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Dec 23. 2019

독립적이기 쉽지 않은 시대에 대하여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주어진 인생 말고 스스로 만드는 인생을 살기로 했다. 


-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 






책을 다 덮은 이후 무슨 문장으로 서평을 남길 수 있을까 

잠시 하얀 백지 위에서 고민을 했다. 키보드를 올려놓은 손과, 깜빡이는 커서만이 나를 기다리는 듯 모니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듯했지만 사실은 이미 온 정신과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기에 (요즘 삶이 이러하다. 뭐 하나에 집중함이 상당히 쉽지 않다) 5분이 지났을까. 한 문장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문장을 제목 삼아서 나는 이 책의 '서평' 핑계를 대면서 나의 이야기를 잠시 고백해보려 한다. 아주 단편적인 부분들의 고백이겠지만. 



독립적이고 싶지만 독립적이기 쉽지 않은 시대다.

시대 탓을 해 본다. 그러다가 이 문장이 앞선다. '시대는 개뿔'.  그저 이 생각이 더욱 선명한 문장으로 내면 위에서 솟구친다. 시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시간과 함께 흐를 뿐. 독립적이지 못할 수밖에 없는 건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인간'으로 살아가기 때문 아닐까. 혼자서'만' 잘 살 수 있다면야 굳이 관계를 맺고 살아갈 이유가 뭐 있나? SNS는 왜 하는가? 관계를 맺고 지내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철저히 개인 홀로 생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사회 속 구성원으로서 노동이라는 것 또한 혼자 하여 생계유지가 가능하다면) 태생적으로 혼자서 태어난 이가 세상에 있을까? 하다못해 '엄마'라는 존재가 있어야 '탄생' 이 가능한 게 바로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탄생'의 비밀 아니던가. (엉뚱한 생각들이 물밀듯이...) 




가족을 선택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 가족이 하물며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환경 속에서 태어난 것도, 유지하는 것도 내 '탓' 은 아니라 하지만 반대로 그 환경과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했다는 것에 대한 일정 부분의 '책임'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생각을 골똘히 해 본다. 가족 구성원으로 이 감사한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그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 상의 '책임'이라는 것. 아울러... 반대로 조금 더 부정보다는 '긍정' 하려는 '가족'을 향한 어떤 애틋한 애씀들에 대하여.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 강수하, 원더박스, 2019.12.06.



사실 이 책의 제목부터가 '아주'라는 부사가 이상하게 거슬렸다. 

'아주' 독립적이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사실 아주 독립적인 성향이어서 이렇게 삶이 고통스럽다고 '변명'이라는 걸 해대기 시작한 '나' 때문에. 나는 나를 알면 알수록 그 독립성이라는 것이 진짜 독립성인지를 의심하곤 한다. 경제적 독립은 내게 가장 중요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어른은 진짜 어른이 아닌 것 같아 보였으니까... (그래서 하루 10분 엄마의 돈 공부와 같은, 잘 팔리지 않은 책도 출간할 수 있었던... 걸까) 



혼자서 살지 못하는 시대 같기도 하나 (관계의 파도 속..) 그 다수들 속에서 개인을 지켜내기 위한 의미에서의 독립은.. 옳다.




책 속 '강수하'라는 이름의 화자는 사유를 함에 분명 '독립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면에서 상당한 유약함을 타고나신 건 아닐까 싶었다. 아울러 행동이 독립적이고 싶어도 사실 처해진 환경 속에서는 절대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없을 터. (왠지 그래.. 보였다. 나 또한 일을 하는 기혼 제도에 입성된 여성이기에) 표현이 굉장히 서툴지만... 뭐랄까. 이 작가님의 세상과 '관계' 들의 모순 속에서 느껴지는 '분노'라든지 '어이없음'이라든지 그 감정들을 '글'로 승화시키셨을 터. 내가 그랬고 여전히 그러하기에. 아주 조금은... 그녀가 왜 분노하고 왜 독립적이며 왜 '결혼제도'에 대한 글루미 한 생각을 떨구어내지 못하는지를 아주 조금은 처절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결혼하지 않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 있는 선택지는 뭐야?”


명절에 남의 집 부엌에서 자아가 상실되는 슬픔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결혼을 하기로 합의를 봤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청혼을 철회하고 더 이상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설사 나를 위한 결정이라 해도 마음이 아플 것이다. 나는 나의 자아를 붙잡아 줄 남자와 결혼을 하면 되고, 그러고 싶어서 너와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전략을 짜 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결혼 후 우리의 명절이 어떠한 형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 예측 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구구절절 문장들을 쓰다가 모두 '백스페이스'를 눌러버렸다. 

대신에 책갈피 한 문장들을 가만 읽다가 잠시 어떤 생각에 빠져든다. 여성으로서 일을 한다는 것, 아울러 양육자의 참된 도리에 대해서. 딩크가 점점 더 많아지는 시대의 모순에 대해서. 그 선택을 하지 못한 이들의 행복에 대해서. 젠더 구분 없이 '가족' 이 '가족'을 대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들에 대하여. 말미에는 '개개 인성'에 대한 '평균의 종말'을 우리가 누차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행위로 움직여지지 않는 어떤 '시대의 모순' 들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때론 불안정하고, 공들여 키운 모범생 같지만 한편으론 싼값에 함부로 내놓은 매물 같기도 한 그런 이상한 것이 더 이상 아니다. 내 삶이 결혼 전과 비교했을 때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그냥 내가 날 그렇게 정체화하게 되었다. 누가 그것이 좋은지 싫은지 묻는다면, 글쎄, 잘은 몰라도 싫지는 않다. 




작가와 달리 결혼이라는 것은, 이전과 이후에 적잖은 변화가 생기는 걸 나는 처절히 인정했다. 시간이 좀 많이 걸렸지만...



그녀의 문장이 어떤 마음에서 탄생된 것인지 

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차오르는 나의 감정 또한 '글'이라는 것을 통해 (감사하게도 이번 생엔 이 도구를 잘 활용해 보련다) 어떤 새로운 '시작'을 생각해 보았다. 글로 조금 더 내면에서 충돌하는 이 고통을, 신선(?) 하고도 역동적으로 그려내어..... 그로 인해 조금은 더 '마음 챙김' 이 가능하며 오늘을 '긍정' 할 수 있는 힘을 길어 오를 수만 있다면. 



나 또한 쓰려한다. 조금 더 열심히. 

그 마음만... 앞설 뿐. '아주 독립적인 여자' 인지는 사실 스스로 부끄러워서 말은 못 하겠고, 다만 사유를 기록으로 남기는 '자유로움' 은 여전히 손에 쥐고 마음에 간직한 채, 또렷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문장들을 그렇게 세상 밖으로 꺼내볼 요량...이다. 조금은 더 어른스럽게, 나뿐 아닌 '남'을 생각하는 시선을 잃지 않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기회의 시그널을 포착하는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