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Sep 16. 2019

맨몸의 나를, 껴안았던 밤...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 중의 하나 또한 누군가를 껴안고 싶을 때가 아닐까. 

그런 껴안음이 그리워지는 시간은, 우리가 많이 외롭고 지쳐 있을 때다. 


- 와락, 정여울 - 





추석, 명절을 마치고 올라오는 차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어버리게 만든 건. 

아버님의 전화 한 통 덕분... 이었다. 그래. 이제는 '때문' 이 아니라 '덕분'이라는 명사를 쓸 정도가 되었구나 싶어서 내심 다행이기도 했다. 마음의 그릇이 조금은 더 넓어진 듯싶어서. 그렇게 '좋게 나이 들어' 가는 것 같아서... 닮고 싶지 않은 시댁 어르신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어떤 근자감에. 나는 이제 별 대수롭지 않은 것만 같았는데. 그랬는데... 막상 그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눈물이..... 흘렀기 때문에. 



- 너희 두 내외, 화해할 생각 아니면 다음 명절부턴 내려올 생각 마라. 네가 여간 불편한 물건이 아니다. 

- ...

-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지. 도대체가. 

- ... 




사실은 눈물보다 어떤 뜨거운 문장들이 더 앞섰다. 

'도대체가'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댁내 화평이 왜 '여자' 만을 향해야 하는 것인지. 이름이 있는 이에게 '물건' 대하듯 하는 건 여전하셔야 하는지. 근 몇 년째 명절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으시는 당신의 그 대단히 잘나신 첫째 며느리에게도 그리 성을 내시는지. 영유아 쌍둥이 데리고 와서 온몸에 기름냄새 배며 음식 장만을 거드는 둘째 며느리의 갖은 설거지와 눈치와 애써 식구들의 비위를 맞추려 웃으면서 일상의 대화를 이어 나가려는 어떤 애씀이 보이지 않으시는지. 



'도대체가' 석고대죄 무릎이라도 꿇어야 당신에게 '사람' 대접받을 수 있는지. '도대체가' 둘째 며느리가 무슨 그리 큰 죄를 지었는지. 아들 낳아주면 세상을 다 줄 것처럼 말했던 당신의 그 위선 어린 태도는 지금 적반하장이라고는 생각하시지 않으시는지. 당신은 옳고 당신의 생각과 다른 차이를 가진 이들의 생각은 모두 그른 것인지. 타인들에게 그리 살가운 당신들의 태도가 정작 가족으로 맞이하는 외부인에겐 그리도 차가울 수 있는지. 당신 아들 다 챙기고 나서야 그제서야 먹다 남은 음식을 권해주는 것이 당신이 둘째 며느리를 대하는 '위함'의 범위인지... 



빗방울 같은 문장들이 연신 찾아오면...그 날의 날씨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그러나... 나는 마음으로 북받치는 이 모든 문장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기 때문에. 

바깥으로 분출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눈물뿐이라는 것이, 여전한 현재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그렇지만 그 흐르는 물의 시간이 또 조금씩 짧아지고 있기에.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나는... 어떤 맷집과 근육으로 단련되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고, 그렇게 내가 선택한 사람의 주변 관계들과도 어떤 거리 혹은 정리를 할 수 있을 여유마저도... 아직은 서툴지만, 조금씩 생길 것이라고. 꾸역꾸역 생각에 대한 '좋은 생각'을 애써 해내려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말을 연신 하고는 다짜고짜 전화를 '툭 '하고 끊어버린, 상대에 대한 예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여전하신 전화 태도에, 타인을 식구로 받아들였지만 정작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신 어른의 태도에. 나는 침묵과 눈물, 그리고 우리 부부가 듣고 있던 차 안의 블루투스로 흐르는 음악을 정지시켜 버렸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던 걸까. 모든 것이 '소음'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애꿎은 음악에 괜한 화풀이 마냥 멈춤 버튼을 눌렀던 것은 나로서는 최선이었기에. 그것은 애꿎은 '사람'을 향한 분노로는 바뀌지 않았기에. 정말이지 최선이었다고 아직도 생각... 중이다. 



그이와 이제 싸우려 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기에.  

나는 꽤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려는, 그럼에도 삶을 긍정하려는 자세가 꽤 습관이 되었나 싶어서 조금은 안도의 숨을 몰아 내쉬었다. 집에 돌아와, 장거리 운전에 뻗어 버린 그이는 말이 없었고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남은 집안 일과 아이들의 이른 저녁, 밀린 빨래를 어느 정도 마치자마자 그이가 일어났다. 나는 말을 섞지 않았다. 그대로 한 마디 이상을 섞기 시작하면 봇물 터지듯 어떤 문장들이 쏟아져 나올 것을 미리 예감했기에. 


