..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대답임에도 알고 말을 건네려 했던 여전한 에너지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오늘 아침, 휴가를 내겠다던 그이에게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조금은 여유가 있다고 느꼈던 모양인지 스스로도 쌀을 씻으며 손놀림이 느려짐을 느끼고 말았다. 늘 그러한 아침 일상... 먹을 사람 인분만큼 쌀 몇 컵을 씻어 두고 밥솥 안에 넣어 둔다. 몇 가지의 반찬들을 만들어 두고 어제 해 둔 빨래가 말랐는지를 확인하고 게기 시작한다. 다 게고 나면 아이들이 볼 TV 프로그램을 미리 세팅해 둔다. 그리고 일어난 아이들을 차례로 맞이한다... 그리고 식구들이 다 일어났을 무렵 간단히 청소기를 돌린다. (아. 오늘 청소기는 생략했다. 어제 걸레질까지 다 마무리했기에..) 



그리고 나는... 다시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래야 될 것 같았기에. 



- 어머니 아버님. 아범이 오늘 휴가를 낸다 해요. 등원은 조금 늦게 시켜도 될 것 같아요 

- 우리 오늘 간다. 

- 아.... 주말까지 조금 더 있다 가셔도 되는데.  



사실 나는 이 예감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몸이 반응하듯 어제 족발을 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하고 싶은 말과 차마 하지 못한 말 반반을 입과 마음에 담은 채 그렇게 대화를 섞어냈다. 



- 우리도 가야지. 아범 왔으니 이제 우린 필요 없지 않냐. 

- 네.... 이제 저희가 볼게요

- 네가 고생이지 

- 아녜요... 제가 감당해야 하는 게 맞는대... 괜한 신세 집니다. 매번. 죄송합니다.. 



그리고, 올 것이 다시 왔다. 들을 것 같았던 마음. 외면하고 싶었던 목소리.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현실. 



- 욕심을 좀 덜 부리고 일도 좀 쉬엄쉬엄 해라. 

- 네... 근데 저 일... 하는 거 재밌... 어요. 

- 회사 일이든 니 일이든 니 욕심부려서 애들한테 좋을 거 없다. 생각 좀 해봐. 애 보는 거. 

-...... 불편한 데 계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운전 조심히 하시고요. 



가볍게...조금 더 가벼운 마음이고 싶다. 깃털..처럼. 되도록. 





출근을 하려 집 문밖을 나오자마자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어제부터 말썽인 블루투스는 기어코 수명이 다 되어가는지 한쪽이 들리지 않은 채 불편함을 선물했다. 아니 사실은 불편했던 것은 한쪽이 고장 난 블루투스가 아니라 어딘지 나사가 빠진 채 삐그덕거리는 나의 마음. 그리고 불편한 어떤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집단으로부터 해방되고픈 욕구

그러나 그러기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사이에서 가슴 찢어지는 매우 치열한 내면의 투쟁. 사실은 참 단순한 일인데도 우리는 할 수가 없는 것들. 그리고 그것이 불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온갖 잡스럽고 쓸데없는 생각에 반항하듯 애써 생각을 마치며 버스에 올라탔다. 



모든 변화가 그렇듯 내 속에서도 변화하지 않으려는 것들과 변화하고자 하는 것들이 싸운다.

상처들이 욱신거리면서 아파오지만, 그런 시간들 또한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무색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집단의 평화를 위한 개인의 이중성을 간직하여 온순한 모두의 시간을 지킬 있다면 조금은 그래 보자고. 개인에겐 불온하나 모두에게 평온할 수 있다면, 



나는 당분간 불온해지기로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들을 지켜낼 수 있다면.. 



사실은 거짓말, 나는 그 어떤 것도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요즘은 그렇다... 불온하다. 스스로도. 




#아무말_그로인한_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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