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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18. 2017

17. 나의 아이'둘'

쌍둥이 엄마의 오늘 짧은 생각

아이'둘'과 나    

 몸을 두 개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익숙한 마음이다. 워킹맘 6개월 차에 접어든 나는 참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여자다. 오늘의 이 글은 어쩌면 그런 나를 향한 비난과 동시에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반성의 글이 될 것 같다. 글을 쓰기 전부터 백지의 도화지를 내내 쳐다보다가 아이들의 오늘 아침의 풍경을 사진으로 전송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으니깐.   


애미야 우지마오 돌 위에도 이제 선뜻 앉게 된 둥이들인 것을....!  (오늘은 사진 대방출~도치맘 어쩔...)  


나는 쌍둥이 엄마다.

 카톡으로 사진 7장이 전송되었다. 바로 오늘 아침, 어린이집 등교 시간이 신랑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들이다.   


정말 부쩍 많이 컸어. 우리 쌍둥이들.. 수고했어 쌍둥이 어미야...


그렇게 안 자고 악써대던 첫째녀석이, 요로코롬 흙도 쪼물딱 댈 수 있게 되다니. 맙소서 일단 일어서서 걷고 이젠 통잠도 자주다니....말도 되는, 아니 이건 말되는 레알현실임


 팀 미팅을 하다가 보내진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순간부터였을지 모르겠다. 내 가슴이 이상하게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프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이 감수성! 남들이 엄마 되면 더 강해질 거라 했건만, 왜 나는 되려 한없이 약해지는 걸까 (최소한 아이들 앞에서는) 엄마라는 역할을 가지게 되면 좀 없어질 줄 알았는데, 반대로 더 자라고 있는 감정과 감수성이다. (자라나는 꿈... 꿈나무... 털썩) 


시간을 달리는 소년 ! 달려라 둘째둥아~ (직진 본능 요새 최고 에너지 흥 폭발 잔망둥이)


 버럭 했다.

 왜 아팠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 원인은 아무래도 일요일에 나도 모르게 둘째 정음이에게 쏟아 내린 잠깐의 ‘버럭질’ 때문이었으리라. 왜 버럭 했냐면, 그것도 지나고 보니 정말 별거 아닌 이유 갖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아 모자란 나란 인간이란-)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점심 12시까지. 보통은 낮잠 1번 정도는 10시 전후로 잠들어 주시는 그 ‘희망’으로 주말을 신랑과 ‘버틸’ 때가 있는 게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몸이 피곤하고 아이는 쉬지 않고 놀고 칭얼대고 그래서였을까. 또 버럭 해 대고 말았다. (물론 이후 2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 1시간 정도의 낮잠을 자준 덕분에 신랑과 나는 그야말로 ‘떡실신’이 되어서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퍼져서 잠들어 버렸다)   


동물원에서 바라본 '떡실신 호랭이' 엄마가 꼭 나 같아서 물끄러미 바라봤다는.........ㅎㅎ 뭔가 공감되면 '라이킷~ㅋ'

 각자 다른 육아와 삶

 사연과 사정은 개개인마다 틀리니, 웬만해선 '주체적인 삶'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을 믿는 편이다. 그런 철학이 자리하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턴가, 필요에 의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면 타인들의 조언과 경험, 그리고 여러 나라의 괜찮은 지식들의 그럴싸한 총체인 육아서를 잘 안 보게 되었다. (가끔 들여다보는 '엄마 감정서'들은 그럼에도 혹하긴 한다) 


 다른 집들의 육아 교육관이나 타인들의 가치관은 이미 신경 안 쓰기 시작한 지 오래이다만, 오늘은 문득 궁금해지는 오후다. 우리 집의 요즘 모습은 그들 대비 어떨까를 잠시 상상해 보면서 썰을 약간 풀어보게 되었으니깐.  


 일이 쉼이고(?) 쉼이 일(?) 이 되어버린 일상 

 월화수목금토일 중 신랑과 나에게 주어지는 ‘쉬는 주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회사라는 일터가 오히려 쉼터고 집이라는 쉼터가 때로는 일터로 변해버린 일상이다.


 평일은 회사와 육아, 주말은 온전히 육아, 그렇게 모든 생활패턴과 시간의 소비는 철저히 ‘아이들’과 맞춰진 일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나쁘다는 게 절대 아니다. (절대~)  사실 우리 부부는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들을 ‘즐기고’ 있으니깐, 정말 불행 중 다행이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모든 육아의 시간이 ‘지옥’이었던 게 사실이었으니깐.   


