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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10. 2019

밥벌이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

오늘도 나는 그 생각을... 하였다.

이 책이 당신의 슬픔을 향해

성큼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꿈꿉니다...

    

- 달그락달그락 -





- 감정이 들어가 있어... 이런 것도 봐. 다 중복. 필요 없는 문장.

-... 부족했네요.. 많이... 감정... 이 불필요하지.. 그렇지.

- 그것만 고치면 돼. 감정. 넣을 필요가 없잖아. 회사 다니는 데. 할 말만 하면 돼. 일 할 때. 알지?

- 네....




보고서는 '형편' 없었다.  

12년 차치곤 1년 차만도 못한... '심각할' 정도라 표현해 주신 그 동료의 '선의'를 안다. 일을 잘하시는 분이었고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있던 입사 동기기도 하였다. 공식적으로 '개쪽'을 주고자 했다면 바깥으로 불러내진 않았을 테다. 그 다웠다.



국책과제 비용 정산을 위한 TFT 설명회를 위한 자료였다.

그쪽 분야 경험치가 쌓인 '선배' 에게 도움을 구한 건 내 쪽이었으니까. 그러니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조언' 해준 그 동료의 선의를. 이해하고 '고치고' 말면 그만인 것을. 그럼에도 나는 왜... 그와의 대화 끝에 찾아온... 목울대에서 차고 올라오는 뜨거움을 참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던 것인가. 요즘.. 다시 눈이 고장나버린 것만 같다. 눈물샘 신경에 '다시' 문제가 생겨버린 걸까...



안다. 내가 왜 눈물을 흘리고 말았는지.

애써 외면하던,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발각' 되고 말았던 것이리라. 조직생활에서는 철저히 이성이 앞서야 한다. 한데 나는 그리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란다. 인정한다. 이성적인 대화'만'을 섞어야 '상처'라는 것을 덜 받는다는 것을. 즐거움, 고마움, 양보, 배려와 같은 좋은 감정마저도 한번 '일'을 하면서 쏟기 시작하면 다치는 건 결국 '자신' 뿐이라는 것을.




나는.. 감정적이라... 또.. 도망치고 싶었다. 비겁한 나를 스스로 들켜.. 버렸다.




감정적인 사람은 '지고 '마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왜 고치지 못하는 걸까.

초년생 시절, 입고 있던 치마가 짧다고 농담 삼아 '조언'을 주셨던 그 엄한 선배의 목소리가 너무 무서웠다. 오타 하나 나면 이 정도밖에 못하냐며 그대로 직/간접적으로 까이기 일쑤였다. 가임기와 임신기 시절도 마찬가지. 해외 법인장과 대놓고 CC (Conference call)을 하다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지금은 퇴사한 10살 많은 '남'직원이 회의실로 불러들여 대놓고 '하대'를 하며 '그따위로 일하지 마라' 고 조언했을 때에도. 육아 휴직 후 강제 발령된 이 사업부에서 대외 고객의 '갑질'과 '감정 노동'을 일삼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마음의 '감정'을 표하는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가 내 트레이드 마크.. 였으니까. 그러면서도 '일'을 배우고 또 배우며 시간이 흘러 어떤 '노련함' 이 생겼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 믿음이 오늘 붕괴된.. 것만 같아서. 사실 마음의 감정을 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독하게 이성적으로 일을 조금 더 '잘' 하려고 애를 써야 했었는데.... 나는 완벽히 실패자가 된 것만.. 아니 되었다.



동료는 그걸 안 거다. 그래선 안 되는 데 자꾸 그러는 나를 '걱정' 한... 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아주 많은 고리타분하고 지저분한 '합리화'에 갇혀.. 있다. 형편없는 합리화의 시작 이리라. 이런 문장들이 내면 깊이 솟구치기 시작했으니까. 멈추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이 계속해서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 12년 차 씩이나 되가지고 1년 차만도 못한 보고서를 만들다니.

-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없다. 애매모호. 쓸데없이 '감정' 적이다. '이성' 적이지 못하다...

- 필요 없는 건 버려야 하는데 못 버리는 인간.

- '감정' 적이어서 부담스러운 동료. 감정적인 직장인.

- 무쓸모....




노트북 화면도, 주변도 아직 낮이고 밝은데... 나는 점점 어둠으로 도망치는 것만 같은 비겁함...




자책 끝에 찾아오는 건 언제나 '두려움'이다.

그래서 눈물이... 났던 걸지 모른다. 더 이상 '버티고' 서 있기가 도무지 무섭고 '자신'이 없어져서. 그렇다. '자신감' 하나로 버텨왔으나, 그 영역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진다. 이 조직에서, 회사라는 공간에서, 도저히 '버티고 생존' 할 그 '자신'이라는 것을. 시댁 식구들이 내게 해 준 말들을 나는 '오답'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답' 이 되어 버리는 순간... 같았다.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제일 듣고 싶지 않아서 흘려들었던 말들은 하필 그렇게 엉뚱하게 찾아온다. 정말 정서의 세계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걸까...



- 회사일 말고 양육과 살림을 하면 된다. 감정적인 너에게 딱이잖아.

-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책이나 읽고 써. 집에서 슬슬 애들 보면서. 그러면 다들 편하고 좋잖아..  

