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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19. 2019

사랑이 그저 사랑으로 존재할 때

치유와 회복 

사랑은 위대한 치유자다. 

우리의 재능과 힘 안에는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이 들어 있다. 

진정한 사랑의 세계는 이원적이지 않다. 

진정한 사랑 속에서 사랑은 그저 사랑으로 존재할 뿐이다. 

가슴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안다.'


- 치유와 회복 - 





몸은 마음이 믿는 그대로 행한다. 

잊으려 할수록 상처가 떠올려질 때, 피할 수 없는 쓰라림을 온몸으로 부딪혀야 할 때. 그럴수록,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을수록 우리는 '건강'을 돌아보아야 한다. 몸은 바로 '신호' 일 수 있기에. 열이 갑자기 난다든가, 영문 없는 복통 혹은 두통이 나를 찾아올 때. 이유 없이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때. 이 모든 '신체'과 '감정'의 반응들은 바로 '마음' 때문일지 모른다. 나라는 사람의 '마음' 이 힘들어지면 내면의 아픔은 곧잘 외면으로 나타나곤 할 테다. 그리하여 모든 몸의 병들은 정말이지 마음이 믿는 그대로 움직이는 것만도 같다. 마음이 편할 땐, 아파도 별로 아프다고 '느끼지' 못하더라... 



치유와 회복, 데이비드 호킨스, 판미동, 2016.01.25. p. 544



'건강'에 대한 염려는 별로 하고 살지 않았다. 지금도 별반 크게 달라진 건 없어서 사실문제긴 하다. 

주위 나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위태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종종 이런 말씀들을 해 주신다. '적당히 하라고.' 심지어는 '하지 말라' 고도. 물론 안다. 그들의 걱정이 무엇인지를. 결국 '병' 이 날까 봐.... 쓴소리도 해 주신다는 것. 그것은 그들이 나를 위하는 '사랑'이라는 걸, 몰랐던 나는 괜한 자격지심에 '미움'이라는 감정이 나를 감싸고돌면 그냥 마음속으로 한껏 미워했었다. 왜 '지지'를 해주지 못하고 '하지 말라' 고만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마음이 그땐 많이 '열려있지' 않았었구나, 얼마나 그들이 나를 '위하고 '있는 것인가를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랬기에 '미움'이라는 감정도, '분노'라고 하는 소용돌이를, 충분히 견디지... 못하고 이내 어떤 뜨거운 화를 발산하곤 했던 나는 결국 나를 파괴하고 말아 버렸던 시간들을 겪어야 했다. 몸도 마음도 아팠었던 시간... 결국 그건 '영혼'을 헤치는 나의 일상 속 보이지 않는 여러 행위들로 인한 '결과' 였다는 것을. 




모든 병은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차원의 회복에 이르려면 이 세 가지 영역을 동시에 보살피고 똑같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영혼의 의도와 맥락화는 순전한 의학적 치료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도구는 자발성과 열린 마음이다. 치유를 위해 살펴봐야 할 무언가를 기꺼이 들여다보겠다고 자발적으로 말해야 한다. 몸의 치유는 마음의 치유와 더불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병을 놓아 버릴 수  있었던 것도 생각의 형태들을 변화시켜서 궁극적으로 병의 근원까지 치유해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이 고요해지면... 모든 게 편안해진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그리 시끄럽지만도 않게 된다.



삶이 아프지 않으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는 '용기'라는 것을 내야 한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는 '용서'라는 것이 숨어 있는데, 용서야말로 '용기' 있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일지 모른다. 누군가를 심각하게 증오할 정도의 밉거나 분노의 감정에 휩싸일지라도, 용기를 내어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을 나의 삶으로부터 밀어내어, 내 삶을 지켜낼 수 있는 용기는, 결국 '용서'를 요하니까.... 용서가 되어야 그제야 마음속에서 그들이 없어지더라.. 



그렇게 나의 세계가 조금씩 '정화' 되는 것도 우리는 경험할 수 있다. '용서'로 인해서

사랑하고 연민하는 자애의 마음으로부터... 그것들은 모두 강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바란다. 용기가 사라지려 할 때, 부디 다시 샘솟을 수 있기를.... 그러하려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자주 고민하곤 한다. 



타인의 어떤 부분을 용서하면, 그러한 부분이 우리 안에서도 용서되고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서도 사라진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용서와 연민의 관점에서 인간성을 바라보면 우리의 인간성도 우리의 위대성으로 사랑하고 품어 안을 수 있다. 어린이를 바라보듯 우리의 편협함을 받아들이고 이해와 연민을 통해 그 편협함을 치유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매우 강력한 치유의 에너지 장이 우리에게서 퍼져나간다. 연민과 사랑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과 연민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어린아이 같은 본질적인 순수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먼저 어린아이 같은 의식의 순수성을 보고, 그다음에는 이 위에 덧입혀진 프로그램을 본다. 