그 시간도 지나가 그냥 즐겨
쌍둥이니깐 두 배는 행복하겠어


사실 과거에 나는 이 말을 제일 증오했고 믿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 밉긴 하다 ㅎㅎ)


그땐 속으로 생각했었다.   


당신들이 아들 쌍둥이 한번 낳아봐. 낳아서 길러봐.
그 신생아 들을 젖 물리고 기저귀 갈아봐
새벽에 1시간에 1번씩 번갈아 깨니깐, 결국 24시간 동안 내내 뜬 눈으로 지새우는 시간을 반년 이상을 지내봐. 그러고도 할 수 있음 말해줘 봐.

저따위 위로 1도도 되지 않는 말 뿐인 겉치레 대신, 차라리 말없이 빵을 사주는 편이 낫다.
당 보충하고 그만 좀 울라고...!  


 알고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아마 신랑도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걸 알고 있었다. 나는 24시간 붙어 있었고, 좋아하는 모든 걸 포기했고, 내가 나이기 이전에 그냥 아이 키우는 기계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기에 그 모든 분노와 짜증을, 잠시 주말부부였던 신랑에게 모든 걸 쏟아부어냈었다. 그래서 힘들었다는 것도 사실 안다.


 오히려 신랑은 주말에 아이들 보러 와 주고 뜬 눈으로 역시 그렇게 잠 못 자고 아이 돌보면서 동시에 ‘마누라의 신경질’까지도 온전히 감당해 내야 했으니.   


 뒤늦은 고백에 알게 되었지만, 사실 신랑에겐 ‘월요일’이 천국이었다고. 주말에 아이들을 보고 분당으로 올라가서 월요일 출근길에, 아침밥을 먹으며 회사일 하는 것이 (몸도 마음도) 물리적으로는 편했다고 한다 (마음이 불편해서 탈이지)   


 다둥이 육아의 힘듦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사실 그 시간들도 꾸역꾸역 어찌어찌 우당탕탕 하다 보니 지나갔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니 작년 이맘때 난 참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것을 미련스럽게도 이제야 조금씩 느끼고 말이다.


 그만큼 내가 덜 되 먹은 엄마였고, 아직 부족한 인간이라는 증거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잠시 버럭 했던 지난 주말, 일요일. 나는 월요일 아침이 된 오늘, 쌍둥이들의 오전 등원 시간에 아빠와 (나의 신랑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너졌었다.   


또르르....무슨 말이 필요 있심둥. 본인들 타고 다니시근 유모차를 질질 끌고 가시다뇨. 성은이 망극하나니!
아…. 정말 많이 자랐네…. 이렇게 튼튼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데….
그 어린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태어난 지 불과 일 년도 안된 아기들 앞에서 왜 그때 질질 짰는지…. ‘   


 일하는 엄마 아빠를 둔 나의 아이 '둘'의 평일도, 순탄친 않을 것이다.

 그 '둘'에게도 어린이집은 마치 ‘회사’와 같은 공간일지 모른다. 출퇴근하는 것 마냥 둘은 나란히 등 하원을 한다.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칼 퇴근을 마치고 달려가도 6시에 도착하는 엄마 탓에,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제일 꼴찌로 하는 건 언제나 나의 둥이들 차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니하고 있는 건 따지고 보면 사실 정말 별 게 없다. 

 평일, 항상 오후 6시 어린이집에서 픽업을 시작하며 20분 동안 집으로 약 30kg 이 되는 유모차를 끌며 이것저것 오늘의 일과들을 둥이들에게 쉼 없이 떠들어 댄다.


 사랑해라는 고백은 수십 번 해도 모자란다. 그렇게 집으로 도착하고 저녁 6시 20분부터 저녁 8시까지, 씻기고 먹이고 재우면서도 아이들에게 최대한 지친 내색 하지 않고 눈을 맞추며 아이들과의 스킨십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집안일을 (예컨대 도시락 통을 씻고 아이들을 씻기고 난 이후의 화장실 잔재들을 처리하고 등등) 틈틈이 해내면서도 동요를 불러준다.   


 뒤에서 빽 소리 가도 나서 뒤를 돌아보면 쌍둥이들은 둘이서 티격태격하다가 한 명이 쪼르르 울면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엉엉 울어댄다. 고무장갑을 낀 손은 어느새 아이를 그렇게 뒤로 업고 설거지를 하고 나머지 한 명이 잘 놀고 있나를 주시한다.

