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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18. 2019

바다를 닮은 음악, 그리고 글

물 만난 물고기 

음악이 없으면 서랍 같은 걸 엄청 많이 사야 될 거야. 

원래는 음악 속에 추억을 넣고 다니니까. 


- 물 만난 물고기 - 




음악을 하는 젊은 아티스트의 첫 소설 작품집을 

퇴근길 버스에서, 점심시간 틈틈이 읽어내리면서 덮었을 때. 그가 얼마나 '음악'에 자신의 감정과 세계를 이야기하려 하는지,  그러고 싶었는지를. 이 묘사 가득한 서정적인 장면이 연상되는 소설을 읽어 내리면서 잠깐 생각해봤었다. 나에게 '음악' 은 어떤 것인가 하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늘 글을 쓸 때 '음악'을 듣고 어떤 떠오르는 단상에 취한 듯이 그렇게 손가락을 놀리고 마는 나에게,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시간' 은 어떤 것일까 하고... 



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수카, 2019.09.26. p. 200




글을 쓰는 사람이든 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든, 그들만의 '시선' 이 있는 법일 테다. 

흔히 예술을 하는 이들은 그들만의 조금은 평범치 않은, 일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순간, 또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발견된다고 한다. 그 연장선에서 저자의 음악적 감수성과 예술 세계에 잠깐 동안만큼은 '퐁당' 빠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소 귀여우면서도 서정적인 아름다운 단순한 문장과 단어들의 배열 속에서. 캐릭터 안의 관계 속에서 연상될 수 있는 어떤 '상상' 마저도 자극하게 만드는 그의 소설이 사실은 조금 난해하게 다가왔지만, 그 난해함 덕분에 오히려 그만의 창작 세계도 빛날 수 있는 법일지 모른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추억도 새로 산 서랍 속에 넣고는 겉에 '작은 별'이라고 쓴 테이프를 붙여놓아야 할걸. 아마 번거롭겠지. 근데 그럴 필요까진 없어. 우리에겐 바다가 있으니까. 바다는 아주 큰 서랍이야. 우린 먼 훗날 바다 앞 모래사장에 걸터앉아서 오늘을 떠올릴 수도 있어. 



아무리 수면 밑이 소용돌이친다 해도 겉으론 평정할 수 있는 게 또 '인간' 일지 모른다.




어쩌면 '사랑'을 했던 실제 경험을 왜곡시켜 비틀어서 이런 문장들이 탄생된 건 아닐까. 

기어코 '독자'의 시선에서 저자의 의도야 어찌 되었든 나는 스스로 자해 석을 하고 말아 버린다. 문학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는 바로 그 '읽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로 작가가 주는 메시지 그 이상의 것을 또 달리 '창작' 해 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에.  어쩌면 그는 사랑에 빠져 있든, 그 사랑이 '이별'로 종료되었든, 그 시간들이 담겨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내가 그런 '희망'을 품어 버리고 말았기에 상상했었던 걸지도 모를 일이고. 



나중에 같은 온도의 바람이 불면 그녀에게 이 순간이 떠오르길. 




고백건대, 나 또한 '글'이라는 걸 쓰고 있을 때면 사실 '누군가'가 읽어 주기를 작정하고 바라는 듯. 

그런 마음 상태에서 쓰는 글들이 종종 있다. 그 연장선에서 팩트 소설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허구를 빙자한 진실을 돌려 써내기도 하고. 요즘은 책을 읽고 그 책을 읽은 '나'를 연장 지어 이야기해 내는 서평에 푹 빠져 있는 게 사실이지만. 여하튼 음악을 만드는 그의 세계는 비교적 평탄해 '보이는' 듯하지만 실상 여러 감정들을 움켜쥔 채 살아내고 있으리라는... 어쭙잖은 생각을 잠시 동안 해 봤다. 그가 슬펐던 만큼, 캐릭터들에게 투사되었을 것이라고. 내가... 허구를 쓸 때 그러한 것처럼. 



노래를 부르는 내내 그의 눈가에 어느 때보다 큰 슬픔이 드리웠다. 그가 여태 어떤 외로움을 간직한 채 버텨왔을지 짐작이 되었다. 그의 모든 지난날이 이 노래에 표현되었다. 그는 마지막 구절을 한 번 더 되뇌어 불렀다. 


떠날 때 발등에 개미가 올랐길래 걸음 멈추고 나누었어요 작별 인사를 

정든 찻잔도 물기 밴 마루도 의미를 알기 전에 바꾸지 말아요 

내 마음에도 같은 것들을 남긴 것처럼 



남겨진 생각들은 먼 훗날, 안개에 싸여서 그렇게 '추억'이라는 것으로 종종 떠올려지는 것 같다.




때론 노래 한 곡으로 인해 글을 쓰는 3평 남짓한 나의 모든 공간마저도 '작품' 이 되어 버리고 만다. 

글을 쓰는 공간은 곧 나 자신인 것 같은. 조금 더 보듬아주고, 위로해주고 쓰다듬어 주고 싶은 공간.... 그 공간에서 듣는 음악. 그 음악 속 가사 혹은 멜로디로 인해 연상되는 장면, 기억과 추억들은 '과거'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를 찾아오며 반대로 상상의 장면들은 '미래'라는 그리움으로 나를 자극한다.. 어쩌면 '음악'과 '글'은 그래서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것들을 대하는 '나'라는 사람 자체의 '작품' 과도 같은.... 존재 그 자체 같기만 해서.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이 문장 하나를 보고 이상하게 다이어리에 적어 보고 싶어 졌다. 

그렇지. 맞다. 정말 그러하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할까... 그럴 수 있는 위인이 얼마나 있을까... 결국 우리가 사랑을 하고 마는 것은 '너'라는 대상이지 너와의 이별은 아닐 테니까... 얇은 파란색 표지가 서정적인 바다와 바닷가의 여러 풍경들을 떠올리게 만든 채, 나는 잠시 그리워했다. 


당신과의 바다 여행을.... 

그곳에서 서로 아무 말하지 않아도. 바다를 닮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먼 나라 이야기 같기만 한 그 '상상'을... 나는 중얼거렸다. '안 되겠어요. 난 바다에 가서 바다를 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가 아직 멀기만 하네요...'라고. 


갈 수 있을지 장담하지 않지만.. 바다를 함께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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