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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19. 2019

소크라테스의 말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비겁함을 피하는 것입니다. 

비겁함은 죽음보다 더 빨리 달려오기 때문이지요.


-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 





스스로 변명을 해대기 시작했다. 

'왜 하필 또 나에게'라는 식의 구질구질한 자기 합리화가 시작된 탓이겠다. 떠오르는 아이디어, 사업 구상과 기획, 작은 실천들의 연속을 해내려는 과정에서 자꾸만 현실적으로 의도치 않게 해내야 하는 '역할극' 덕분에 (때문에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으려는 어떤 노력마저도 부질없어 보이 다마) 나는 계속해서 부정의 구렁텅이로 은연중에 나를 몰고 가려했다는 걸, 나도 모르게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또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도대체 왜 또. 



그때 꺼내 드는 책들은 보통 영성 혹은 철학서들이다. 

11월의 책 들이나 12월의 중순, 이 시기에 다이어리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책들의 장르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나 '철학 학교'와 같은 것들로 도망치면서도 어디지 이런 책들의 명문을 읽고 있노라면, 소리 내서 읽을 정도로 나는 어떤 의지라는 걸 해내고 있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플라톤, 현대 지성, 2019.11.15.



의지가 되는 말들, 힘이 되는 말들이었기 때문이리라.

 '변명'이라는 제목을 달기에는 어딘지 너무 감사한 변명들로 들리지만.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의 아테네 인들을 향한 지혜의 정수로 가득한 '변명'의 목소리를 읽어내리는 동안 이상하게도 편안해지는 거다. 왜였을까...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의 엄청난 초연함... 초탈한 이들에게 느껴지는 어떤 내실 깊은 단단함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절로 입술 밖으로 같이 따라 읽어낼 정도였다는 건 반대로 아주 조금만이라도 이 마음의 견고함을, 생각의 흔들림 없음을 따라라도 하고 싶었던.... 더 약해지기 십상인 요즘의 내가 나를 지키려는 최소한의 발악질 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내가 철학을 하며 나 자신과 사람들을 면밀하게 탐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신께서 정해주셨다고 생각해서, 나는 그것을 천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죽음이나 그 밖의 다른 것이 두려워서 신께서 정해주신 천직을 버리고 이탈해버린다면, 그것은 정말 두렵고 끔찍한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죽음이 두려워 신탁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누군가가 그런 나를, 신들을 믿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지혜를 뽐내는 자라고 고발하여 법정에 세운다면, 그것은 지극히 옳은 일이 될 것입니다. 



어두운 때일수록 읽는 게 나은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있다. 도망치듯 읽어도 역설적으로 어둠이 가시는 그런 시간들..




지혜로움의 정수, 그저 말이 필요 없이 문구들을 읽고 있노라면 알 수 있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는 바로 이런 내실 깊은 신실한 믿음과 소신 발언들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소크라테스의 변명 한 권을 통독하는 것이 토익책 한번 자격증 책 한 권 읽는 것보다 천 번은 더 낫다고 믿는 편이나 이런 나는 이상주의자에 불과한 걸까.... 모르겠다 요즘은. 왜 이런 책들이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지. 정말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들은 이미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주객전도' 된 것이라고, 바보 같은 생각이 계속해서 앞설 뿐..이다.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지혜로운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지혜롭지 않으며, 무엇을 아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복 중에서 죽음이 최고의 복일 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 최악의 재앙임이 확실한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아테네 사람들이여,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비겁함을 피하는 것입니다. 비겁함은 죽음보다 더 빨리 달려오기 때문이지요. 나는 나이가 많아 둔하고 느려서 이 둘 중에서 더 느리게 달려오는 죽음에게 이제야 붙잡혔지만, 나를 고발한 자들은 영리하고 재빨랐기에 더 빠르게 달려온 사악함에 이미 붙잡혀버렸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사형을 선고받고 떠나지만, 그들은 진리에 의해 사악함과 불의함이라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가끔 엄마는 내게 철학 책 읽기를 중단하라고 강력한 의견을 피력하셨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미쳐버릴 것이라고, 금서 취급하던 그녀의 변명은 그런 것이었다. 살면서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장르의 양서를 계속해서 꾸준히 '진짜 어른'이라면 읽어 마땅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여전히도 떨치지 못한다. '그런 책들' 이야말로 어떻게 살 것인가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최소한의 도리와, 삶을 대하는 바른 마음과 자세를 부여해 주기에. '그런 책들'을 그래서 꾸준히 읽고 자신의 사유와 세계에 대해서,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에 대한 생각을 하는 '어른' 은 진짜 어른이라고 믿고 있기에. 사유할 수 있는 어른이 (주체적인 생각이라는 것 또한 할 수 있는 어른이)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반대로 그 남을 챙길 줄도 아는 깨끗한 마음의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아서.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것처럼,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에도 예외가 있다네. 


어떤 사람에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데도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런 말을 자네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리고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은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들이 스스로 죽는 것은 옳지 못하고, 그들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줄 자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자네에게는 이상하다 싶은 일일 걸세. 




엄마는 모르십니다. 도서관에서 있었던 때가 집에서보다 편했다는 것. 그냥 그랬어요. 책이 가족 같았습니다. 때로 아주 가끔은.



영혼이 탁해지던 때 철학을 찾는 이유는 그런 이유들에서일게다. 

깊은 생각, 그로 인한 깨달음, 소신, 신념, 열망.... 그런 것들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만들어 주니. 한 해의 마무리에 다다르고 있는 이 시간, 이 정수 같은 책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만큼은 끝까지 지켜내겠노라고. 고작 24시간 중 단 1시간의 연속적인 읽기가 불과한 현재 속에서도, 나는 끝까지... 지켜내 본다. 그렇게 읽는 모험 속에 빠져서 생각의 바다를 거쳐서 오늘이라는 현재를 다시 부드럽게 유영해볼 자신을 얻는다.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한다는 것은 영혼을 가능한 한 최대로 몸에서 분리해서, 모든 면에서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기 자신 속으로 깊이 들어가 침잠하게 하여, 지금이나 나중에나, 말하자면 몸의 족쇄로부터 벗어나서 오로지 홀로 있는 데 익숙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험을 해보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는 뜻이지.

그런 모험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니까. 

아울러, 우리는 그런 것을 자신에게 주문처럼 들려주어야 마땅하네. 

내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 




참된 것들에 대한 지식과 진정한 지혜의 모음집.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그에게 선물해도 아마 읽지 않을 (시간조차 허락되기 쉽지 않은 요즘이겠지만) 사람이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편지를 써 볼 생각이다. 그렇다면 단 한 장이라도 펼쳐 들기를 바라며. 좋은 책 한 권을 건네는 누군가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12월이 지나가고 있다... 



시간은 흐른다.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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