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의 영수증을 듣고 난 단상
김생민의 영수증
단언하건대 요즘의 화제는 바로 ‘스튜핏’과 ‘그뤠잇’인 듯 하다.
내가 활동하는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이 정말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스트레스 좀 풀려고 가을 옷 하나 장만했어요 근데 이거 스튜핏이죠?
오늘도 그뤠잇은 망길이네요. 밥 하기 귀찮아서 생각에도 없었던 외식을 했다는…’
꾸준히 청취한 건 아니었으나, 몇 번을 들어봤을 때 그의 절약 정신은 유머와 함께 적절히 승화되어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연예계의 대표 알뜰맨 김생민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과 적금으로 부를 축적하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잘 맞아 떨어져 보였다.
헌데 몇 몇 기사의 댓글을 보니 젊은 소위 말하는 욜로 층들은,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짠돌이 재테크에 정나미 떨어진다는 식의 비하 댓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헌데 가만 생각해 보면 말이다. 우리는 누구를 질책할 수도 섯불리 공감할수도, 아니 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싶다.
그저 타인의 어떤 경험기이고 일화이며,
우리는 그것을 적절히 경험하는 '객체'이지
나의 돈은 내가 관리하고 내가 소비하는 주체가 아니던가.
그러니 어떤 이유에서건 옳다 그르다를 쉽게 판단하고 누군가를 질책할 자격은 더더욱 우리에겐 없을 거다. 사실 나는, 그가 짠돌이라고 질책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해 보인다. 왜냐면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다. 따지고 보면 김생민이라는 방송인은, 타 인기 절정의 연예인과는 확실히 다른 시작과 과정을 보여주었으니깐.
‘옷은 한 번 사면 17년은 입는 것’ ‘껌은 친구가 주면 씹는 것’ ‘커피는 선배가 사줄 때 마시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그 자체로 그의 삶이었을 것이다. 20년 이상의 방송국이라는 장기근속 상의 대가로 결국 약 10억원을 모은 신화를 가질 수 있었던 그의 이야기는 가히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해 준다.
사실 생활을 꾸려가다 보면 내 월급은 쉽게 안 오르고 쓸 데는 또 많아 지곤 한다.
우리가 처한 지극한 현실이다. 그럴 때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더 많이 벌것인가 혹은 적게 쓸 것인가. 쉽게 말해 소비를 절제할 것인가 소득을 늘릴것인가의 문제다. 아마 실천이라는 측면에서는 후자가 더 어렵고 전자가 제법 바로 실천하기 적당하다.
나의 '하루 10분 거꾸로 가계부'도 어찌 보면 꽤 젊은 시절에 목표 금액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단행본으로 구구절절 나열해 두긴 했지만 쉽게 말함 딱 두가지의 실천이야기가 중심이었다.
뚜렷한 목적과 이유 + 소비절제 = 머릿속에 그리는 장면의 현실화
김생민 씨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따라서 그를 소위 꼰대라고 비아냥 거릴 자격이 우리에겐 없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함부로 이야기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의 명언 하나가 떠오른다.
“이 세상에는 ‘잘되는’ 사람보다, 안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잘되는 1%가 아닌 안 되는 99%인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협상에서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건 내가 들어놓은 적금입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오직 돈 때문에요.”
틀린 말이 아니다. 너무나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돈 떄문에 사는 인생은 불행할 수 있지만, 최소한 그 돈이 반대로 결핍되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불행하지 않을까? 자유로운 삶이 아닐 것이다. 돈을 왜 버는지에 대한 삶의 철학이 명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채 그저 지내는 사람과는 겉보기엔 비슷할 수 있어도 그 내면은 분명 다르게 시작될 수 있고 삶의 틈은 점점 벌어질 수 있다.
그의 방송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또한 그의 해박하고 적극적인 경제 지식에 놀라지 않을 수없다. 영수증 한 장에 담겨 있는 개인과 돈의 철학을 통찰할 수도 있다.
그에게 ‘그뤠잇’을 받으려면 과소비 하면 안 된다. 과소비라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으나 보통 자신의 삶 혹은 목적 자금이 필요한 이에게 허락될 수 있는 소비의 절제가 필요한데, 이를 간과하고 자신의 현재 자산과 벌이의 위치에서 훨씬 더 초과되는 액수의 돈을 무조건적인 ‘감정적 씀씀이’ 에 집중해 버리면, 어느새 지갑은 텅텅 비고 통장 잔고는 ZERO 가 되며 마이너스 통장에 빠져들 수 있다. 당연히 ‘스튜핏’을 듣기 십상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가령 생수 한 병을 산 1200원은 질책하며, ‘물은 집이나 직장에서 떠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가, 부모님을 위해 한 행동에는 거침없이 ‘그레잇’을 날린다는 점이다. 마냥 짠테크는 아니란 소리다.
물론 약간의 안타까움도 느껴지긴 한다.
자신은 아이들 로션에 물을 적셔 바르며 ‘물광’을 내고, 햄버거는 명절에 조카들이 모일 때나 먹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유쾌하고 당당한 발언 어딘가에 돈을 벌어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씁쓸하고 외로운 면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이니깐.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10억이라면, 해볼만 한 게임 아닐까 싶다. 또한 그의 직업 특성 상 유머로 의지로 슬플 수 있는 돈의 소비 현실(?) 또한 적절히 승화 시키니, 가히 나는 박수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절실함이 필요하다.
