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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1. 2019

당해도 싼 인생은 없다.

나의 가해자들에게 

만일 살면서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이 한 번이라도 온다면

그때는 내야 해요. 그게 멋진 거예요. 


- 나의 가해자들에게 - 





'그래도 되는' 인생이 세상에 있을까. 아니 없다. 절대로. 

당해도 싼 인생은, 맞고 또 맞고 또 맞아도, 그래도 괜찮은 인생은 사실은 없는 것이겠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래도 괜찮은 인생을 적잖게 만들고 마는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그물 같은 관계를 맺어가면서... 학교 폭력, 사내 폭력, 가정 내 폭력, 성폭력... 소수자의 목소리는 다수라는 군중의 강한 데시벨에 묻혀 버리고 만다. 한데 여기, 10명의 사람들이 모였단다. 아픈 과거를 애써 들춰내면서까지도 그들의 목소리는 이토록 한결같았다. '그래도 되는' 인생은 없다고. 



나의 가해자들에게, 씨리얼, RHK, 2019.10.10. p. 280



여자 반과 남자 반을 나눠 각 5명, 총 10명의 인터뷰 참가자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어느 한 유튜버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이라고 분류된 이들 10명을 모아 인터뷰 영상을 찍었다고 했다. 조회 수는 급속도로 번졌고, 미처 영상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펀딩에 성공했고 이 독립출판물을 유심히 지켜보던 출판 관계자 눈에 띄어서 결국 유명 출판사에서 출간까지 이뤄진 것이다. 



영상을 보진 못했지만 눈에 읽히고 상상이 되는 텍스트들만으로도... 충분히 그 아픔이 전달된다. 

읽는 제삼자의 심정도 이렇게 폐부를 찌르듯 아프고 저린 것을.... 겪었던 이들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테고, 감히 서평이라는 걸 쓰고 앉아있는 나 또한 어딘지 모를 이상한 죄책감과 반성을 하게 된다. 나도, 그 언젠가의 '방관자'는 아니었을까 하고. 




커 가면서 이런 게 얄미웠어요. 가해를 했던 애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요. 어떤 애들은 잘 안 풀리는데 그러면 뭐 좋은 마음이 들진 않아도 최소한 화는 덜 나요. 근데 너무 잘 풀린 애들을 많이 봤어요. 누가 들어도 알 만한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애도 있고, 굉장히 좋은 친구로 평판이 나는 애도 있고, 허탈해지는 느낌 있잖아요. 저지른 사람은 없고 당한 사람만 있구나, 결국에는 그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어요. 


저는 피해자였던 그 삶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잊고 살더라도 한 번씩 튀어나오는데, 가해자들 기억에는 없나 보더라고요. 




목소리를 냄으로 인해 스스로의 삶에 작은 등불 하나 켤 수 있는 용기가 더 생기셨던 건... 아닐까 싶었다.




폭력은 다양한 얼굴을 지닌다. 

그중 가장 비극적인 얼굴이 바로 '가족'으로 엮어진 이들 사이에서의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매 맞는 아내, 그런 엄마 밑에서 같이 매 맞는 어린아이들, 학대 아동과 가정 폭력 피해자 '여성' 들을 우연한 계기로 기부를 통해 알아가면서...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정기적 후원을 행하면서, 때로 종종 밀려오는 메스꺼움을 쉽게 거둘 수가 없다.  도대체가 근원을 뽑을 수가 없는 폭력들이기에.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어 우리를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전 아직도 우울증과 싸우고 있고, 불면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어요. 수면제의 도움으로 잠은 자지만, 거의 매일 악몽을 꿔요. 꿈에서 저는 왕따 당했던 일을 다시 겪어요. 그 괴로움에 너무나도 힘들어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잠에서 깨요. 잠에서 깬 후에도 너무 괴로워 죽을 것 같아서 정신이 희미한 상태로 유서도 몇 번 썼어요. 




얻어터지는 삶은 의외로 많을 수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 

학교에서 실컷 얻어터지고 돌아온 '장애아'를 둔 부모의 심정, 어린 남매가 있어서 수시로 얻어맞는 엄마로 살아도 도망치려 하지 않는 여성의 마음, 가난하다고 냄새난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했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다시 폭력이 폭력을 낳고 마는 현실, 아무 이유 없는 조롱과 희롱, 성적인 폭행과 인권 유린의 현장..... 



스스로 마음의 촛불을 켜 두어야... 겨우겨우 살아지는 삶이라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으려 했을 뿐, 아니 모른 척할 뿐. 

돈과 권력이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상업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절대 뿌리 뽑히기 쉽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당한 이들은 숨어 지내며, 가한 이들은 당당히 자신의 멋을 드려내듯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도 한단 말이다.  SNS에서 보이는 착하고 예쁘게만 '보이는' 셀럽, 인기가 만렙이라 그 누구도 감히 가려진 진실을 보기가 쉽지 않은, 편집된 팩트를 자신들의 무기로 삼아 돈을 버는 자극적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인플루언서 유튜버들, 그들 중에 '가해자'였던 이들을 보는 '피해자'의 심정은 또 어떠할까... 싶다. 




