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다. 사랑이 사라진 후의 결혼생활, 그건 건강과 경제력을 무기로 한 파워게임이라고.
그렇다면 그와 나는... 게임의 유저. 아니 그 게임 속 캐릭터로 각자의 자리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역할과 기능에 다분히 충실한. 때로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는. 서로의 치트키를 절대 드러내지 않은 채. 때로는 연결된 듯 단절된 그런 관계...
이 감정선은, 나로 하여금 결국 예의와 배려 없는 독선적인 글을 탄생시키게 만든다.
미련하고 바보 같지만, '글'이라는 것이 여전히 '나'에게는 이런 정화작용을 해내는 고마움이라면. 나는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목울대를 차오르는 삶 속 뜨거움을 간신히 식히려 애쓰다 보니 결국 튀어나오는 단어들, 문장들, 그렇게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 새로운 '나'를 만드는 유일무이한 동반자.... 글이라는 것이 내게 그런 존재라면 나는 최고의 동반자를 만났으리라. 그러하니 오늘은 조금 더 그 '동반자'에 기대어 예의 없는 이야기를 짖껄여보기로 한다.
겉으로 보이는 이 감정의 원인은 흔하고 가벼울 듯한 부부 싸움...으로 정의하지만.. 사실 거짓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의 슬픔은 분노로 서서히 진화되다 결국 뜨거운 감정이 솟구쳐 내뱉은 탄식 같은 문장들의 시발점은 결국 그와 나 사이의 '시간'을 둘러싼 파워게임... 인 것만 같다. 그렇다. 그 파워게임 앞에서 언제나 그이에게 지고 마는 나 자신과 마주했을 때. 나는 결국 졌기 때문에. 분해서. 원망스러워서. 결국 감정 조절에 실패해버리고 만 나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다. 한데 신기하다. 예전 같았으면 눈물이 앞섰겠지만...
나는 변했다. 울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대신 조용했다. 아무 표정 없이.
울지 않기로 '확언' 하고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눈물 대신 선택한 건 '침묵'이다. 정말 슬프고 정말 화가 났을 때. 요즘의 나는 조용함을.... 택하기로 했다. 어딘지 모르게 그게 더 슬퍼 보이기도 하지만.
너희 둘의 '엄마' 가 그땐 그랬다고, 나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의 나는..그래.
'참고 참고 또 참고 또 참아내는 시간'을..... 보내다 나의 어두운 자아가 결국 눈을 떴었다.
그리고 나선 둑 터지듯 흘러넘치는 감정, 낮은 목소리... 현실의 깨달음, 그러곤 침묵 일단 그 상황을 '일단 정지' 시키기로 마음 먹고, 대신 내면의 고요함을 택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요하려고 애쓰는' 것을 택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들이켜 마신다. 미간이 약간 찡그러지려 했지만 억지로 미소를 흘려보낸다. 이 행위들이 현재의 나로선 최선이라고 믿기에. 고요하면 결국 찾아올 수 있는 평온의 감정을 기다린 채.
- 그런데 난... 내 시간이 슬프다.
- 뭐?
- 당신한테 시간을 늘 물어보고 구걸하고. 그런 시간....내 시간...
-... 나도 내 시간은 없어. 그리고 시간 안 준거 아니잖아. 오늘따라 왜 그래.
- 그래... 애들 어리고 나는 당신 말대로 욕심쟁이고.. 다 인정하는데. 아니. 사실 인정 못해. 여전히 못하나 봐.구걸해서 겨우 얻어는 그 시간마저 오늘 같이 급하게 '빼앗겨' 버리면... 좀 그렇다.
-... 왜 또 그래. 아침부터. 그만하자.
-......그래. 그러자...
'시간'이라는 것이, 구걸해야 벌어지는 것이라면.
나는 그 구걸해서 얻은 시간마저도 때론 급하게 뺏겨 버리고 만다. 체념과 수용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오늘은.... 생각했던, 아니 바라고 상상했던 아주 사소한 '나의 시간' 들이 소멸되는 느낌에 아마 슬펐었나 보다. 꽤나.... 몹시도 퍽도.....
그만큼 바랐었던 걸까. 어떤 '자유'를... 작은 '해방'을.
