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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19. 2019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의 말들

엄마의 말 센스 

저주의 말을 그만두는 순간 아이는 저주에서 풀려납니다. 


- 엄마의 말 센스 - 




'하지 마'  '도대체가'  '넌 누굴 닮아서 그러니 정말' 

이런 저주의 말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자아를, 자존감을, 건강해질 수 있는 삶을 무너뜨리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타인에게 듣는 비판과 비방과 조롱 섞인 말들도 여간 상처가 아닐 수 없는데 하물며 그런 말들을 '피'로 섞여 있는 친족들, 직계 가족, 단적으로 '엄마'와 '아빠'라는 사람들로부터 듣는 '아이'의 삶은 어떨까.... 우리가 짐작하는 바, 그 삶은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기쁨으로 가득 차지도, 그리고... 사랑의 결핍이 연속일 테다. 그리고 그만큼 안타까운 비극도 또 없겠다.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그들은 고마워해야 마땅한 사람들임엔 분명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태어나게 한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를 다하는 책무를 짊어지는 이들은 말 또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령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라 할지언정. 



엄마의 말 센스, 이시다 가쓰노리, 북라이프, 2019.09.20. p.208 



어른의 비참한 삶은, 아이 때의 트라우마에서 나오는 것... 같다. 

영원한 비극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믿는다... 영원한 건 없다. 단지 영원하다고 믿을 뿐) 영원이라고 생각될 만큼의 처참한 사건들은 어쩌면 가정 내에서의 사소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고 조롱하고 비판만 일삼는 '언어폭력' 이 잦게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괴물 같은 어른이 탄생한다.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가정교육이... 가정이, 태어난 그 환경이 적지 않은 삶의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아이 스스로 무너지는 일은 없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 때문에 무너집니다. 여기서 무너지고 있는 것은 바로 자기 긍정 감입니다. 자기라는 존재를 좋아하고 자신감이 넘친다는 뜻,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자기 긍정 감이 얼마나 높고 낮으냐에 따라 성적은 물론 개인의 가능성, 정체성, 삶의 질까지 좌우되기 때문에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른들의 단 하나의 강한 책무는 바로 아이들을 지켜내는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상상을, 꿈을, 훼손시켜선 안된다. 절대로.



어렸을 적에 아빠로부터 칭찬 한번 들어보려는 요량으로 나는 꽤 열심히 공부했다. 

칭찬에 인색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뚜렷하게 기뻐하지도 않았던 아빠였었다. 사춘기엔 그래서 많이 정서적인 거리감과 적대감마저 쌓여만 갔던 그였지만, 이제는 다 커서야 그가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음을, 그 행동들에 사랑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음을.....  그렇지만 나도 이젠 양육의 세계로 들어가서야 더 뼈저리게 깨닫는 것. 바로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인해 아이들의 세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체감적으로 느끼는 어떤 시간들이다. 



따뜻한 말들을 자주 듣고 자란 아이는 '자기긍정감' 이 앞선다. 

자신을 자책하지도 밀어내지도 쉽게 슬퍼하지도 않겠다. 사실 나는 쉽게 지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감정이 요동치는 성향인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기인 의식과 세계관이 자라기 시작할 무렵의 시절, 아빠로부터의 정서적 공감대의 결여와 다 커서도 친정 엄마의 걱정이 앞선 '하지 마'라는 문장들로 인해 쉽게 무너져 내리곤 한다.. 낙관과 긍정으로 스스로 아무리 무장한다 해도, 혼자의 힘으로는 사실 여간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곁의 지지자들이 만약 '가족'이라면, 그 얼마나 바랄 데 없는 축복받은 환경일까를, 간혹 상상하곤 한다... 반대로 그건 여전히 나의 지지자가 가끔은... 아주 가끔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인 걸까..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아이는 타인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세상도 기본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협동심이 강하고 모든 일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각을 바라봅니다. 요컨대 자기 긍정감이 높은 아이는 도전 정신이 풍부해 자신의 재능을 살릴 기회를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세가 습관화되어 있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언제 어디서나 행복을 찾아내는 능력이 발달합니다. 



개개인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미 '평균의 종말' 은 시작되었고, 어른은 아이의 그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




지금의 네 살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나의 아들 쌍둥이 둘. 

