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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3. 2019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곳의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치앙마이 

어떻게 즐겨도 되는 곳이 치앙마이이므로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치앙마이 - 





10월의 날씨가 대한민국의 한여름보다 더 덥다는 그곳, 태국의 치앙마이. 

태국이라는 곳은 업무 상 출장지로만 오고 갔던,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출장자'의 입장에서의 첫 대면을 했던 나라였기에 내게는 '긴장'의 나라로 기억된다. 가본 곳도 수도권이 다였고, 이런 곳이 있으리라는 것도 사실은 몰랐던, 여행은 여전히 잘 가보지 못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일지도...) 나로서는, 이 얇고 아담한 사이즈의 책에서 왠지 모를 '그리움' 이 느껴졌던 건 왜였을까. 아마도 가보지 못한 이의 감성 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한 막연한 정서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치앙마이, 곽명주, 쉬는 시간, 2019.09.19. p. 124




태생(?)의  환경 상, 늘 '일, 노동'이라는 것을 달고 사시는 부모님과 노출된 가정환경 덕분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소 불안' 한 캐릭터 셋으로 환경설정이 되고 말았다. '되고'라는 수동태를 굳이 쓰는 이유는, 반대로 여행을 자주 가고 노동이라는 삶의 굴레에서 조금은 '여유' 있는 삶을 살는 부모님들이었다면 그 캐릭터는 변했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부모님 탓을 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살면서 인간이 선택하지 못하는 영역이  '가정'과 '부모'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것인데, 나는 이번 생에 그 두 가지 복을 타고난, 축복받은 인간임은 분명하니까. 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비록 느끼면서 자라진 않았지만, 적당히 어른이라고 정의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알 수는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세상에는 있는 것이라고. 성격이 그렇지 못해서 탈일 뿐이지.. 


삶의 여백이 많이 없었던 부모님을 요즘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미안해서. 이것도 사랑인 걸까.




뭐든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유일하게 잘/쉽게 하지 않는 영역이 바로 '여행'이다. 

그러나 참 인간이 간사한 것이, 이 감정선 밑바닥에는 반대로 바로 그 막막하기만 한 여행길임에도 불구하고 '해보지 않았기에' 끌림을 느끼고 마는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품고 만다는 것이다. 이른바 '퇴사 여행 에세이'라고 분류될 법한 이 책을 접하면서도. 내내 머릿속에서 '나도 퇴사하고 글만 진탕 써볼까' 싶었지만. 금세 접었다. 아뿔싸 싶었으니까. (그러기엔 여전히 월급이라는 마약을 '좋아하고' 반대로 창업교육마저도 받으려는 심보 덕분에 다음 달부터는 야간 창업 수업을 '저질러' 버린 '프로 노동자' 라.. ) 


부러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근사했다' 작가님의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누려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떠날 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물며 여행 하나를 떠나는 것도 '계획'이라는 걸 곧잘 세워버리고 마는 나로서는, 퇴사하고 여행이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용기'가 아니더냐. 하면 또 쉽다고? 그러나 말이 그렇지 여전히 퇴사라는 것은 쉽게 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며, 쉬운 길도 분명 아닐 테니. 그래서 더 근사해 보였던 건, 이 분이 '여행자의 특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을 때의 그 담담한 목소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유를 즐겨도 괜찮은 특권을 내가 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같아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충실하게 지켰던 것은 충분한 수면 맛있는 음식과 과일 휴식 광합성 카페 놀이 멍 때리기 그리고 때때로 요가였다. 한국에서 백수로 지내며 이런 것들로만 하루를 채운다면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비난을 받거나 아마 그보다 더 큰 자기 의심이나 혐오가 들 수 있다. 하지만 여행 중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모든 여유를 즐겨도 비판받지 않을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여행자의 특권이다. 


치앙마이에서는 대체로 누워 지냈다. 비교적 일상이 단조로운 까닭이다. 사원 몇 개를 제외하고는 역사적 유적이나 볼거리가 크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 장기로 체류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훌륭하다'라는 표현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개인을 사랑하는 위대한 삶을 사는 것일까. 

