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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08. 2019

서른여섯,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냥 나아가라. 나도. 당신도. '오늘' 이라는 잔치를.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낯설다. 

나를 본 적도 찾은 적도 없다. 

그렇게 많이 존재해서, 가진 건 영혼뿐. 


- 페르난두 페소아 - 




도서관에 가면 되도록 먼저 찾는 곳이 있다. 

급히 책을 빌려야 하는 순간이 아니라면, 언제까지고 도서관에서 살고 싶은 사람처럼 그렇게 주변을 어슬렁거리곤 한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곧장 그곳을 향하게 되고 마는 나의 패턴은 변함없이 두 군데를 향한다. 한 곳은 신착 도서 코너, 그리고 남은 한 곳은 나로선 제일 즐거운 공간일지니, 바로 그곳은 누군가 다 읽다 만 혹은 반납된 책들이 주인 잃은 채 넌지시 눕혀져 있는 서가, 타인들의 취향을 염탐하기 좋은 은밀한 곳... 그리하여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찾아가고자 기꺼이 나를 내던지게 마는 그리운 곳. 이제는 쉽게 '혼자' 갈 수 있는 시간이 허하지 않는 곳. 그래서 늘 그리움을 품고 마는 장소. 



오늘, 완전한 나의 시간이 허락된 이 희소한 일요일 아침, 도서관에서 한 권의 시집을 발견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던 과거의 기억도 같이 '발견' 되었다. 나로 하여금. 그 기억은 왜 다시 찾아왔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지. 어쩌면 친정 엄마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그래. 그랬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에 오기 전, 기념일을 돈으로 때우는 못된 딸년 인증하듯 통장 입금을 마친 후, 생일을 축하하며 우리 모녀가 주고받았던 일상의 안부 목소리, 그녀의 심드렁한 목소리 톤은 5년 전 그 시집을 읽고 있던 나에게 들린 그때의 목소리와 흡사 비슷해서... 조금 얄궂은 기억이 다시 흘러 다가왔던 걸지도. 아니다. 굳이 따지려 들지 말자고 나는 생각했다. 그냥 기억은 그렇게 문득문득 예측하지 못하는 것들로 인해 일상 속에서 불쑥 찾아오는 것들일 테니까. 



일상을 직진하다가도 문득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억들도 있다.  그럴 땐 그냥.. 잠깐 정지. 숨 고르면 그만..이다.



2014년 그 해, 나는 유산을 했다. 

두 번째. 처음이 아니었기에 조금은 덜 고통스러웠다고 거짓말처럼 믿으며 살아야 겨우 살아졌던 그 해. 나의 거짓말은, 괜찮다며 외부를 속일 수는 있었지만 끝내 내면을 속이진 못했다. 그 해의 여름 어디쯤이었었나, 도서관에 꽂힌 시집 한 권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서서 읽은 몇 장의 페이지들로 인해 5년 전의 나는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서가 앞에 서서 남모르게 흘렸던가. 그 책을 기어코 빌려와서 마저 읽고 있던 31살의 나를 보며 엄마는 말했었다. 




- 읽지 마. 그런 거. 시 읽으면 머리 이상해진다. 빨리 죽을지도 몰라. 특히 지금 너한테는. 

-... 싫어.

-... 읽지도 마. 쓰지도 말고. 그냥 니 몸뚱이 하나 잘 챙기고 살아 이 미련한 것아. 쓸데없는 거 하지 좀 말고. 

-... 세상에 쓸데없는 게 어딨어? 내 몸에서 빠져나간 메스로 긁어 내린 생명들. 그것들도 나한텐 모두 쓸데 있는 것들이었어. 쓸데없는 건 바로 나야. 이런 나라고. 엄마가 알기나 해? 내가 지금 얼마나 비참한지. 그만큼 미쳐있는지. 왜 나 안 말렸어요... 결혼하고 이렇게 울면서 살 거라는 거. 왜 말 안 해줬어? 왜 아무도 나한테 말 안 해줬어? 왜... 도대체 왜. 왜 도대체 나한테만 왜! 

-... 넌 누구 닮아서 정말. 

-... 나 주워왔지? 엄마... 내가 엄마 닮았으면... 이렇게 병신 짓 안 하잖아. 닮았으면... 똑똑해야 되잖아. 

- 울지 마. 난 안 울어. 

