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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23. 2019

위로의 기쁨과 슬픔

아이스크림, 책, 글, 그리고 목소리...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행복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어느 한 군데도 안 아픈 게 엄청난 행복이라는 걸 엄청나게 아파본 사람만 안다. 

많이 아파본 사람일수록 더 잘 안다. 불행했던 사람만 행복을 안다. 


-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 - 






눈을 떠 보니 12시를 막 지나갈 것 같은, 애매한 시간. 11시 58분이었다. 

또 아이들을 재우고 같이 잠들었던 거다. 무의식 적으로 핸드폰을 중간에 보았던 걸까. 톡들이 '읽혀' 있었지만 읽은 기억이 없다. 다시 단체 카톡 방의 수 백개의 읽지 못한 메시지들을 훑어보던 중, 아차 싶었다. 곧 출간될 공저의 1차 원고 교정을 위한 그룹 콜이 예정되어 있었던 밤 10시. 결국에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반은 예상했던 대로.... 의지는 체력을 가끔 이기지 못한다. 아니면 그 의지가 완전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 이리라. 모두에게 미안한 나머지 나는 그 어떤 메시지도 보내지 못했다. 다만 물끄러미 녹음본이 남겨진 파일의 저장버튼만 누를 뿐이었다. 



남편은 다른 방에서 자고 있었다. 

아마 잠든 사이에 온 걸게다.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며 틀어져 있던 에어컨의 온도를 낮췄다. 그리곤 다용도실로 들어갔다. 세탁기를 돌리고 미처 널지 못하고 아이들을 재우는 통에, 이미 탈수를 마친 채 한 시간가량 세탁기 안에서 엉켜 있던 빨랫감이 무의식적으로 생각났기에. 살림'도' 하는 아내 경력 8년 차,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았다. 주부 정신이 몸에 배어있는 걸까. 이젠 익숙한 손놀림이 새삼스레 반갑다. 



빨래를 담담히 널면서 많이 변했다 싶었다. 

예전'엔 빨래 정도 널어 주면 좋을 텐데 라는, 퇴근하자마자 자기 씻을 거 배우자를 향한 분노나 어떤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마저도 집안일을 거드는 그 수완이 탐탁지 않아 다시 한 적이 있었기에,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빨래를 다 널고 나서 소파에 앉았다. 요즘은 집에서 '글을 쓸 여유' 같은 걸 만들 수가 없다. 키보드보다 읽다 만 책 몇 장 읽는 것만 해도 감지 덕지다. 




읽는 여자는 섹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고 이젠 바라지 않는다.. 익숙함이 주는 것들 덕분...



읽다 만 책 몇 문장을 읽어 내려갈 무렵, 이상하게 목이 탔다. 요즘은 자꾸 갈증이 난다. 

더워서.. 그런 걸 거다. 냉장고 문 앞에서 잠시 주저했다. 물을 마실까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후자의 승리. 밤에는 야식, 여름밤엔 아이스크림이다. 월드콘 위에 박힌 몇 알의 땅콩과 초콜릿 조각, 그리고 바닐라빈이 조금 박힌 적당히 싼 맛의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혓바닥에 닿는 순간.... 잠깐의 달콤함에 어떤 위로를 받았던 걸까. 그리고 그 위로를 멈추지 않으려 작정한 듯, 나는 선 채로 순식간에 월드콘 하나를 해치워버렸다. 5분. 아니 3분 걸렸을까. 다 먹고 소파에 앉아서 다시 책에 눈을 올린 순간...



쓸쓸.. 했다. 

월드콘이 내게 준, 딱 그 정도만큼의 위로를 다 받고 그 위로가 끝났다는 걸 다른 이들보다 좀 더 깊이 느꼈던... 이 빌어먹을 감수성 탓을 해 본다. 위로의 시작에도 '끝' 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인스턴트 위로'가 기쁨과 동시에 슬픔일 수도 있다는 것. 고작 아이스크림에 위로를 받는 삶에 조금은 미안해서, 뭐라도 좀 더 더한 위로를 스스로 건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정답 없이 정의되지 않은 감정과 마음과 생각만이 집안 거실 곳곳에 붕붕.. 하고 떠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나는 한 시간 정도 소파에서 자고 다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것들... 가끔은 일어난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을 떄가 있지만, 아직은 쉽지가 않다. 몸에 베어 있어서..