뒤에도 눈이 달린 쌍둥이 엄마의 숙련된 멀티태스킹은
이젠 내겐 참 익숙한 ‘특기’가 되어 버렸다.   


 10시간을 집이 아닌 공간에서 버텨주고 있는 우리 쌍둥이들이 정말 하루가 다르게 부쩍 자라주고 있다.

 오늘 아침에 신랑이 보내준 몇 장의 사진들을 보면서 그간 많은 스쳐 지나간 과거의 시간들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 마음이 쓰렸고 아팠고, 두근거리고, 아직도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그렁그렁 터질 것 같이 흘러내리려고 한다. 아직 퇴근을 해서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 4시간이 남았으니 난 절대 이 눈물을 참아야 한다!   


 '상선약수'이고 싶다. 

 시간은 흘러간다. 상선약수라고 했던가. 물 흐르듯 사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요즘이다. 흘러가는 마음도 흐르는 시간에 따라 그저 담담히 지내보면 될 일이다. 육아도 일도, 개인의 시간도, 둘의 시간도, 가족의 시간도 모두 그렇게 흘러가 보고 있다.


 오늘이 흐르는 내일은 팀 회식이고 수요일은 정말 사랑하는 모임인 사내 독서모임에서 서점에 간다고 한다. 하... 먹고 마시는 모임이었다면 눈에도 귀에도 마음에도 들어오지 않았으렷다. 그러나 수요일의 저녁은 다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꿈만 같은 것이 되기도 하는 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 현실의 단편이다.


 가령 평일 저녁 서점'이라는, 쌍둥이 워킹맘인 내게는 꿈만 같은 시간일 거라 개인적으로는 꽤 벅차오를 것 같은 (상상만 해도) 수요일 저녁이 되리라. 그러나 평일 5일 중 이틀이나, 아이들을 데리러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상한 미안함과 묘한 죄책감이 쓰나미 일듯 마음에서 밀려온다. 그럼에도 이미 머릿속은 서점에 가 있을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이기적인 엄마던가.   


 그럼에도 믿는다. 

 그럼에도 말이다. 아이들은 이미 나의 손을 벗어나서 다른 공간, 다른 이들과의 만남을 여전히 지속해 나갈 것이고, 믿는 그 힘만큼, 강하게, 아름답게, 씩씩하게 자라줄 거라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물원 구경갔을 때, 너희들과 함께 바라본 이 조각상, 기억이나 할까....또르르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렇게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할 줄 알고, 또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면서도 하고 싶은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씩 천천히 해 나가는 엄마를 이해해줄 것이라고. 그래야 아이들이 자라서도 '우리 엄마는 늙어서도 외롭지 않게 지금의 라이프를 즐기고 있구나'라고 이야기해줄 것도 같고....


 물론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그때의 그것들을'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모유를 물릴 수 있을 때의 나는, 잠이든 밥이든 다 제쳐두고 아이들을 위해 24시간 언제든 쭈쭈를 물릴 준비를 당연하게 하고 있었다. 그건 그때만 할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의 시간들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그것들'을 당시 최선을 다해서 잡생각 없이 그저 'just do it'의 최대 몰입과 실천을 행했던 시간들. 돌이켜 보면 최고의 채산성과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 일도 사랑도 이렇게 하면 BEST 겠거늘! ㅎㅎ)


 여담이 길었지만, 어쨌든 오늘의 교훈.

 덜 후회하며, 더 사랑하고 싶다.


 조금씩 천천히, 시간이 흘러가는 만큼, 우리 쌍둥이들이 내게 주는 감동과 사랑도 함께 쌓아지겠지. 그러니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유일하고 최선의 것들을 해내 보려 한다.   


 있는 힘껏 사랑하기, 있는 힘껏 안아주기, 그리고 매일 매 순간 눈이 마주하는 그 시간에 고백하기 말이다. 이제는 쌍둥이들의 엄마가 된 내가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 매일 다이어리에 쓰고 또 이곳저곳 붙여져 있는 부적 같은 주문을, 나는 오늘도 믿고, 흘러가는 시간들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모든 건 생각대로 결국엔 나에게로 잘 될 우리. 사랑해 나의 당신, 그리고 너희 둘……’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오늘은 자기반성 듬뿍 담긴 지극히 개인적인 '엄마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부끄러운 글 읽어 주시는 '당신'께도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오늘 보내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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