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Aug 22. 2019

서서히 스며드는 '어둠' 이 밀려와도

당신은 꿈에 그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건강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마침내 건강해질 수 있도록, 꿈에 그리는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한다.


-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흘러넘치던 눈물

몸은 나를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끝내 외면했던 걸까. 과거의 단편 속에는 지우고 싶은 기억의 파편이 여전히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그것은 없어지지 않은 채 아주 가끔, 찾아온다. 편치 않은 불편한 감정 상태가 극에 치닫고 이윽고 스스로 '관리' 할 수 없을 만큼의 가속도로 나를 휘감싸 앉을 때.



직관적으로 몸은 나를 정지시키려 한다. 

그렇게 '눈물'이라는 것이 터져 나오고 동시에 바들바들 떨리는 손, 튀어나올 듯한 심장이 뛰는 속도감, 그로 인한 잠시 동안의 호흡 곤란.. 진정되지 못한 몸과 마음... 아기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비난과 질책의 목소리, 환청의 연속... 기어코 화장실 변기를 붙잡은 채 먹은 것을 게워내느라 들락날락하기 일쑤였던 한때의 모든 시간들...



예전에 그랬다. 모두 '예전'이라는 '과거'가 되어 버렸기에 '다행'이지만.

여전히 아주 가끔.... 정말이지 갑자기 원치 않게 다시금 그 감정 상태로 들어가려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는 보통 몸이 주는 경고, 신호,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변했다. 정말 많이. 이제는 애써 외면하려고는 하지 않기에. 다만 그대로 '침묵' 그리고 정지'. 그렇게 내내 감정이 사그라드는 것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연습을 반복 또 반복할 뿐...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흐름출판, 2019.07.10. p. 236



때때로 자신의 몸이 알려주는 직감을 무시하기 때문에 '병'이 발생한다지만.  

나의 것이지만 또한 내가 잘 모르는 것이 바로 '몸' 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몸은 나와 함께여서.. '나'라는 사람을 지켜주려 하는 고마운 존재. 마음과 몸은 뗄 수 없는 연인인 셈일까. 헤어질 수 없는, 헤어지지 못하는.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 그런 관계... 말이다. 수렁에 빠졌을 때 구원하려 애쓰는 유일한 목소리는 어쩌면 '몸의 목소리'는 아닐까.



'정신적인 신호든 신체적인 신호든, 정신은 다양한 신호를 통해 경고를 보냄으로써 우리 삶에서 문제가 있는 뭔가를 바꾸고자 노력한다.'




그대로만 있으면 그대로 머물게 된다. 바깥으로 나가려 하면 움직여야 하듯. 몸을 일으켜 그렇게 움직이는 것.



마음과 몸은 서로를 그리워하는 연인... 같다.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몸도 문제가 생긴다. 마음이 편안하면 몸도 따라 그리듯 편안해진다. 반대로 마음이 불편하면 몸 여기저기 어떤 신호를 보낸다. 하다못해 어디든 탈이 나기 마련... 마음은 그렇게 머리 (뇌)를 비롯한 몸, 신경 여기저기 깊숙이 찾아갈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선 실세 같기만 하다. 강력한 군주... 한번 내리꽂힌 마음과 정신의 주문에 몸은 고개를 숙인다. '공황상태'에서의 몸은 결국 어디든 고장 나려 한다. 조금씩 서서히. 부정의 씨앗이 새겨진 땅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생명의 싹은 쉽게 찾을 수 없듯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생각의 기저에 있는 감정이 강렬할수록 머릿속에 있는 신경 연결은 그 성능이 더욱 강력해진다. 따라서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면 신경생물학적으로 공황이 일어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진다. 말하자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뇌에 나쁜 감정과 공포를 느끼는 길을 만들어놓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올 수 있다며.

다만 그것을 '극복' 하려 애쓰는 이들을 위한 일련의 지침서 같은 살가운 조언이 담긴 책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참 애쓰듯 잘 살아냈구나' 싶었다. '벗어나려' 했던 '애씀' 이 그럼에도 있었으니까. '포기'라는 단어도 물론 있었지만 비교적 나의 잠재의식은 나를 지켜주고 있었던 거다. 삶을 긍정하려던 '나'가 존재했기에 '지금이라는 시간을 부정' 하려 했던 어두웠던 '나'는 결국 패소할 수 있었다고.  결국 '긍정' 하려는 마법 같은 주문이 삶의 '부정'을 조금씩 없애 주었노라고...