늘 그렇듯 첫째가 먼저 눈을 떴다. 엄마를 찾는다. 그리고 웃는다.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사랑해 굿모닝 민'이라고... 첫째는 신기하리만치 가르쳐주지도 않은 언어와 감정표현을 요새 잘 구사하곤 한다. 오늘 아침, 아이에게 들은 몇 마디 덕분에 나는 깜짝 놀랐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서 월드콘의 몇 백배에 버금가는 커다란 위로의 기쁨을.... 동시에 적잖은 쓸쓸함을 또 한 번 느꼈다. 



- 엄마, 우리 돌보기 힘들어? 

-... 훈민이는 하나도 안 힘들어. 

- 동생은?

- 음... 정음이는...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안 힘들어. 그리고 힘들어도 괜찮아. 

- 엄마. 

- 응?

- 사랑해

-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화끈거림이 전해졌던 건. 

아마도 어젯밤의 연장선에서 선 내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아이의 그 '사랑해 '라는 목소리에서 순간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던 것은... 아이가 나보다 더 어른 같아서였다. 아이를..뛰어 넘지 못한다. 요즘은 그렇다. 그 투명한 마음, 올곧고 완전한 사랑, 재지 않는 본능적인 마음, 어느것 하나 아이 만큼의 '사랑'을 나는 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 나이의 원초적인 사랑 표현이.... 너무나도 질투나고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아이의 본능적인 목소리로 인해 나는 커다란 위로를 받아 버린다... 우울했던 마음은 그렇게 조금씩 해체된다...



안개도 영원하진 않다. 흐릿하다가도 선명해지고 다시 반복...되면 그만인 것을.



어젯밤 빨래를 널면서 내가 했던 것들, 생각들, 그리고... 불온하고도 불순한, 입 밖으로 차마 내뱉지 못하는 생각들. 어떤 상념들...... 그것들이 엉키고 설킨 채 마음에 담겨 있다가, 순식간에 그 순수하고 투명한 목소리 하나에 와르르 무너져버릴 때. 어리석은 나는 도대체 어디서 '사랑' 을 찾으려고 했었던 건지. 스스로 책망하면서도 동시에... 그냥 기뻤다. 정말 그냥... 그 위로가 주는 기쁨고 슬픔을 온 감각으로 받아들인 채. 



아이스크림, 책, 글,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서 사랑해 라고 말해 주는 목소리. 

그 정도면 충분한 위로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나는 정말이지 다 갖고 있는... 축복받은 '여자'라고... 한번 더 스스로 주문을 외우듯 말해본다. 스스로에게... 참가하지 못해 버린 공저 콜, 가지 못하고 마는 주말 몇 시간의 글/책모임들, 평일 연속되는 독박 육아의 일상, 한 달가량을 밀려 버린 개인 원고 교정 작업, 언제나 끊어 읽을 수밖에 없는 읽는 시간...  그래도 그것들을 다 뛰어넘을 수도 있는 건.



적절한 위로와 그 이후에 찾아오는 기쁨과 슬픔 때문에. 

그 모든 것들도 결국은 '살아있는 자' 들만이 겪을 수 있는 것들이라는 걸 알기에. 그 '살아있음'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해할 줄 알아야 할 텐데. 여전히 어떤 쓸쓸함을 스스로에게만큼은 감추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어리석은 채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 내내 귓가에 윙윙 거리는 아침. 다시 하루 시작이다. 



바람이 좀 시원했음 좋겠지 싶은, 7월, 비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아침_단상 

#다음엔_구구콘을_먹도록_한다_더_단맛이_필요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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