문득...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아끼고 보듬아줄 수 있는, 자신에게만큼은 너그럽고 관대하여 그렇게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그릇의 사람이기에 가능한 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을 사랑해야만 비로소 남들에게도 '그래도 괜찮아요 훌륭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나처럼 쓸데없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처음부터 신나게 펑펑 쓰고 잘 놀고 잘 먹었다는 분이 있다면 정말 훌륭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또 에어컨이 썡썡 나오는 숙소에 종일 누워만 있었다고 해도 역시 훌륭합니다. 어떻게 즐겨도 되는 곳이 치앙마이이므로. 




나에게 여행자가 누리는 최고의 사치적 공간은 바로 '공항'이다. 제일 설레는 곳은 여행지가 아니라 '공항'이었다고...



여행의 '시작' 엔 늘 '끝'이라는 것이 있다. 

정착하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반박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정착이라는 것이 어디 쉬운가? 정착은 곧 일상과 삶이라는 것으로 다시 연결되고 마는데, 그럼 잠시 떠나는 여행과 일상은 그렇게 여행이었다가 일상이 되었을 때에도 일관적으로 그 '느낌'이라는 걸 유지할 수는 있는 영역인 걸까? 아니.... 나는 결국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결국 여행도 끝이라는 게 있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행은 잠시의 휴식일 수 있다면 삶은 '생존'의 영역이기에. 

그래서 여행이 더 근사한 것일 수 있는 거다. 또한 이 생각을 갖는다면 반대로 일상을 '여행'처럼 지내는 태도의 소유자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여행자의 누리는 특권마저도 근사하게 누리는 그릇을 가진 사람은 아닐까...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총비용이 100만 원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처음엔 이에 맞춰 살아보고자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돈을 적게 쓰니 아무래도 생활이 재미가 없었다. 퇴사 직후의 심드렁함까지 겹쳐서 이곳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란 커다란 즐거움이 주는 활동인 것이 자명했고 나는 현지인이 아니었으며 그들처럼 그곳에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시간을 함께 보낼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행은 '혼자'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여행' 같기만 하다.... 나를 떨쳐 버릴 수 있는 곳과 동시에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는 것...



잠시 동안이었지만, 나만의 장소,  '그곳' 이 한참 떠올랐다. 

'종이의 고향'이라고 한때 내가 이름 지어준 '그 장소'로 떠나고만 싶어진 나는. 언제 어떻게 떠나지라는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진창 해대고 만다. 버스를 타고 가든 지하철을 타고 가든 마음과 의지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것을, 그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 것이리라. 나의 부재로 인해 불편함을 느낄 사람들이 바로 떠올랐기에... 이젠 그런 삶을 살아내고 있기에. 그들의 돌봄은 내 생의 또 다른 떨치지 못하는 '의미' 이자 '가치' 이기에. 



쉽게 떠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언젠가의 '시간'을 바랐다. 

여전히 스스로를 제대로 돌볼 줄 모르고 '나'라는 개인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나'여서. 조금은 몰아치듯 뭔가를 이뤄내려 아득바득 노력하는 내가 가끔은 안쓰러워서... 그 언젠가의 '떠남'을 선물해주고 싶기도 한 충동마저도 느끼고 말아 버린 나는, 오늘 떠날 생각이다. 어디로? 매일 떠나는 글을 쓰는 공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너희 둘' 이 있는 그곳으로. 이제는 이런 24시간을 '여행' 하듯 지내려 하는 어떤 애씀을 마음 깊이 간직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 마냥, 여전히 열심히 살아내려는 '당신' 이 떠올라서...

나는 조금 아팠다. 그러면서 동시에 바랐다. 그리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당신' 과도 함께 '떠날' 수 있기를... 


그 흔한 드라이브조차 이제 쉽게 하지 못하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지만, 그 언젠가의 시간을 상상하곤 한다. 바다가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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