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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03. 2019

오늘을 편집할 수 있다면

굿바이, 편집장 

맞닥뜨린 문제마다 주인 의식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편집을 책임지는 편집장이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찍는 새로운 점 하나로 지구별은 멋지게 돌아간다. 


- 굿바이, 편집장 - 





10년 전, 신입 1년 차, '유혹하는 에디터'를 만났었다. 

그 시절은 숱한 고배를 맞보던 때, 왕복 4시간이라는 출퇴근 속에서 책을 찢어가면서까지 이를 바득바득 물었던 한때, 조바심이 가득했고 증오도 많았던, 한편으로는 그만큼 스스로에게 애를 써야 살아지는 시기였다. (생각해보면 애를 쓰지 않았던 해는 없었던 듯싶지만) 신문기자 출신의 저자가 쓴 신간 소개를 자투리 신문 어딘가에서 보고 샀으리라. 



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한겨레출판, 2019.11.15.



그의 책을 읽으면서 어떤 알 수 없는 자기 계발(?) 적인 감동과 영감이 들곤 했는데. 

그랬었다. 그때는.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책을 다시 읽었다. 감회가 새로웠고 그 10년 전의 '나'의 모습이 떠올라서 피식 웃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원고 앞에서 기를 쓰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고, 그의 책도 역시... 변함없이 나를 자극하고 만다. 그가 말했던 '기적' 과도 같은 순간은 이렇듯 불현듯이 찾아오는 것처럼. 




기적이다. 이 책을 탈고한 것은 기적, 이라고 나를 위로해본다. (중략) 

아마도 이번 생에 이 책의 탄생은 불가능하리라 여겼다. 지금 서문을 쓰고 있다니, 기적이다. 


매체를 만들며 가슴을 졸이고 비탄에 빠졌던 고비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일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다니기도 했다. 느닷없는 일을 자주 맡았고, 그 일은 종종 늪에 빠졌다. 본의 아니게, 또는 본의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낙관적인 마인드로 버티며 이겨 나갔다. 늪에서 빠져나올 때마다 탈진했지만 무언가 남았다. 변화가 주는 감동과 경탄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시도조차 때로는 숨을 참고 견뎌야 이루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나날이었다. 그런 날들이 모여 이 책을 만들었다. 




시간이 모이고 모여서 '책' 이 되는 거라면, 되도록 좋은 책은 그 시간의 깊이, 이야기의 깊이가 있는 책이 진짜 책이겠다...



한겨레 토요판에 대한 에피소드부터 기사 기획에 관한 관점과 방법론. 

기획물들의 역사는 물론이고 편집장으로서의 기획 거리들이라든지 그가 만났었던 편집장이라는 타이틀 안의 사람들과 아울러 그 역할을 지내면서 있었던 사람 사건 사이들의 후일담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감히 450페이지 정도의 단행본 한 권 안에 그 몇십 년의 서사를 압축하기란 가히 쉽지 않은 작업이셨을 테지만, 역시나 저자의 깊이와 통찰력은 결국 그가 말했던 '편집장의 에세이' 안에서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내가 신봉한 것은 재미와 새로움이었다. 편집장으로서 나는 늘 재미를 강조했고, 무엇인가 처음 해보려고 했다. 뜻밖의 이야기를 사랑했다. '예측불허'는 내가 가장 아끼는 사자성어다. 그 가치는 분야를 초월한다고 본다. 매체의 결정권을 쥔 수많은 이들이 종이를 넘어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재미있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힘으로 세상을 움직여 나갔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저널리즘이다. 


한겨레 토요판은 기존의 한국 언론 시장에 없던 '이상한 놈'이었다. '이상해서 못 봐주겠다'라는 천대를 받지는 않을까 두려웠는데, 오히려 분에 넘치게 환대를 받았다. '고유의 DNA를 창조했다'라는 말은 그중 최고의 상찬이었다. 




어딘지 '다른' 문장들이라고 느껴졌던 것마저도 결국 글을 쓰는 이가 가진 충분한 매력 때문이리라. 

재미와 깊이가 잘 버무려져서 있었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통찰과 '영감' 마저도 전해주는... 정말 그 다운 문장에 다시 한번 고개가 절로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저널리즘을 대하는 바른 자세, 새로움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혁신과 그 안에서의 깊은 고뇌,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논조의 다룸....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책이란 이래야 하는 것이라는 오지랖 어린 찬양마저도 덧붙이기 손색없는 책이다. 아울러 미디어와 글, 사람에 대한 생각마저도 하게 만드시는지라, '굿바이, 편집장'을 외치기에는 정말이지 아쉬운 건 나만의 생각인 걸까. 




편집장이란 무엇인가. 콘텐츠 리더다. 매체의 논조와 성격과 위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과연 그런가? 상식적인 가설일 뿐이다. (중략) 편집장은 골치 아픈 일이다. '책임' 때문이다. 매체를 어떻게 꾸밀지 책임을 져야 한다. 기자들을 책임져 돌보고 (?) 관리해야 한다. 잡무도 많다. 그늘이 있으면 빛도 있다. 자신의 뜻을 펼쳐갈 여지가 있다. 자신의 구상대로, 의지대로 매체를 움직일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이다. 




문장 하나로 죽고 또 살리게 되는 현실들.. 미디어는 그래서 대단하다. 저널리즘은 절대 쉽게, 아무나 뛰어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중은 선동된다. 

