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누군가의 샤넬 백 앞에서 작아지지 말기를.
당신의 세계에서 결국 당신 자신을 만나기를.
가장 당신 다운 모습으로 다른 차원의 기쁨을 누리기를.
- 샤넬 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
샤넬, 구찌, 헤르메스나 티파니보단 통장에 찍힌 '현금'과 금본위제의 법칙에 따라 '금' 이 더 좋았던 여자.
남들이 보기엔 특이한(?) 종족으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나는 '돈'에 더 관심이 많은 여자였고 여전히 그러하다. 예전 대비 바뀐 게 있다면 통과 가치 대비 마지막에 무너질(?) '골드 혹은 실버'에 요즘은 더 꽂혀있는 정도랄까. 그만큼 '명품'이라든가 '뷰티' 라든가의 영역은 나와는 거리가 다소 먼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젠더가 '여성'이라, 그에 맞춰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꾸밈 노동'을 하는 여자.
물론 때로 그 '꾸밈 노동'을 유지함에 스스로 '즐기는' 행위도 조금씩 터득하는 중인 나는 여전히 명품과는 어떤 좁혀지지 않는 이질적인 거리와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말이지 관심사가 아니라...) 이 작가분의 마음에 충분한 공감과 응원마저도 주고 싶었다. 왜? 그녀도 나도 한때의 꽂힌 것들에 '가면'을 달고 살았던 단편적인 얼굴을 모르지 않음에. 어쩌면 '나' 또한 '진짜 나'를 찾기까지의 그 허탈하고도 지난한, 지루하고 힘든 삶의 여러 과정들을 통과해봤고, 여전히 지나고 있는 사람이라서.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겐 '샤넬 백' 이 계기가 되었고 나에게는 '현금'이었던... 그런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은 우리 모두 '가짜' 들에 둘러싸여 '진짜'를 보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메시지에 충분한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갖고 싶은 것들을 가져도 해결되지 않은 공허함이 있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단골 쇼핑몰 사장님 어깨에서 보았던 샤넬 백. 그것만 있으면 내 삶이 멋져질 줄 알았다. 학교 다닐 때처럼 난 다시 누군가가 찍어준 정답을 받아들인 셈이다.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최유리, 흐름출판, 2019.08.20. p.248
한때 생각했었다. '돈' 이 많으면, '부자'가 되면 '사랑'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힘' 이 생길 거라고.
그래서.... 정말이지 악착같이 살았다... 그 악착같음은 방향과 경중이 바뀌었을 뿐, 이미 내겐 지독한 습관이 됐기에 쉬이 무너지진 않는 '튼튼함' 마저 되어 버렸다. 그렇게 20대에 1억 찍고, 결혼 8년 차를 통과하고 있는 지금, 물리적으로 적지 않은 자산을 보유하기까지... 누구에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중의 자본, 자산, 그리고 그 흐름을 지켜가는 과정들...
소위 몇 십억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어떤 문장으로 말하면 타인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살 법 하지만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는 정말이지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때로 왜 이렇게까지 '돈'이라는 것을 모으고 불리는 것에 집착하고야 마는 건지, 100원 하나 나를 위해 쓰지 못하는 삶이 정말 좋은 삶인지... 뭐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가끔 생각했었던 것 같다. 돈이 많으면...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사랑받을 거라고. 다들 나를 좋아해 줄 거라고. 조금 더 칭찬을 해 줄 거라는, 비뚤어진 생각을.
그때까지의 삶이 그랬다. 모범생이 되기로 한 건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나의 생존 전략이었다. 일류대 출신의 좋은 직업을 가진 옷 잘 입는 예쁜 여자. 나는 한국 사회가 정해준 정답에 맞는 여성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주저앉았을 때 옷장 속 샤넬 백은 아무런 정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샤넬 백은 비싼 솜사탕에 불과했다.
그녀에게 '샤넬 백' 이 어떤 존재였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한때 그녀의 삶을 지켜주었던 유일한 존재, 한없이 바라게 되는 빛나는 것, 반대로 '가짜'의 삶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게도 만드는 문제아 같은 선물... 일단 한번 깊고도 쓴맛(?)을 봐야지 '진짜'가 무엇이었는지를.... 어리석은 인간인 우리들은 알 수 있을 테다. 스스로 '진짜'라고 믿었던 삶이, 동경심이, 집착이, 결국 '가짜'는 아니었을까라는 자기 성찰부터 시작해서 '팟' 하고 뇌리에 경종을 울리게 만드는 그런 계기.... 같은 것이랄까.
우울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내가 찾은 행복은 이런 암묵적 약속에 순응하지 않는 것에 있었다. 진짜 멋있는 삶은 샤넬 백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자존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진실한 소통, 진짜 멋있는 삶은 여기에 있다.
비유가 조'금 엇나갈 수 있을지 모르나, 샤넬 백이 억지스러운 자존감을 지켜주는 가짜 도구였던 것처럼.