-.. 엄마 안 닮아서, 나는 울어. 

- 못난 년. 




서른하나. 시인이 말했듯 나는 그 해, '잔치는 끝났다'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선택한 '그'의 따뜻함에 나는 '농락' 당했다고. 그렇게 기혼 제도에 들어와 나는 웃음보다 울음이 더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고.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변하게 되었는지 우리 둘의 냉정하고 이성적인 것들은 온데간데없어져 버리고 말았던 시절. 허무하지만 운이 좋았던 걸까. 그런 어두운 나에게 보배 같은 한 여성의 이야기가 다가왔고, 그녀의 이야기들로 하여금, 나는 역설적인 위로의 시간과 뜨거운 눈물을 선물... 받았다. 비교적 이 '여성 시인'의 삶보다는, 나는 훨씬 평범함에 그친 별거 아닌 삶을 지낸다는 것을. 별게 아니라는 대체 무슨 상관인지 종잡을 수 없는 비교에서 오는 가짜 행복을. 




지금은 아니야. 

나는 내가 완전히 잊힌 뒤에 죽겠어.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자들에게

무덤에서 일어나 일일이 대꾸하고 싶지 않으니까 


- 최소한의 자존심, 최영미 - 



문제만 쌓이고 그 문제를 푸는 열쇠를 잃어버릴 것 같은 순간을, 살면서 우리는 다 겪는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들일 테다..





5년 전, 그녀의 시집을 읽었을 때의 나는 스스로 부정하고 부패한 몸을 가진 사람 마냥. 나를 미워했었다. 

미처 세상을 보여주지 못한 못난 '어미'의 그럴싸한 죄책감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만... 정말이지 그 감정들의 루트는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인지 나로선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랬었다. 수술을 하고 몸이 회복되기가 무섭게 나는 하루를 걸러 아주 이상한 버릇 하나를 만들었다. 틈만 나면 단팥빵 두서너 개를 입에 넣고 흰 우유와 함께 오물오물 오 분이 안 되어 다 먹어 해치운 후,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다 게워 버리고 마는 것. 섭식장애의 시작. 묘한 쾌감, 병들어가는 정신. 나의 잔치는 완벽히 무너졌다고,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몸과 정신, 육체와 영혼은, 보이지는 않지만 촘촘히 연결된 유기체라는 걸, 그때 조금 더 '잘' 알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나를 파괴시켜가진 않았었을 텐데. 하여튼 그랬다. 그런 나에게.... 그녀의 시집은, 그녀의 산문은, 일종의 메시아 같은 '구원' 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아픔을 밑바닥까지 드러내어 끝내 그 아픈 문장은 누군가에게 위로의 문장으로 탄생되고 마는, 아주 역설적인 구원.... 그러나 그토록 진실된 구원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세상이 자신을 시험하려 할 때 굳세게 자신을 지켜내려는 사람.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의 시(詩),  끝내 자신의 혹은 타인의, 우리들의 세상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감성과 지성을 따라 하고 싶었던 시절. 그 시간 덕분에 그녀를 따라 쓰고 돌려쓰고 생각을 해내고 내면에게 말을 걸고, 갖은 '애'를 나름대로 쏟아부었던 시절... 그러면서 느꼈다. 글을 쓰는 사람을, 예민하고 날카로운 섬세함을 숨기듯 품고 지내는 이런 여자와 함께 사는 '그' 도 꽤나 고달팠겠다 싶겠다는, 연민이라는 단어로 굳이 분리될 수 있을 또 다른 '사랑'의 형태를. 





너 왜 그 남자랑 못 헤어지니 

난 그 남자의 영혼을 봤거든.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말하자면 연민의 정이지. 

그런데 도대체 영혼이 뭘까. 어떻게 생겼을까? 

육체를 뺀 나머지 


육체와 영혼에 대한 어떤 문답, 최영미, 2014 



당신과의 불꽃놀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하는 거라고, 이제는 믿는다. 그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형태가 변할 뿐이라고.



가당치 않은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해 이혼 서류를 찢어 버렸다. 

