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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l 16. 2019

우리가 사랑할 시간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집니다. 


- 산 자들, 작가의 말 -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라고. 

사라마구 - '눈먼 자들의 도시'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작가 - 가 남긴 문장... 과연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 믿고 살지만 반대로 '사랑' 때문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겠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였을까. 분명 어제 읽다 만 책 때문도, 늦게까지 칭얼대다 겨우 잠에 든 두 아들과의 귀여운 사투로 인한 고단함 때문도, 밤 12시가 지나갈 무렵, 알코올과 고기 냄새에 범벅이 된 그이의 옷을 세탁기에 털어 넣은 시간 때문도. 여름휴가 계획을 생각하다가 소속된 사업부가 '강제' 적으로 셧다운을 외친 그 날짜에 굳이 쉬어야 하는가 - 그것도 극 성수기에 - 를 두고 잠시 말다툼을 주고받았기 때문도, 그 무엇도 아닌 어쩌면 '나의 마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렇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생각의 언저리 어딘가에는 정의되지 못한 '마음' 이 숨어 있었다. 마음.. 때문이리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실감뿐' 이라던데. 

누군가의 그 문장에서 격한 공감과 지지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그 '죽음' 조차 허락되지 못하는 누군가의 생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령 부모들... 이번 생에 가지게 된 - 자의든 타의든 -  책무가 주어지기에 쉬이 제멋대로 살 수도,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 나는 가끔 정말이지 그 책무가 지긋지긋하다... 이렇게 여전히 못돼 쳐 먹었다. 이렇듯 엉뚱한 상상이 꼬리를 타다 결국 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죽음'을 잠깐 생각했다. 그 밤중에 아주 잠깐 동안. 죽은 자들보다 산 자들이 더 무섭다는, 그리운 벗의 말도 떠올려보면서...



책무 '덕분' 에 최전선에 우뚝 서 있는 사람들... 쉽게 쓰러지지도 못할 사람들. '부모' 는 그런 것 같다.. 



공감의 결여, 이성과 감성의 충돌, 그 끝에 남겨지는 외로움과 허무함.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문득 다시 피어오르려 하는 어떤 악감정의 원인을 애써 찾으려 어떤 이유들을 마구 나열하는 나를 발견했다. 살이 좀 빠져서, 잠깐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럴 거라고. 지쳐서. 여름이니까.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다들 그렇게 산다고. 너는 쌍둥이니 동시다발적인 살펴야 하는 온갖 댁내 잡무들, 오죽하겠냐고. 열심히 칭얼대는 둘째의 장난과 첫째의 폭풍 국어 실력에 매사 대꾸와 반응을 주고받고자 하는 '괜찮은 엄마'의 책무를 다 하느라, 아니하고 싶어서 결국 하고 마는 너라서. 



그러다.... 그다음에 오고 마는 한 가지의 이유.

최소한의 역할과 기능마저도 요 근래 부실할 수밖에 없는 노출된 환경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물 흐르듯 시간을 보내는 나의 그이... 안다. 그도 표현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을 거라는 것을. 그러나. 그렇지만...... '너는 나만 하니. 너는 얼마나 나만큼 아프니. 너는 얼마나 나만큼 피곤하니. 너는 얼마나 나만큼...'이라는 정말이지 못된 어린아이 심보 보다도 더 유치 찬란한..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고통스러웠다. 괜한 분노도 치밀어 왔지만.



그랬지만.. 인내했다. 아니, 인내하려 애썼다. 

잠든 아이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애써 온순한 양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다시 발견했다. 지긋한 책무가 내게 준 유일한 선물은 바로 '인내' 하는 것. 그리고 말없이 서재로 갔다. 책이 꽂힌 책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떠 보니 새벽 5시. 다시 아침이다. 




가끔, 반복되는 시간이 '길 '같이 느껴진다. 가도 가도 계속 나오는 길..그것은 축복인가..그렇다고 믿는다. 아직까지는. 



고요하게... 늘 그러하듯 아침을 맞이했다. 

빨래를 게고 마른 걸레질을 대충 해 놓고, 저녁에 하원 후 아이들 해 줄 쌀 한 컵을 씻어 놓고, 몇 가의 반찬거리들을 위한 재료 손질을 다 해 둔다. 아침 6시가 지날 무렵 첫째 아이가 눈을 뜨고 한 시간 간격으로 차례로 그이와 둘째가 눈을 뜬다. 가족들을 살피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순간.... 눈물이 흐르려 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싶었던 걸까. 아니면.... '떠나고 싶다'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서 그랬던 걸까. 하원을 시키고 같이 회사까지 차를 타고 오면서 우리는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 당신은 우리가 사랑할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남아있을 거 같아?

- 뭐? 아침부터 뭔 소리야. 

-.... 휴가. 자기 혼자 쓰고 아이들 볼래? 

- 뭐?

- 아니다... 그냥 해본 말이야. 오늘... 애들 구강검진 있어. 병원까진 같이 가줬음 해. 

- 응. 

- 오늘도 늦... 지?

- 응.. 

- 그래.

- 무슨 말하려 했어?

- 아무것도 없어.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만약 우리가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번엔 나 혼자 가고 싶다고. 자신은 없지만 그러고 싶다고. 

나는 말하지 못하고 또한 말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하는 시간, '너'를 사랑하는 시간, 그리하여 '우리'를 사랑하는 시간이 조금씩 없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는 나만의 일방적인 생각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생각의 단편에 그칠 테니까. '혼자 떠나고' 싶은 어떤 마음은. 그래서 그런 걸 거라고. 스스로 외면하듯 혹은 애써 다독이듯, 그 어떤 생각들이 꼬리를 문채, 회사를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마냥 음악을 들으며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한 때. 보잘 것 없는 여행지의 벤치도 모두가 아름다웠던 그 때....를 기억해서 그랬었던걸까...



지하 3층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 탔다. 그리고 한 층을 올라갈 무렵, 사장과 마주했다. 

우리가 어느새 떨어져 서 있다는 사실을, 정작 본인들은 모르고 그걸 지켜보는 1인은 알았던 걸까. 그가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 회사에서도 보고 집에서도 보고 지겹지?

- 아닙니다. 하하 

-....

- 싸운 거 같은데. 둘이 떨어져 있잖아. 

- 저희가 그랬나요 하하. 

-... 네. 저희 방금 5분 전까지 싸웠습니다. 싸운 것 같습니다. 

- 싸우지 마. 싸우지 말고 살아야지 

- 그러게요. 살아야 되는데 말입니다. 들어가십시오. 

- 여전하네 헤븐. 



6층에서 먼저 내린 나는 '여전하다'는 그의 말이 내내 귓가에 남는 아침이다. 

그의 목소리 뒷 문장이 생략된 내게 다가온 같아서. 우리가 사랑할 시간이 만약 단 하루라면. 싸울 시간보다 서로의 눈을 한번 더 살피며 웃어주지 않겠느냐고....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 생이라는 유한한 이 삶의 진실을, 나는 애써. 있는 힘껏. 기억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결국 모든 시간에는 '끝'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이들은 결국 '사랑'만 하려 애쓸 테니까. 

그렇다면 어떤 외로움과 고통, 지겨움과 외면, 허탈한 상실감과 안타까움과 얄궂음... 이런 감정들조차 모두 상쇄될 테다. '인내란 좋은 일이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 이라던 목소리를 강하게 기억하게 될 것 같은 오늘이다.. 



인내란, 좋은 일이 생길 때 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 좋은 일이란, 바다, 바람, 시원함, 그리고 어떤 가벼움....... 가벼움....


#새벽과_아침_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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