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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19. 2019

지키지 못하는 어떤 여행 앞에서

 ... 다음엔 지키리라고..약속했다. 스스로.. 

하지만 때때로 이런 걱정이 들어.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 비포 선셋 - 




인생은 예측 불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종잡을 수 없다. 다만 그 잡을 수 없는 시간,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중 하나는 그럼에도 '잡으려 한다는' 것 일지 모른다. 시간의 '주인'으로, 되도록 타인에 의한 좌지우지되는 시간이 덜 되기를 바라는 인간 중 자아가 강한 편인 이들은, 그래서 고통과 좌절과 일종의 무기력감마저도 느끼고 마는 걸지 모른다. 지금의 '나'처럼... 



'가족 휴가' 계획 하나 생각하는데 온갖 잡생각이 찾아왔다.

왜?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에... '회사 인간' 으로 일정 부분을 지내야 하는 우리는 무기력함에 잠깐 주저 앉아야 했으니까. 조직에 속한 인간들의 특성 중 하나는 공식적인 '규칙' 은 비공식적인 암묵적 '규칙'에 종종 눌리게 된다는 것일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내 조직 내에서도 늘 있는 일이었다. 가령 주 8시간 자율 근무제? 누군가에겐 택도 없는 소리다. 야근과 휴일을 불사하는 국내외 출장이 잦은 누군가에게는. 수당? 그마저도 '초과근무수당' 이 나오면 감지덕지. 현 조직에선 물리적 노동시간에 응하는 '보상'이라는 건 기대해선 안된다. 



다 좋다. 인정하고 살았다. 다만 어제 나는.... 폭발해 버렸다. 원치 않은 '강제 휴가'의 부여에. 

아무리 생각해도 극 성수기의 일괄적인 휴식을 쓰라는 것에 분노가 터지고 만 것이다. 



- 극 성수기에 쉬는 바보가... 되겠네. 우리. 

- 원래 자동차가 그렇잖아.. 업계가 쉬면 다 쉬잖아. 공장 셧다운 하는 것처럼.

- '원래' 라는거 애초에 없어. '원래' 라고 어처구니 없는 무례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거에 불과해. 

- 또 말꼬리 붙잡고..

- 그래. 내가 이상주의자라. 알아. 내가 또라이라는거. 다 아는데. 화가 나. 보스와 리더의 차이. 알아?

-...

- 보스는 '가라' 고 하지만 리더는 '가자' 고 한대. 나는 이 결정을 내린 사람이 리더라고 여전히 안 느껴져. 누구 위한 휴가지? 휴가 일정 개인이 정하도록 사칙 밖아 두고도 결국 그런 '약속' 은 회사 좋을 때만 발휘되나? 아무렇게나 바꿀 수 있는 게 규칙인가? 그럴 거면 법은 왜 있고 사규는 왜 정해놓는데.. 하여튼 우리 회사. 막장이구나..

- 별 수 있나... 막장인 건 어제 오늘 일 아니잖아. 그리고 이해해 줘. 다들 입장이라는 게 있잖아. 

- 여전히 조직생활 하기에는 내가 '국어'를 못해. '주제 파악'. 근데 진짜 국어 못하는 게 누구들인가 싶다. 직원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거. 일찌감치 없어진 지 오래인 곳이다만. '불통' 이잖아. 

- ...



차라리 호랑이와 소녀가 더 잘 '소통' 될 것이다. 언어는 마음과 만나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기에.. 



같은 조직에 속해 있는 그이의 입장이 되려 슬퍼서 그랬던 걸까. 

애석하게도 나는 '애꿎은 화'를 내고 말았다. 그의 자리, 그의 입장.... 따를 수밖에 없는 암묵적인 강제와 강요, 그로 인해 어떤 무기력한 좌절감, 선택권이 없는 환경에 놓인 채 그저 '책무'만 요구하는, 내 눈에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모순투성이의 조직생활들... 어쩌면 내가 회사에서 가끔 '지랄'을 제대로 해내는 이유는, 나의 가족 구성원의 '형편'을 대신 느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회사가 정해 버린 또 다른 여행인 '워크숍' 또한.