가해자들한텐 그 당시가 순간이었겠지만 저는 10년 20년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고통을 겪은 거잖아요.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나는 할 수 있는 것도 많았고,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놀러 다닐 수 있었는데, 내 나름의 추억을 쌓고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입고 여러 활동도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동안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았을까, 그게 너무 아깝거든요. 아깝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긋지긋하게 지저분한 사회라는 걸 선명히 알 수 있게 되는 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사건들을 접할 때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숱한... 뭐랄까. 누군가에겐 극도로 편하고 아름답기만 한 시간이, 동시간에 얻어 맞고 자라며 그 매 맞는 멍들어지기만 한 시간이 지옥 같은 일상이나 벗어나기도 쉬이 쉽지 않은 시대. 폭력이 다시 폭력을 낳고 그렇게 사회적 범죄로 연결되는 실태가... 메스꺼움은 그렇게 밀려온다. 



더군다나 이젠 양육자의 길을 걸어가다 보니, 결국 학교 폭력은 '어른' 들의 책임과 몫이 더 크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사교육과 '치맛바람'으로 그저 '똑똑하고 유순한' 자식으로 만들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부모' 들을 직간접적으로 적잖이 봐오면서. 돈 있으면 그걸로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쓰레기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아이의 인성이 의심되는 행위가 가정 내에서는 보이지 않아도 바깥에서 보이고 마는 것이라면. 그럼에도 자기 새끼'만' 귀하다 여기며 감추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어른들이 여전하다면... 



개쓰레기만도 못한 (진짜 후진) 선생들도 여전히 교단에 설 수 있는 세상인지라. 

선생'질'과 부모'질'에 어떠한 '어른스러움' 은커녕, 여전히 뭐가 우선순위인 지 구분 못한 채 그저 속절없이 '교육'이라는 걸 한답시는... 그 어른들도 일정 수준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일 테다. 




사실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애들이 안 할 텐데, 막 뻔뻔한 부모도 있잖아요. 애들이 놀다가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부모 때문에 더 심했다는 거죠. 


방관자 입장에서도 '저건 분명히 잘못된 거고 벌을 받아야 할 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겨야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모호한 기준을 그대로 두고 간다면 친구들과 무리 없이 잘 살고 있는데 굳이 나서고 싶지 않겠죠. 내 삶이 잘 유지되고 있는데 괜히 나섰다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잖아요. 두려우니까요.


왕따가 왜 생기냐고 물어보면 그게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공부 잘하는 애가 제일 중요하니까, 서열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걸 바꾸지 않으면 왕따 문제가 사라질까요? 안 사라져요. 절대 안 사라질 거예요. 방관자들은 여전히 방관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손을 내밀어도 시원찮을 판에... 그 손을 계속 어둠 속으로 갇히게 하려는 어른들의... 발상들과 마주하면 좀.. 슬프고 많이 아쉽다.




그래도 말이다. 시궁창 같은 삶이라도 '나'를 믿어주는 '지지자'가 있다면, 또 삶는 그럭저럭 견딜 수가 있는 거다. 

지옥 같다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도저히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것 같은 올가미 같은 삶이라도 말이다. 유린당하는 시간 속에서 상처만 거듭 곪아 터져버리고 말지언정. 단 한 명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픈 가해와 쓰린 방관자들 사이에서도, '마음'을 쓰고 '관심'을 보이며 손을 내밀어 주는 단 한 명의 사사로운 손길만 있어도.... 또 살아지는 게 삶일 수 있을 테니까. 




초등학교 때 저를 챙겨 주고 말을 잘 걸어 주던 다른 반 아이가 하나 있었어요. 밥 맛있게 먹었냐고 말 한마디 걸어 주고, 쉬는 시간마다 나한테 와서 '같이 놀자, 우리 반에 와서 놀아' 하면서. 다른 반이라고 제 상황을 몰랐던 건 안었을 텐데. 그 친구 덕분에 지옥 같던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이제 용기를 내야 한다. 모른 척하지 않을 용기를. 

방관도 가해만큼 또 다른 2차 가해라고 보는 편인지라. 불의를 보면 때로는 '참지 않고' 바른 목소리를 내는 조금 더 용기 있는 어른들, 아울러 그런 '사람' 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다수가 만들어 버린 시스템을 상대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극도로 미약한 수준일지 모르나. 그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존귀하고 귀한 생명이라는 것을 '아는' 진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걸 이제 그냥 안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이제 없어졌던 나를 찾고, 그걸로 다시 살아 보려고 저를 잘 가꿔가는 중이에요. 저는 지금 파티시에로 일하고 있는데, 제가 만든 케이크를 드신 손님이 그걸로 인해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셨으면, 그 행복감이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세상 살아갈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피해자로 살았던 과거라고 해서, 현재와 미래가 계속되는 피해로만 가득 차서는 안 될 테다. 

조금의 희망과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려 애쓰는 이들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 그 아픈 문장들이 가득했던 이 한 권의 책을 덮으면서 또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스스로 '질문' 하게 만들었지만... 그래서 참 좋은 책을 만난 듯한 마음에 미안하면서도 고마움을 느끼고 마는 '나'를 발견한다. 좋은 책이란 무릇...'질문'을 하게 만들어서 결국 어떤 '깨달음'까지도 자극해줄 수 있는 것이 진짜 좋은 책이기에...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참 좋지만 동시에 그만큼  '아픈' 책인 것은 분명하겠다. 



영영 어두운 건 아닐 것이다. 붉은 저녁노을을 보려는 어떤 애씀과 용기만 있다면.... 힘을.. 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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