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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08. 2019

그럴 수만 있다면

신이시여. 저의 글쓰기를 용서... 하시길.... 

'네'라고 하는 게 망설여진다면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해야 하는 거야 


- 제인 오스틴의 말들 - 





혼란스럽고 복잡한 심경 덕분일까. 

어제부터 정신적 스트레스가 급히 엄습해 왔다는 것이 몸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귓가에서 '웅' 하는 환청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두통이 찾아왔다. 식탁에서 서평을 쓰고 있다가 갑자기 메슥거림이 찾아왔고, 조금 참고 있었지만 신침이 여전히 올라오는지라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먹은 것이 없어서 게워낼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화장실 변기를 붙잡은 지 십 분 여가 지났을까.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아뿔싸.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했다. 또 시작된 걸까. 울고 있다는 것을 정말이지 감각적으로 체감할 수 없었는데 어느새 콧잔등엔 물방울이 연신 달려 있었던 거다. 



3년 전으로 돌아가면 절대 안 된다고. 

나는 나를 다잡으려 했다. 무엇이 또 이렇게 나를 만들었을까.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원인을 찾으려 했다. 결국 '나' 때문일 거다. 경솔했던 문자, 그리고 그녀와의 '한 시간의 통화' 덕분이라고... 어제. 그이와의 잠시간의 다툼. 그리고 짧은 이별,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그가 바라는 것을 맞춰주기 위한 최선의 방책,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고 답장이 왔다. 그리고 나는 전화를 걸었다. 이쯤이면 서로 '통화'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어떤 기대감에. 



끝없을 것 같은 흐름의 시간들... 만이 있었던 한 때...



다섯 번을 해도 받지 않았던 때, 그대로 멈출 걸 그랬다. 

무의식에선 어떤 '미움'과 '오기'가 여전히 남아있었던 거다. 나는 이제 이 지긋지긋하고 비루한 싸움을 '끝내고' 싶었다. 여섯 번째, 연결음을 건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로 몇 년 만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잘못된 시간들의 연속이. 다짜고짜 첫 문장부터 어쩌면 우리들은 '아웃'이었던 걸까. 



- 그래. 말해봐. 

-.... 이제 전화받아주시네요. 형님...

- 자네. 아직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가

-.... 네? 

- 문자를 그딴 식으로 보내는 게 자네가 진정 사과하는 사람의 도리야?

-..... 여전히... 마음을 닫고 저를 바라보시니 무슨 말씀을 드려야 될 지반대로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나요. 

- 뭐?

-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 이것 봐. 그게 진정 사과하는 사람의 말투야? 피해자 코스프레하지 마. 자네로 인해 우리 가족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알아? 그리고 본질을 생각을 그리도 못 하나?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를 알곤 있는 거야? 아는 사람이 태도가 그딴 식인가? 



그 순간, 그녀의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명사를 듣는 순간... 

나의 말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려 했다. 그리고 나는...'아니요'라고 분명히....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그래야 될 것 같았으니까.. 그것이 내가 나를 대하는 최소의 예의 같았다. 




-..... 아니요. 본질 생각 못 하는 건 피차일반 아니던가요. 형님만 고통받았다고 생각하시니 이런 분께 섣불리 연락을 한 제가 역시 경솔했네요. 연락을... 드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형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같은 젠더 감수성은 바라지도 않았어요. 자식 키우는 '엄마 '입장이라면 어느 정도의 '이해'는 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당시의 제 상황, 배경, 행동, 모두 비이성적인 것들이었다는 걸 제가 누차 말씀드렸어요. 한데 여전히도.... 형님을 비롯한 '그이의 식구'들 전부, 당신들이 입은 '피해'와 당신들의 감정'만'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나무라시네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조금씩 더 잘 알 것도 같습니다. 



-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진짜 상종 못할 인간이구나 동서. 


- 네. 저 상종 못할 인간입니다. 한데 형님 하나 물어볼게요. 제가 이혼이라도 하면... 혹은 제가 보이지 않게 되면... 그때야 저희 아이들, 불쌍히, 귀히 여기고 그대서야 봐 주실 건가요?


- 뭐? 어디서 협박이야 동서. 자네 정말 못하는 말이 없구나. 


-.... 형님을 비롯한 모든 그이의 가족들은.... 그걸 원하는 것 같으니까요.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을 뿐이죠. 솔직해서 어리석은 저처럼.  



창문의 걸린 '커튼' 이 제 역할을 벗어던지고 바깥으로 나오려 하면... 그건 모두에게 '커튼' 이 아닌 걸까...



그 이후, 약 40분. 두 여자의 첨예한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그냥 여우처럼 단 혀로 스스로에겐 거짓말을 하고 자기 검열을 철저히 하면서 상대'만'을 위한 최선의 배려로 소위 '지고' 말면, 수그리면 그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무의식은..... 미련스러운 '곰'이었던 걸까. 나로 하여금 '검열하지 말라고, 내뱉어버리라고' 독려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악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하고 싶은 말을 그야말로 '토해내고' 있었다. 몇 가지의 마음은 여전히 내뱉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받은 쪽이 어찌 당신들 뿐이냐며.