나는 그들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와 약속한 것이 하나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는 꼭 지키리라고 맹세했었다. 산후우울증을 통과하는 신생아 육아기 약 일 년 여의 시간조차도.. 울면서도 나는 이 말만큼은 지키려 갖은 애를 썼다.  내가 그토록 나의 아빠와 엄마에게서 자주 듣고 싶었던 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반대로 내가 마음껏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하루가 시작하는 아침에 제일 먼저 해주겠노라고.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세상이 늘 시작되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해주겠노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이자 긍정 육아의 방식은 다른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돈' 이 아니라 언제나 '습관' 이 될 것이며, 또한 이 두 마디의 위대한 마법 같은 힘을 나는 믿기에... 이 두 말을 아침부터 듣고 자란 나의 '훈민정음' 이 조금은 보다 덜 지치고 덜 슬퍼하며 더 자신을 믿고 용기를 가지며 타인을 용서하고 배려하며 아울러 제일 중요한 삶의 가치인 '사랑'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이제는 삶의 의미이자 가치가 되어 버린 이 보물들로 하여금, 내가 죽기 전에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바로 이런 것들일 것이다.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도록 만드는 말 습관, 경제적 단단한 부자 습관으로 세계가 돌아가는 룰을 알려 주는 시간.... 이런 것들. 




고맙다는 말만 하는 것보다 고마워 기쁘다 기쁘구나 네 덕분이야 하고 감사하는 말을 곁들이면 효과는 배가 됩니다. 아이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일이고, 이것은 곧 나 자신도 기쁘게 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것입니다. 





빛과 어둠에도 정면 승부할 수 있는 뜨거운 용기를 지니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 그래서 그렇다.




그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하면서도 절대적인 말이 바로 '부모의 말'이라면. 

양육을 행하는 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반성해야 한다. 아무리 가족일지언정 타인을 대하는 상냥함 그 이상으로 사실 더 예의 바라야 하지 않을까. 사실 세상에서 제일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 바로 '가족' 관계일 텐데, 반대로 이 세계는 제일 무너지기 쉬운 관계가 바로 또한 '가족' 이 되어 버리고 마는 사건 사고들이 넘쳐나기에. 그건 어쩌면 양육을 일삼는 우리들이 (부모) 주고받는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험악한 세상을 이겨내려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레 자리 잡은 부정적인 말 습관이 결국 아이들에게도 기생되어 전해지고 말면 결국 '악순환' 은 시작되고 만다. 괴물 어른은 그냥 탄생하는 게 아니라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부모의 마음이 충만하고 행복하면 불안한 눈이 아니라 낙관적인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되고 지나친 간섭은 하지 않게 됩니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에게 가정은 안심할 수 있는 즐거운 곳이 되고 나만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안식처가 됩니다. 


아이는 날마다 부모를 보며 인생을 배워갑니다. 엄마는 어떤 때 기뻐하는지 아빠는 어떤 일에 화를 내는지 등등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표본과 모범으로서 아이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다행히도... 우울증을 겪었던 신생아 육아기 1년을 제외하고는 

(그 시간조차..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통탄이지만)  나는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쉽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만큼 혼자의 시간이 되고 말면 그동안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폭풍처럼 밀려오는 순간이 잦다는 건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여하튼 나의 '훈민정음'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상 최소한의 책무와 최대의 '사랑'을 건네주려고 이미 스스로 강한 확언과 결심으로 무장한 채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여리고 투명한 그릇인 마냥 깨지고 무너지고 자책하는 시간을 스스로 목도하지만. 그래도 이 습관만큼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어김없이 지키고 말 것이다. 



한때... 지는 저녁이 될 때면, 언제나 너희들에게 미안했었다. 내가 너희들의 엄마여서. 이런 내가 엄마여서 미안했었는데...




사랑한다는, 고맙다는, 이 '사랑'의 완전한 표현을. 

훼손되지 않은 순정의 마음으로 너희 둘에게 아낌없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반대로 나는 나에게도 이 말을 건넨다. 그래야 하니까. 나 또한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 상태를 지니고 있어야 비로소 너희 둘에게 이 말을 건넬 수 있는 건강한 나 자신이어야 하기에. 



그리하여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어느 날의 우리들은 이러할 것이다. 

너희 둘과 양손을 잡고 샌프란시스코의 골든 게이트 브리지를 산책하며 돌아오는 길목의 피셔맨스 워프에 들러 부딘 베이커리의 크랩 샌드위치를 먹자고. 함께 카페에서 너희들은 책을 읽고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그런 너희 둘의 '엄마'로 웃고 있음을. 그런 너희 둘은 어느새 현명한 지혜와 무너지지 않은 건강함을, 자신을 믿는 용기와 타인을 배려하는 섬세함을, 아울러 쉬이 무너지지 않을 강인함과 설령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라는 절대적인 낙관을 지닌, 그런 근사한 청년들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나는 간절히 상상하며 매일 소원한다... 그리하여 오늘 나의 최선은 언제나 너희 둘에게 웃으며 이 말을 건네는 것이다. 



사랑한다 훈민정음.... 

유일한 생에 내가 제일 잘한 것이 바로 너희 들의 '엄마'라는 사실임을.

나는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노력할 것이다. 반드시... 꼭. 




사랑한다. 나의 의미. 내 생의 가치. 나의 두 사람... 훈민. 그리고 정음. 우린 자라고 있구나. 나도 너희 둘도.





사실은 한 명을 더 사랑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의 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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