- 너같이 감정적인 애가 회사 일 하다가 스스로 상처 받으면서. 그 스트레스 가족들 다 주잖아.

-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 라 했던..... 잊기 힘든 그녀의 목소리마저도...



책임 지지 못할 감정을 스스로 파고들면서.

이런 '나약한 유리 멘털의 인간' 은 일터와는 애초에 맞지 않는 캐릭터라는 걸.... 나는 애써 외면하려 했고 외면해 왔고... 그렇게 버티고 또 버텨왔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찬 물을 맞아 버린 기분이었다. 믿었던 동료에게 비수 같은 '팩폭'을 맞았기 때문에? 선의가 있는... 조언이었음에도 그게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와서... 그 마저도 내가 '이성' 이 아닌 '감성'의 영역에서 사는 인간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감정과 감성을... 마음의 '별'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 였던 거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철저히 숨겨야 하는 것을.....




눈물의 근원을 안다... 스스로 '쓸모없는 일'과 '일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순간.

나는...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으니까. 여태껏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나의 알량한 '감정'으로 인해 피해만을 끼친 병신 짓을 해 온 직장인으로 스스로를 정의 내려버리고 나서야. 급기야 마음 바닥에 깔린 자책감과 미안함, 무너지고 마는 연약한 내면을 기어코 건드리고 만... 것이리라.



연차가 지날수록 '나'라는 사람의 '무기'를 보여야만 '생존' 이 가능한 게 회사다.

누군가는 그것을 '정치'로, 누군가는 그것을 'KPI'로, 누군가는 그것을 '업무형태'로, 누군가는 '그저 편하고 사람 좋은 동료'로... 모두 그렇게 각자의 절대적 무기 하나쯤은 만들며 일을 하고 월급을 번다. 한데 나는 오늘... 그 어떤 무기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잃어버렸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발견의 실패였다.



그리곤... 책 몇 권의 제목과 문장들이 전두엽에서 튀어나와 뇌리에 박혀 부유할 뿐이었다.

'밥벌이로서의 글쓰기'라든지 '빈센트가 자신 스스로에게 했던 의지의 말들' 이라는지. 급기야 사무실로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와 있던 중에 눈에 들어온 '그 문장'은 왜 이리고 마음을 파고들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형편없는 보고서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 그동안 여기서 뭘 했던 거지.... 병신 같다...




노트북아 미안하다.... 네가 좀 더 좋은 주인을 만났더라면....




'눈물'이라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내게 붙어 버린 것만 같다.

'필요 이상'의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가에 고여있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노트북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겨우겨우 보고서를 고치고 모두에게 배포라는 것을 하는 그 와중에도... 나는 어떤 슬픔에 철저히 침잠된 채 아무 표정 없이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상했다. 메일 하나 보내는 것이 다시 이렇게 좋지 않은 두근거림을 가져다 줄 줄이야...



손을 씻고 거울을 봤다. 웃어보려 했으나 얼굴 근육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슬픔에 가라앉은, 그대로 눈가에 물 한 바가지 머금고 있는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때... 카톡이 왔다. 엄마... 였다...



- 별 일 없지?



그 순간... 고여있던 눈물이 흘렀다.

헌데 동시에 잃어버리고 있었던 또 다른 자아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외가 쪽 핏줄에 '무당'을 했던 것이 엄마에게도 스며들어 있는 걸까. 정말 신기.. 하다. 나는.. 천천히 숙이던 고개를 다시 들었다. 핸드폰 액정 위로 떨어진 눈물을 닦으며 나는 답장을 보냈다.



- 응 별일 없어요. 나... 엄마 딸이잖아.




그리고.... 말했다. 내가 나에게... 열심히. 바깥에선 들리지 않은 아주 목소리로...



- 지지마. '감정' 에게. 조금만 더... 여태껏 잘... 버텨왔잖아.




퇴근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떠 있다. 볼 수 있다는 환경이, 퇴근한다는 그 환경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더냐.




저녁 7시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봐야 하는 국책과제용 규정집을 읽고... 누구들에게는 정말 별 거 아닌 사소하고도 귀찮은,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디테일하게 쳐다보지도 않을지 모르는 그 보고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문득. 다시 찾아오려는 감정을 애써 추스르며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라는 존재를 다시 제대로 알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책하지 않기 위해.

나는 이 감정에 지지 않으려 오늘도 '글'이라는 것을 쓴다. 그리고 동시에 바랐다.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겠노라고. 동료가 해 준 말 대로... 조금 더 '이성' 적인 '직장 인간' 이 되어.. 보기로. 이왕 버티기로 했다면... 그것이 나로서는 쉽지 않아도, 누군가가 입사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그 순간에 나는 '밥벌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감사하게 주어진 이 하루, 이 환경을.....



밥벌이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또 온다 해도.

이 순간순간들은 훗날 그리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조금 더 기억해보려 한다. 아울러 미우나 고우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는... 열심히... 정말이지 열심히 살 아내 보려는 귀한 사람이라는 것도. 이 '마음' 이 함께 한다면... 험난한 밥벌이의 정글 속에서도 '글'에 잠시 기대는 이런 시간과 함께... 이 정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믿는.... 다.



해는 다시 뜨고, 새는 날개를 펴서 다시 날아오르면 된... 다... 날고 싶다고, 날 수 있다고 생각만 한다면.. 괜찮을 거야....




#빛이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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