진정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술은, 뇌에 긍정적인 삶의 느낌을 저장하는 시냅스를 가능한 한 많이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연결망이 충분히 존재하면 뇌는 스스로 알아서 소뇌의 연결망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고, 그 결과 새롭게 긍정적인 자동운동이 구축된다.


신체의 어딘가가 불편하다고 해서 반드시 병원을 방문하거나 119를 부를 필요는 없다.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을 해본다거나 심장을 검사하더라도 특별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보다는 먼저 잠재의식이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하려고 노력해봐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뇌와 삶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어떤 기술과 연습이 필요한지 배우는 게 좋다.




부정 속에서도 긍정하고 마주하려는 어떤 '힘'



오직 '나' 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면.

'공황' 이 다가왔을 때, 물론 병원이든 약이든, 할 수 있다면 의지해야 하겠지만.  아주 근원적인 '뿌리'인 '나'의 상태에, 내가 알아채야 하는 '잠재의식'에 귀를 기울이기도 해야 한다. 그것도 되도록 열심히.  왜? 이 생은 '나'의 생이기 때문에...



극악무도하게 단순한 삶의 진리는 모든 게 '유한' 하다는 것. 영원함은 없다는 것일지 모르겠다.

목숨은 하나, 탄생도 한번, 죽음도 단 한 번, 나의 몸과 마음도 결국 '나'라는 사람의 것.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소중하게 지켜내야 하는 '주체' 또한 '나'라는 것을. 아무리 힘이 들지언정, 조금은 더, 그런 '나'에게 책임의식을 지니기를.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기를....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몸과 마음을. 다시 '웃는 나'를 찾고 싶다며 아우성칠 때 우리는 스스로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나' 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기에. 이건 단 하나뿐인 '나'의 삶, 기뻐야 마땅하고 사랑을 주고받아야 덜 후회하는, 주어진 선물 같은 삶이기 때문에.



'오로지 당신만이 당신의 삶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도 의사도 당신의 가족도 당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그만둘 것인지 최종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성분의 약을 삼키라고 강요할 수 없다. 더 이상 편안하지 않은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당신에게 요구할 수 없다.


매일 불행하게 느껴지는 직장에 계속 다녀야 한다고 그 누구도 요구할 수 없다.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고 당신을 속박할 수 없다.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오로지 당신만이 할 수 있다. '



유한한 삶에서 그래도 어둠보다 빛이 더 많아야 기쁜 삶이지 아니한가.




살면서 엄청난 고통을 겪거나 혹은 어떤 위대하고도 원대한 잡히지 않은 목표가 있을 때

흔히 사람들은 '변화'를 한다고 한다. 그 변화의 장소를 '희극'으로 만들지 '비극'으로 만들지. 무대의 연출은 '나'가 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보다 자유롭고 가벼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 또한 두려움은 덜 하리라.

비록 어떤 두려움이 있을지언정 (원래 살아가며 두려움은 있는 게 '정상'이고 당연한 거 아닌가..) 그 두려움 때문에 참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잠 못 든 채 웅크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드러나지만 않을 뿐. 그런 '일상'의 것들에 지지 말라고. 그리고 언제까지고 웅크리고 살 수만은 없다고. 나는 외쳤다. 그때의 나에게 말했었다.




'일어나라고. 다시 일어나라고... '




누군가가 힘든 시간 속에, 어떤 두려움과 고통 속에, 어떤 실망감을 겪고 있다면.

나 또한 이 문장을 같이 건네려 한다. 한때... 내가 나에게 썼던 편지.... 를. 그 속에 담긴 목소리를.



'일어나요... 괜찮아요. 다 지나가요. 아니, 지나가고 있어요. 울지 마요.

당신이 꿈에 그리는 그 삶은 멀리 있지 않잖아요. 지금 웃으면, 그리하여 지금 일어나려 한다면.

당신은 지금. 기쁨 넘치는 삶으로 그 한 걸음을, 그 힘든 한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생각해요. 마음을 일으켜요. 그렇게 일어나요. 그래서 우리. 같이... 걸어요. 걸어가요.

조금씩 천천히. 삶은 갑자기 탄생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라고...



의외로 또 가볍게 우리는 다룰 수 있다는 힘을 주고자 했던 표지... 였던 듯.  :)




#예전_생각에_그때 썼던_편지들이_생각났다

#난_변했고_잘_살고_있구나_애썼다... 애쓴다... 애쓰자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