그이의 일정 '때문에' 나의 모든 글쓰기 혹은 독서 모임은 그야말로 빠그라지기 일쑤... 아니 기정사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늘 아침... 그로 인한 나의 무력한 반항과 좌절은, 아기들의 아침을 챙기고 난 이후의 설거지에서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릇 하나를 깨뜨릴 뻔했다. 의도적인 집어던짐이 아니라 (그러고 싶었지만 다행히도 요즘 이성이 잘 이긴다) 정말이지 딴생각을 하다가 - 최대한 참석하려는 어쩐 모종의 대안 등등등 - 손이 미끄러져버리고 만 것이다. 다행히도 세제를 잔뜩 묻힌 그릇은 바닥에 나 뒹굴어 깨지지 않았지만.. 허리를 숙여 그릇을 집어 올리면서 나는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 그거.. 나한테 2시간짜리 '여행' 같은 거야... 당신 그거 알아?

-.....

- 늘 그렇게 갑작스레 결정되는 워크숍, 야근, 기타 회식 번개 등등등. 당신 덕분에. 아니 당신 때문에 내 여행.... 나는 그 몇 시간 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 

- 어쩔 수 없잖아 이것도 내가 원한 게 아닌데

- 원한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발도 하지 않지. 당신 언제나 그랬잖아. '회사 인간'으로 최적화됐잖아..

- 그만 하자. 

-.... 다른 건 몰라도 토요일 독서 모임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최대한 방법. 같이 생각해줬음 해. 

- 장모님은 안돼? 

-.... 더 이상 우리 시간 문제에 엄마..끌어들이지 마... 이제 그러고 싶지 않다.

- 방법이 없네.. 한 번 안 가면 안 되는 거야? 

-.... 그 팀장 워크샵인지 나발인지. 그 낚시하러 가는 거. 한번 안 하면 사표 내야 하는 거야? 비즈니스. 술 안먹고는 정말 안 되나? 하긴 몇 십년 일하고도 '술 안 먹는 비즈니스' 본 적이 없긴 하다만. 아이러니해. 상장기업의 월급쟁이 현실. 

-..... 회사 일이잖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 안해야지. 깊게 생각. 안 해야 정신 건강에 좋지. 근데. 안 할 수가 없는 건 결국 내가 '포기' 해야 하니까. 도대체 '포기' 라는 걸 얼마나 더 하고 살아야 하나 싶다. 지겨워...

-그만 둬. 그럼. 

- ...그만하자. 




여러 면에서 '조직생활' 에는 언제나 보이스를 내려하는 트러블메이커였던 '나'는. 

급작스레 결정된 그이의 여러 '공식적인 책무' 덕분에 결국 나는 나만의 여행을 '포기'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일상에서 유일하게 움켜쥐고 살고 있는 쉴 틈 같은 시간... 읽고 쓰는 벗들과 함께 하는 단 2시간가량의 나만의 '여행' ... 이 조차도 못하고 사는 '여자'들 많을 거라는 갖잖은 위로를 스스로 퍼부어가면서... 



반대로 생각하자면...자유로운 새라고, 외롭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법은 또한 아닐테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데 내가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억지로 아등바등 현실에 '반항'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의 끝에서 남는 건 알 수 없는 어떤 답답함. 퍽퍽한 고구마를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채 억지로 입에 쑤셔 넣다가 사래가 들린 듯한.. 느낌이었다. 




어찌 됐든 우리는 그런 와중에서도 '여행'이라는 것을 가기로 했다. 

고백하건대 가족 여행은 진짜 '여행' 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못돼 처먹은 나로서는... 아이 둘 데리고, 동생이 근무하는 대학교와 그 지방 투어나 할 참이다. 그 여행을 위한 '짐'을 준비하는 시간은 분명 몇 개의 설렘과 동시에 몇 개의 무거움과 동시에 몇 개의 아쉬움이 뒤섞인 시간 이리라. 



그렇지만... 분명 '여행' 은 '여행' 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여행' 이란 '나' 와 '너' 를 다시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 그로 인해 '현재' 의 '소중함' 을 깨닫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시간... 또한 여행이란 누군가에게는 '풀 수 없는 현실의 갈증을 풀어주게도 하는, 때로는 고통 때로는 선물 같은 시간' 일테다. 원치 않은 환경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충분히 인정하려는 마음. 조금 더 기를 수 있는 인내심... 의 요즘이라고 본다. 



좋은 목소리, 괜찮은 시간...이야기와 함께라면...그 도로위의 시간도 '여행' 이리라...



언제나 읽다 만 한 권의 책이 담긴 가방. 그 가방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나의 이런 일상 속 '여행' 을 여전히도 '고수' 하려는 최선은.... 결국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상 속 여행'을 즐길 뿐이라는 것. 그 영화의 주인공이 말했던 대로 어떤 '걱정'이라는 것을 하는 나의 아침은 이렇게 '쓰는 여행' 으로 시작한다...




#누구를_위한_여행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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