순수하다는 것은 훼손되지 않은 투명함, 고결함, 품위... 나를 향하는 단단한 사랑과 예의... 그것들의 '합' 일지 모른다.



가끔 삶의 부분 부분들에서 '혐오' 들과 마주하면 마음이 저리곤 한다. 



학대의 장면, 폭력적인 대화,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며 조롱하는 사람들과의 직/간접적인 만남. 상실과 결핍으로 인한 쓰라린 아픔들. 나 혼자의 힘으로 그 혐오를 바꾸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일지라도 단 하나, 우리들은 각자의 힘으로 변화를, 그것도 '충분할 수 있는' 변화를 도모해낼 수 있다. 바로 '마음'이다. 사랑 어린 마음, 연민의 마음, 자애의 마음. 그렇게 마음에 사랑과 신뢰가 있는 이들을 삶에서 더 가까이하는 것, 반대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보도록 '노력'이라는 것을 열심히 해 보는 것.... 그러다 보면 때론 더없이 혐오스러워 보이는 사람의 내면에서도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결여된 순수성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모든 존재의 마음을 연민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자아 안에 숨어 있는 본질적인 순수와 만난다. 그리고 이런 사랑과 연민이 우리의 자아를 치유해준다. 자신과 타인들의 됨됨이를 사랑하고, 자신의 인간성을 비난하는 대신, 당시에는 그게 타당한 것 같았어라고 말하게 된다. 




무의식적이라 해도 마음속에 품은 생각은 결국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책은 말한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치유의 기본 원리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결심해야 하겠다. 삶이 파괴되고 망가뜨려지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지언정, 그 부정적인 장면으로부터의 어떤 간절한 '탈출'을 바란다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욕망이나 상실감, 후회, 무력감이 나를 찾아올지언정. 태어난 '나'를 받아들이고 되도록 치유해 보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어려운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지 모른다. 작가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이 투명한 메시지 그대로, 그냥 연민과 용서의 마음. 그 마음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고...  선택이 어려울지언정, 고통이 아닌 사랑을 택할 줄 아는 사람은 결국 해내고 만다. 그 위대한 선택을, 용기를, 용서 어린 사랑을. 



어려울 거다 분명히. 마음의 불을 켜서 용서를 택하는 것이. 그렇지만 그 어려움 하나를 넘기고 나면  얻어지는 것도 있다.. 반드시.



그렇게 함으로 인해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사랑'의 탄생은 거기서 출발할지 모른다. 

마음속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장으로 움직여질 수 있도록 애쓰는 마음. 그리고 생각과 행동이 연결되어 현실의 '나'에게로 전해질 때. 스스로 합당하고 확실하다면... 결국 움직이는 '나'를 우리는 발견이고 분명하게 깨닫는 어떤 것들, 말미엔 어떤 작고 큰 '행복' 들마저도 느낄지 모를 일이다. 



사랑의 생각은 치유를 가져오는 반면 부정적인 생각은 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으면 두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이런 작용은 몸의 건강과 행복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에게 경험시켜 주는 것도 바로 '마음'의 차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삶의 행복, 의미, 가치, 이런 고차원적인 삶의 본질적인 '이유'를 고민하는 끝에 언제나 마주하는 단어는 바로 '사랑', 나에게는 이 '사랑' 만이 남는다. 살아있음에 대한 내면의 사랑,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사랑'을.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이라는 본성 내면에 잠들어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를 깨워 주는 원천 수가 아닐까. 



무조건적인 사랑은 생명과 함께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생명은 보살피고 지지해 주며 본질적으로 너그럽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인해 생명의 진모 가운데 일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뇌 안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내면의 어떤 상태, 즉 자신의 신체 및 자아와 함께하는 방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세상도 사랑스럽게 보인다. 거리를 걸을 때도 마음이 편안하다. 




사랑이 그저 사랑 자체만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주기만 해도 아깝지 않은 '사랑' 이 탄생된다고 한다. 

그 사랑의 방향이 나를 향하든 너를 향하든, 우리를 향하든, 꿈을 향하든, 중요한 건 그 순진무구한 투명성을, 훼손되지 않은 어떤 고결한 사랑의 품격을. 그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삶을 진정으로 '잘' 살아내고 있는 위대한 사람들일 테다... 



뜻밖의 여행에서 만나는 선물 같은 존재. 그것은 바로 오늘, 지금

당신과 내가 선택한 그 '사랑' 이리라...



사랑이 삶에 잠겨 보이지 않을 때조차, 삶 속에서 둥둥... 떠 다니며 당신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외면하지 말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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