당신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니기에, 나는 그 감정까지 책임지고 싶지 않다며. 다만 당신의 딸과 당신이 나로 인해 어떤 좋지 않은 감정을 '느꼈' 더라면, 그것이 나의 잘못이라는 것을, 애초에 '그이'라는 온전한 개인 단 한 사람만을 선택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믿었던 그 믿음이, 결혼제도에서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것이....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는 것을... 그이가 아닌 그이와 연결된 관계들마저도 내게 딸려 들어오는 것이 이 시대의 '결혼제도'의 숨겨진 이 면 이라나는 것을. 아울러 나는.... 꾹꾹 눌러 내렸다. 그 단어를. 



당신들이야말로 나에게 '가스 라이팅'  하는 '가해자'라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 말했던 '동서'라는 단어를 써 가며 냉소와 실소로 웃으며 말을 이어 내리는 그녀에게, 나는... 웃음이 전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 싸움이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으로 여전히 받아들이는 당신이 '어른' 이 맞냐고.... 나는 묻고 싶었지만, 그대로 대화를 이어내려 하지 않았다. 계속 이어 낸다면.. 정말이지 어떻게 될 것 같았으니까. 



정서와 자아의 세계가 잠시 흔들렸던 탓일 거다.



에너지가 다 쏠렸던 걸까. 그때부터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선 정신 빠진 사람 마냥 토끼 눈이 된 채 묵묵히 노트북의 아웃룩에 쏟아지는 메일과 회신해야 할 드라이한 답변들을 키보드로 꾹꾹 눌러가는 시간  '덕분에' 그나마 천천히....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럴 땐 '바쁨'과 '일'이라는 것이 새삼 고맙다.. (고마우니 끊어내지 못하는 걸 테다.... 나로선 월급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일터'이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시부님께 전화를 했다. 아버님 다운 멘트로 나는 아이들과의 페이스톡이든 전화든 '차단' 당해버렸다. '지금 너랑 전화할 여유 없다. 너 때문에 심란하다'라는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그대로 버스 안에서 내내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뒤늦은 후회를 또 하고 말았다. '보내는 게 아니었다.....'라는 비겁한 변명과 함께. 



'굴종' 만이 정답인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선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그들이 바라는 대로 '손아랫사람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내야 하는 게 맞는다고들 한다. 그 진정성 어린 사과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마저도 사려 깊게 생각해야만 하는..... 정말이지 진이 다 빠져나갈 정도로 '지긋지긋' 한 그들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싶다는..... 약한 사람의 알량한 도망침이 나를 찾아왔지만 불현듯, 아차 싶었던 건...



나는 너희 둘과.... 골든게이트 브릿지를 꼭 건너고 싶으니까... 그 염원을 놓치지 않은 나를... 다시 발견해서.



아이들 생각이 나서였다. 

나는.. 그리하여 다시 찾아온 잠시 동안의 나쁜 생각을 떨쳐내듯 생각했다. 내가 만약, 나로 하여금 어떤 '선택'이라는 것을 했을 때..... 그 선택의 끝에서 이 세상의 단 두 명. 아이들 만큼은 '피해자'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를 '동서'라고 지칭한, 그분은 나를 '가해자' 라 지칭하며 나의 아이들마저도 나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거라고 했었다...



정서의 세계는 이미 붕괴되었고, 그런 나는 다만 생각할 뿐이다. 

이 비루한 시간들 속에서, 지긋한 투쟁 혹은 논쟁, 그도 아니면 결국 말미의 어떤 선택들을 행한 들, 그 끝에서 단 두 명. 아이들을 '피해자'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만이 선명하게 부유하듯 마음에,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다시금 주체할 수없이 흘리며 나는 마음을 먹었다. 



3년 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절대... 절대로. 

이젠 아이들의 의식세계가 선명해지고, '말'이라는 것이 통할 시간이라, 절대로 나의 이 어두움을 들켜서는 안 된다고. 그리하여 너희들에게마저 '피해'를 입히면 안 되는 것이라고. 



비는 그쳐야 한다. 빛을 보고 찾아서라도... 말라야 한다. 마를 수 있다.




다만 훗날, 너희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이렇게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서도, 끝내 살아내려는.... 한때의, 젊은 시절, 너희들의 '모친'으로 사는 것 하나가 유일한 내 생의 의미였노라고. 



나는.... 떳떳하게 말하고 싶은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동이 틀 무렵까지도 토끼 눈으로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채 다시 밝아오는 이 아침까지도 이 생각뿐인 여전히 나약하고 미련한 나를 발견한다. 나는... 자신이 다시 없어진다. 아주 급속도로..... 그러나. 이 문장 하나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절대, 3년 전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절대 그렇게 다시 '변하게' 두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나에게. 확언..... 했다.... 그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서... 



기억해... 달은 어둠이 있을 때 더 밝게 빛나는 법을... 이 시간들 모두 '감사' 할 수밖에 없는 환경설정... 일지도 모르잖니.. 헤븐....



#신이시여 저의 글쓰기를 용서하십시오... 저의 최선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아직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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