현재 섭외 순위 1위의, 이제서야 더욱 전성기를 맞이한 통장요정 김생민은, 오히려 지금을 경계한다고 한다. 거품이 끼면 허세를 부리게 되고 그럼 감정도, 재정도 과소비를 하게 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역시 ‘한 방’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과 성실함,
그리고 절실함이라는 걸 그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가계부 책에도 결혼식에 대한 단상과 돈의 관계를 잠시 거론해두었지만, 김생민 역시 결혼식을 대하는 일반적인 관점과는 다른 시선을 보인다.
인생에 한 번 모아둔 돈을 탕진하는 시간이 바로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결혼식이라는 점이다. 웨딩을 앞둔 예비신부에게도 “절실함이 있다면, 네일케어는 받지 말라”고 한다. 결혼식 사회를 숱하게 봐온 그는, “어차피 장갑을 끼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의 현실조언에는 이처럼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리가 있다.
과하게 넘쳐나는 세상이다.
우리는 마음의 나약함과 귀의 얇음 때문에 때때론 손해를 보고, 감정이 앞서서 필요하지도 않지만 마음의 위로라는 겉포장으로 과소리를 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가지며 너무 많이 입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심플하게 산다.
미니멀리스트가 떠오르기도 한 요즘의 트렌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없는 청빈한 삶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가 그 과정에서 숱한 많은 것들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발버둥 친다지만 결국에 죽음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고작 죽기 전에 아니 죽은 후에 내 몸에 걸쳐질 수의 정도일테니깐.
정답은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나는 여전히 심플하게, 단순하게, 비어내고 덜어내는 24시간을 보내보고 싶다. 1일 1식을 지속하는 건 꽤 힘들지만, 최소한 덜 먹고 덜 쓰고 덜 생각해 내어, 가볍고 단순하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소비를 위해 좀 더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노력한다.
그 나만의 시간을 갖으려고 여행을 간다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카페에 가서 6천원짜리 그린치 프라푸치노를 사 먹는다면 물론 김생민씨에게 ‘스튜핏’을 몇 번이고 들을 수 있을테지만, 10번이면 1번 정도는, 스스로를 위한 선물을 줘도 괜찮으렸다. 다만 그것이 반복되고 자주 있으면 그의 말을 빌려, 욜로 쫒다 골로 가게 되는 현실을 쓰디쓰게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한다.
스스로 알아야 한다.
내가,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와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지하게 한번쯤은 생각해볼 시간을 갖는 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은, 사실 돈이라는 것에도 같은 이치일 수 있다. 돈을 모으고 쓰는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이 뚜렷해야 한다.
‘하루 10분 거꾸로 가계부’의 키 메시지도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스스로 세팅한 삶의 방향,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아가면 된다.
아이를 낳고 소비가 많아진 게 나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내 가정의 자산 흐름을 남들과 달리 꽤 뚜렷하고 정확한 숫자로 알수 있는 비법은 바로 ‘기록’을 하기 떄문 이라고 생각한다.
말과 글에는 꽤 큰 힘과 기적이 들어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엄마 잘 만났네요. 부럽습니다. 사실 고객님처럼 방향이 뚜렷한 분도 (그 나이대의 자산도) 드물어요.
좀 부끄럽지만 사실은 기쁘고 스스로 기특하기도 하다. 자산관리사가 해 주신 이 한마디가 앞으로도 유효하기를 바라는 오늘, 나는 ‘스튜핏’보단 ‘그뤠잇’한 24시간을 상상하며 움직여보고자 한다.
여러분의 오늘도 부디 스튜핏 보단 그뤠잇이 많아지길.
오늘은 특히 '슈퍼 울트라 그뤠잇'되세요 :)
Best 그레잇
1. 미혼인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여기에 92점 드린다. 그래야 돈을 모은다.
2. 이 정도 수입이라면 100만원이 아니라 166만원씩 저축해서 6개월에 1000만원을 모아야 한다. 현재 1억원 정도는 현금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3. 혼자 다니면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어묵을 사먹을 수 있다. 이런 소비가 중요하다. 사람은 착하기 때문에 남을 배려한다. 친구와 함께 다니면 돈을 더 쓴다.
Best 스튜핏
1. 운동화를 같은 브랜드 상품으로 두 번 결제했다. 둘 중 고민이 된다고 둘 다 산 건데, 이러면 여기에 맞춰서 티셔츠를 사게 된다. 수퍼 스튜핏이다.
2. 일본에서도 컨버스 운동화를 샀다. 신발 중독자일 확률이 높다. 지금 사둔 운동화로 10년은 신을 수 있다.
3. 일본에서 10만원 넘는 티셔츠를 샀다. 적어놓자. 반팔 티셔츠는 2만원 이하로 산다. 명품 티셔츠도 12번 빨면 늘어난다.
4. 일본에서 감자칩 15만원어치를 샀다. 아마 선물용으로 산 감자인가 본데, 방송국 스태프에게는 1200원짜리 열쇠고리 20개를 돌리는 게 합리적이다.
5. 소비에 계획이 없다. 이런 분은 수첩에 살 것을 적고, 산 뒤에는 가계부를 적자. 멘탈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9월에는 뭐가되었든 그레잇한 시간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스튜핏 노~ 그뤠잇 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