나에게도 '현금부자'가, '불로소득' 이 진짜 나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도구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돈'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그 안에 깊이 들어가 보면 볼수록, 경험하고 체득하면서 그렇게 '만들어' 나갈수록... 알 것만도 같다. (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철없는 소리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내면의 건강함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잘남'이라는 무기를 장착하더라도 '진짜' 잘난 게 아니다.
소위 외면의 '있어 빌리티'의 환경을 만들어 놓는다 해도 그건 결국 사상누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결국 자신의 건강한 자존감 혹은 자신감, 빛나는 '진짜 나'를 '외부'의 요인에서 찾는다면 '내면'의 결핍과 공허함은 더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잘 안다. '내면'의 평온함과 튼튼한 자신감 없이는 '외면' 이 아무리 빛날지언정 그건 가짜 빛남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결국 '수단' 은 수단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의미'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진짜 원한 건 단지 '루저'를 벗어나 안정을 찾는 게 아니었다. 돌아보면 나는 학교라는 직장을 좋아한 적도, 교사라는 직업을 좋아한 적도 없었다. 학교는 평생 있고 싶은 직장이 아니라 단지 집세와 생활비를 충당해주는 고마운 수단일 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나일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교사라는 직업은 내 업이 아니었다.
월급 밀리지 않는 직장에서, 배우자와 함께 경제활동을 유지하며 여전히 '열심히' 자산 관리를 하는 나는.
가끔 '실의'에 빠지곤 한다. 고맙고도 다행히도 꽤 경제적 자유의 근사치에 접어 들어가는 우리라곤 하지만 때때로 이 '삶'에 대한 '부질없음'을 느끼고 말 때면. 그럼에도 반대로 그 느낌들은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여기 이 순간 내가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이자 출발점이 되어 주기에... 나는 오히려 요즘 들어 '감사' 함을 정말 많이 느낀다.
허탈이라든가 공허, 혹은 우울이라는 감정들이 삶을 살며 찾아와도....
(하도 많이 데어서) 이제는 오히려 되도록 그 감정을 조용히 흘려버리고 다시 '으쌰' 할 수 있는 어떤 에너지는 '여전' 하기에. 사라지지 않고 몸과 마음, 영혼에 남아 있다고 '믿는' 나라서 그런 걸까. 이제는 그 또한 '인정' 하고 나니 오히려 모든 '경험' 들이 내 삶의 '치트키'가 되어 주는 것만 같다.... 나를 조금 더 '성숙' 하고 '성장' 시키게 만들어 주는 모든 시간들에 감사하다 보니... 나름 스스로 터득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직장에서 행복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성찰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 직장의 드레스 코드에 무작정 맞출 수 없는 불편함, 혹은 그것에 억지로 맞춰가는 자신을 보며 느끼는 못마땅함.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였다. 그러나 난 남들에게 보이기 좋은 직업에 눈이 멀어, 알면서도 그 단서를 무시했다.
책은 '샤넬'이나 '패션'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결국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지를 알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다 덮은 순간, 있는 힘껏 응원과 격려를 해주고만 싶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자' 로서, 그리고 엇비슷한 '우울'이라는 세계를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결국 '나'를 '사랑' 하고 다시 살아내고자 하는 이들의 고군분투기는... 다들 비슷비슷할 테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결핍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억지스러운 감정 표현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의 아픔을 덤덤히 수용하고, 내 아픔도 덤덤히 나누는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잠시 다른 세상을 엿보게 해 준 샤넬 백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난 이제 누군가의 사진 속 샤넬 백을 동경하지 않는다. 진짜 '멋있다'라는 샤넬 백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이제 난 건강한 자존감과 진실한 소통에서 진짜 멋있는 삶을 꿈꾼다.
어떤 '깨달음'으로 '진짜'를 향해 계속 '나아가려는' 사람들은.
'나'를 지켜낼 수 있다. 그리고 '가짜'에서 '진짜'로 나아갈 수 있겠다. 나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내면 가려진, 내가 찾지 못한 '진짜 나'를 찾아가기 위한 여행을 여전히 반복하고 또 진행하고 있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 믿기에. 그러하기에, 오늘 아침. 잠시 동안 찾아왔던 '허탈함'과 일상의 지루한 반복들을 이겨내려 한 번 더 활짝,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이려 화장실 거울을 보고 '기특해'라는 말을 스스로 해 보는 나를 발견하면서, 나는... 웃었다. 내가 정말이지 꽤.... 많은 '긍정'을 하게 되었구나, '진짜' 이 모습이 '나' 이 기를... 그리하여 진짜 바라는 삶을 살아가고, 또 만들어가고 있는 나이기를, 염원하듯 바라고 또 믿었다.
이토록 모자란 '나'가 무 쓸모 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이제는 웃을 수 있기에
무쓸모함은 세상에 없고 다만 '진짜 나'를 찾아가기 위한,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의 모든 고마운 여행... 우리들의 삶은 바로 그 '진짜'에 다다르기 위한 시간 여행일 테니까.
#여담이나_명품도_잘만하면_재테크입니다만_명품보단_금이죠_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