그렇다고 믿고 살았고 그 믿음엔 큰 변화는 없다. 괴벨스가 그랬다지. 어떤 문장이든 단 하나만 자신에게 가지고 오라고. 대중 선동의 심리학으로 유명한 그의 논리에 나는 묘한 설득을 받았고, 반대로 깊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결국 미디어에 조작되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도 모자랄 판에, 휘둘리기 쉬운 이 세상에서 어찌 살아남아야 하는 건지...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물론 그 혼란도 오래가지 않아 결국 일상의 루틴 함 속에 묻히고 말지만 

결국 그 혼동의 도가니 속에서도 일종의 해독제 역할을 하는 것 또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대중에 속하는 개개인 말이다. 문득 '대중'에 대한 생각,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사람'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큰 의미를 두고자 했던 그의 근사한 접근과 멋진 관점 때문이리라. 




왜 사람인가. 맨 앞에 썼듯이, 사람이야말로 뉴스이기 때문이다. 그냥 뉴스가 아니라 가장 생동감 있는 뉴스이기 때문이다. 뉴스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를 둘러싼 사건을 '보고서'가 아닌 '이야기'의 틀로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서사다. 영어로는 '내러티브(narrative)'라고 한다. 나는 '서사'라는 말의 감촉을 더 좋아한다. 서사는 1면을 넘어 토요판 전체를 꿰뚫는 핵심 단어였다. 물론 사람은 불완전하다. 기억력도 엉성하다. 거짓말도 한다. 인터뷰 땐 맹신을 경계하며 인터뷰이와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사람을 취재하되 사람만 취재하면 안 되는 이유다. 




사람들. 결국 그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변하고 또 나아간다. 퇴보를 하다가도 휘둘리더라도, 변화는 일어난다. 어떤 식으로든.



'읽을거리'를 '성찰 거리'로 만드는 책 

어딘지 모르게 위로와 용기마저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문장들 속에서 세상에 이런 사람도 '여전히'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는 또 다른 숨겨진 목소리가 내 귀에 닿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게 '이상해' 보일지언정, 그 스스로의 신선한 생각에 계속해서 열려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이왕 생존한다면 자신의 이상함 마저도 지키면서(?) 생존하는 이들이 조금 더 스스로 만족도 높은 삶을 사는 게 아닌 걸까 싶었고 그 생각에 어딘지 모를 동조를 해주는 이 같아서... 




익숙함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변화는 어색함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어색함을 견디고 포용하는 열린 자세가 혁신을 부른다. 


기획이란 본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쓰다가 푸하하 웃는다. 본능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다. 닭살이 돋는다. 그러나, 사실이다. 아이디어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정해진 일만 하는 수동적 존재를 넘어 좀 더 주체적인 자기를 증명하려면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는 기획의 결정적인 한 부분이다. 미디어 기획 분야만 그런 게 아니다. 작은 구멍가게를 해도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가 있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 종사자든 아니든,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본능적 아이디어는 생존의 필수 요소다. 




오늘도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며 나의 글을 써 내려가려 할 때 

나는 어떤 알 수 없는  '영감'에 기대어 손가락을 움직이곤 한다. 단어가 생각나고 그 단어의 끝을 따라서 문장을 만들어 간다. 내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나 '이야기'는 사실 거의 책 안에서 찾는 요 몇 년의 시간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면에서 '그'가 몹시 부러워진다. 책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현실이라는 삶 속에서 힌트와 통찰력을 주는 숱한 인터뷰이를 만나셨던 건 아닐까, 그랬기에 지금의 그가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어서. 어딘가로 '도전' 하거나 '뛰어들게' 만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가만의 혁신이 있었겠노라고... 




당신의 운명적 영감자는 누구인가. 그렇게 묻는다면 즉답을 머뭇거릴 듯하다. 글쎄, 나에게 그런 영감자가 있었나. '운명'이라는 거대한 수사에 부담을 느끼며 몇 명을 떠올려본다. 고마운 영감자는 많았다. 순간순간 여러 사람들에게 받았던 영감이 쌓이고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 영감자란 내 삶과 일에 힌트와 자극과 통찰을 주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 보게 하고 깨트려주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늘 깨어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해주는 사람이다. 나를 어디론가에 뛰어들게 하는 사람이다. 



세상은 진화한다. 새로운 문제의식과 실천력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다. 낡은 것을 두드려 부수고, 온건한 방법으로 손질하고, 또는 그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속삭여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뜻밖의 물건, 뜻밖의 가치로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가슴을 적셔주는 이들 덕분이다. 현실의 부조리에 관해 비판을 하거나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는 미디어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른다. 익숙함과 새로움을 반복해내며... 아니 어쩌면 변하지 않은 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익숙함과 새로움일지도 모를 테다.


'오늘'이라는 내 인생을 이렇게 책을 통한 문장들로 잠시 동안이나마 '편집' 해 보는 이 순간. 

11월의 책들을 언제 정리할까, 12월의 책들은, 그리고 어떤 이야기들을 또 쓰지 않고 못 배기게 만드는 시간과 만나게 될까를 잠시 생각해본다. 결국 '자기 인생의 편집을 책임지는 편집장' 으로서의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와 다시 이렇게 조우하고 마는 순간, 나도 새로운 점 하나를 찍으려 한다. 



'안녕'이라는 점 하나를. 

12월,  '안녕'이라는 인사말이 시작과 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단어라면, 그 안녕이 오늘은 조금 더 가볍고도 상쾌한 느낌이기를... 그렇게 근사한 안녕들의 연속이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게 12월은 시작되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편집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안녕'이라는 인사와 함께 부디 잘 편집하는 시간들을 가지려 한다. 



안녕, 12월. 잘 부탁합니다... 



좋은 책과 만나는 시간, 그로 인해 기록들을 남겨보고 싶은 시간들이 결국 오늘의 나, 내일의 나를 만드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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