답은 아닐 것이라는, 미처 닿지 않은 어떤 행복이 여전히 저 멀리서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어떤 묘한 기시감 때문에. 조금 '더' 그의 심장이 나의 심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어떤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나름의 법적으로 연결된 우리 둘의 '책무' 같아서. 그래서 나는 용기를 냈다. 마음을 그대로 열어 놓기로. 순리에 맡긴 채, 물 흐르듯 시간을 같이 채워 나가기로. 그를 선택한 건 결국 '나' 였으니까. 사랑이 없어진 후 남겨진 부스러기라도 모으고 또 모으다 보면 다시 사랑이 생길 거라는... 어떤 간절한.....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어떤 믿음과 함께. 



그 시절 이후, 다시금 가임기와 출산, 그리고 양육의 초반 '생지옥'의 시절을 함께 통과하며. 

우리는 변했다. 좋고 또 쓸쓸하게. 그렇게 변하는 시간을 겪으며 그와 나에게 남겨진 것들을 잠시 생각해보자면 조금은 서글퍼진다. 가령 여전히 어떤 차지함의 욕망이 발동하듯 뜨거워지는 그의 몸에 고작 본능적인 시들한 반응을 보이고 마는 무심한 나. 그러면서도 스스로 물에 잠긴 장미 꽃잎을 외면하지 못한 채 그 시간을 글로 소화해내면서도 결국 그에게 나를 차지하셨다는 승리감을 안겨주고 싶기도 한,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려는 어떤 노력들... 



그의 단순한 즐거움이 반대로 나의 완전한 즐거움이 절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좁혀지지 않은 행복과 기쁨의 괴리가 존재함을 선명히 알아채는 밤을 마주하면서도, 나는 이제 알 것도 같다. 8년을 같이 살았지만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건 고작 1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삶의 역설을. 또한 기혼의 서글픈 아이러니함은 발칙한 어떤 상상에 그저 맡긴 채. 나는 시인의 이 말을 오래오래 기억하려 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영혼이, 우리가 미워했던 육체를 이기리라. 




당신과 함께 맞이하는 아침해와 저녁해도, 부재라면 그리울 그런 소중한 것들이라는 것을. 이제는 더 알 것 같습니다..



시인은 '잔치는 끝났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믿고 싶다. 서른여섯, 나의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쉽지 않은 시절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내 옆에 자라는 생명들이 사랑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을 끝내 기억하려는 나는,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뭘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다만 그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어느 날, 때로 어리석은 선택을 상상하고 움직이려 하는 '자유로운 영혼' 임에 스스로 부인하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욕망과 마주할 때. 



욕망하는 만큼 자유는 제약된다는 것도 

아는 삶으로, '혜안' 이 조금씩 붙어 나이 들어가는 근사한 마흔으로 다가가는 지금의 아름다운 나만의 서른여섯으로 흘러가고 있기를.  그러하니,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으로... 늘 삶 속 누군가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시시한 것이라 정의되는 것들에도 정성껏 마음을 담아 '사랑' 하는 사람으로, 바보 같은 순진함이 깃들여있을지언정, 그렇게 이미 다가온 새로운 계절의 잔치를 순진하게 맞이하며 사랑으로 만들어 나가겠노라고... 




사랑을 하는 이는 절대 자기가 뭘 사랑하는지 모르고 

왜 사랑하는지,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순진함이요, 모든 순진함은 생각하지 않는 것. 


- 페르난두 페소아 - 




도서관에서 귀가한 이후 읽다 말다 한 책을 잠시 내려놓고 기어코 키보드에 손을 얹고 마는 나는. 

이 한순간의 떠올려진 기억 덕분에, 기록을 하는 이 시간이 이토록 길어졌을 줄이야. 그래도 엉덩이 한번 떼지 않고 내내 마음을 담아내며, 혼자 남겨진 이 희귀하고 희소한 시간을 소비한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직도 한참, 어쩌면 투명하게 깨질듯한 순진함을 여전히 마음에 담고 사는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그러니 조금 더 이 순진한 마음이 만들어 내는 여러 '영혼' 들을 내면에서 잘 지켜내 보려 하는 서른여섯의 나는, 궁금해하며 생각했다. 당신의 잔치는 몇 시쯤에 가 있을까 라고. 그리고 또 생각, 아니 어떤 확언을 했다. 




나의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어쩌면 그 잔치,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나도. 그리고 '당신'도... 



별이, 바다가, 바람이. 그렇게 배를 기다리고 있을 뿐. 배가 움직이면 된다. 우리의 배가. 잔치는.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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