그러나 결국. 나는 오늘 결국 그렇지 못하다는 걸 깨닫곤, 흔들렸다. 일상을 조용히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내면에서 얼마나 뜨거운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는지. 그것을 다스리려 에둘러 도망치듯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려하는지를. 당신이 얼마나 이해하려 하는지를.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했다. 아무 표정 없이. 그는 알까. 그렇게 서서히. 내가 조금씩 문을 닫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삶이라는 쇼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죽을 수 있는 권리는 '부모'라는 이들에게는 절대 주어지지 않는 가치임을 양육의 세계로 들어가 그 혹독한 시간들을 통과하며 나는... 기어코 알았기에. 나의 '쇼'는 그 어떤 서글픔과 고통, 분노의 시간을 지나며 결국 언제나.... 언제나 그러했듯이 다수의 화평을 위해 개인의 침묵과 정신승리에 의지를 해 본다. 열심히.. 조금 더 힘을 내 보기로 한다. 승리하기로. 나는 결국 이기기로... 이길 수 있다고도 믿. 는. 다...
바람에 흩날리는 연약함을 보여도, 뿌리가 곧고 튼튼하다면 괜찮다... 흩날리는 것 쯤이야. 이겨낼 수 있다..
쇼는 다시 시작되었고,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무엇이든지 버리고 싶어 지는, 지금 당장 도망치고 싶어 지는 마음을 잠시 버려 버리기로 한다. 어느 날과 똑같은... 그런 하루가 흐르는 중이다. 한 달 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어린이집의 컨트롤 타워가 되는 것도, 소아과와 치과 일정을 확인하며 쌍둥이들의 안위를 챙기는 것도. 감정 노동의 현장에서도 적당한 표정의 가면을 쓰며 현업을 유지하는 시간도. 틈새 시간이 주어지면 남몰래 자기 계발을 악착같이 해내며 기어코 생산자로... 경제력을 지켜내려 하는 묵묵한 일상도, 가계부를 쓰는 시간, 틈새 독서와 메모를 하는 시간, 퇴근 후 아이들의 먹놀잠을 병행하는 것도. 모두 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스스로 거짓말을 잘하게 된 것.
나는 '괜찮다' 고. 나는 웃고 있다고. 나는 꽤 밝게 스스로를 속인다. 속이다 보니 되려 어떤 열정이라던지 밝음도 '진짜'로 변하기도 하니, 아직까지 이런 것들을 꽤 잘 일상 속에서 유지해 보려 한다. 열심히, 힘껏, 되도록... '사랑'을 주려는 마음만을 선명히 간직한 채. 결국... 결국 내가 바라던 것은 '사랑'이었을 뿐이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나'라는 사람이 상대방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나는 결국 오늘. 그의 이야기에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의 이야기'만' 여전히 생각하다 보니 이런 '우울'과 '침몰' 하는 듯한 감정이 지나가고 있는 걸 테다. 만약 이것 또한 '사랑'의 일종이라면..(과연. 정말?) 이렇게 서툰 사랑을... 여전히 유지해보고 있다.
가을이 벌써 다가온 것만 같다. 여름을 견디어 시간을 유지하다 보면 그렇게 가을도 찾아온다는 걸 깨닫는다..자연은 위대하다.
진이 빠질 것 같은 위기의 몇 해, 그 순간들이 쌓일 때마다
나는 거울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씩 웃고 만다. 일부러. 애써서. 어디 나사 하나 빠진 미친년처럼. 사랑스럽게... 그러다 보면 가끔 거울이라는 존재 자체에게 기묘한 위안을 느낀다. 거울은 나를 비춰주지만, 그렇게 거울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그 자체의 사랑을 상대에게 주지만, 정작 거울 자신은 거울을 보지 못하기에. 그러하니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안쓰러운 건 '나'가 아니라 바로 내가 바라보는 '거울'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 아침. 표정은 웃고 있지만 어느새 새빨개진 토끼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쓸어내린다. 지긋지긋한 묵은 역할에 수년 동안 머무르는 것을 감내하듯. 하나 그 지긋지긋함이 모아져 위대한 '오늘'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일 부유하는 오늘의 한 문장...
'인내란, 좋은 일이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 했던 목소리를 기억하며.
나는 오늘도. 인내를... 한다. 뜻밖의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 마냥.
작은 새는, 날아간다. 결국 새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만 먹으면. 그럴수 있을테니까... 헤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