감정을...물에 띄워 둥둥... 흘려 보내는 연습이 꽤 잘 되고 있다고..생각한다. 




식구들은 잠에 들었고,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날들이 있다... 설레서 잠을 잘 수 없는 고마운 불면증의 정 반대의 그런 밤. 꽉 막힌 듯한 체증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것 같아서 도무지 잘 수 없는, 어떤 아픔과 고통이 밀려오는 그런 밤... 책을 읽으려 해도 한 문장 이상을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시간, 글을 쓰려 해도 좋지 않은 단어로만 가득인 문장을 기어코 삭제하고 또 삭제하다가 연신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 만이 눈에 들어오는 날, 나는 결국 반신욕을 하기로 결심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가라앉히면서..



나는 맨몸의 나를 있는 힘껏.... 끌어안기 시작했다. 

가만히 안아주고 싶은 순간이었나 보다 싶다. 8년 차...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가족 내 관계 속 상처들이 아물다가도 다시 생겨나고, 그렇게 깊이가 아물지를 않는 현재를 통과하면서도. 이제는 성냄이나 분노, 그런 '화'의 감정을 분출하기 이전에, 잠시 한 템포를 거르고 침묵을 행하며, 여전히 어떤 사그라들지 못하는 애석한 분노가 내면에 잠재하지만, 그마저 눈물로 정화시키려는 어떤 '애씀'을 삶에서 유지하려는.... 잘 버텨내보려는 내가 나에게 건네는 최선의 선물은 바로 그런 것이었기에. 



많이 아팠었구나...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무음 처리되어 어떤 격려 어린 따뜻한 '와락'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던 순간.  

여리고 투명한 나와의 합일을 원했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있는 힘껏 껴안았던 이유는. 잠들지 못하는 날, 억울함의 감정에서 눈물이 연신 복받쳐 오르는 어떤 순간엔. 그럼에도 삶을 살아내려는 '나'  는 '나'에게 그런 선물을 즐겨 하곤 했는데 이번 명절에'도' 이런 반복이 되는 것이.. 때로 서글프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와락' 과도 같은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니까.  



안았을 때, 그제서야 알아채는 것들이 있다. 내가 조금 여위어가고 있다는 것... 뼈가 만져지는 몸.. 미안한 몸과 마음.



그렇게 반신욕을 마치고 난 이후, 새벽에 잠깐 집을 나온 나를 맞이한 건 다름 아닌 보름달이었다.  

그렇게... 홀로 찬란한 빛을 내며 고요한 어둠을 지키고 있는 달에 대고 나는 소원을 빌었다. 가당찮은 소원이었지만, 정말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릴 수 있을 만큼의... 짧지만 강렬했던 그 소원을. 들어줄 리 없는 '신' 이겠지만, 나는 잠시 동안 빌었었다. 



내가 나를 안았던, 그 순간의 크기만큼만. 누군가 나를... 있는 힘껏 안아주기를.

그렇게 '와락' 과 동시에 어떤 고운 말들을 건네 주기를 우습지만 바랐었다. 넌.... 잘 해내고 있다고.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라고. 너는... 아직 누군가가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괜찮은, 아니 멋진 여자..라고. 보름달을 보고 있는 동안만큼은, 나는. 솔직하게. 바랐다... 신에게, 어리석은 나에게. 그리고 잠들어있을 그에게 마저도. 미처 닿지 못하는... 어떤 목소리들을. 



그렇게 보름달을 보며 내내 삭혔다. 그리고 그제서야 알아챘다. 가을이 이미 가득 찼다는 것을, 

선선한 밤공기, 다소 차가워진 밤바람. '나'라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이 계절이 어느새 다가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조금 더 괜찮은 시간을 보내자고. 나는 나를 껴안으며 말.. 했다. 흐르면 다시 잡지 못하는 것들이 바로 '시간'이고 나는.... 그 시간에, 상처받지 않기로, 조금 더 '아름다운' 여자로... 살아보기로 결심.. 했기에. 



달이..그렇게 예뻐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심한거지. 나도 예쁜 사람이고...싶다고. 조금 더... 열심히...예쁘자고...




#BGM_This One (Crying Like a Child) ... 

#보름달을_봐서_그래도_다행이었다_고마웠다...


작가의 이전글 '가짜'를 버려서 '진짜'가 다가올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