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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24. 2019

연결의 세상, 관계의 과학

관계의 과학 

내 얘기를 들은 사람은 또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줄 수도 있다. 

이러한 타인과의 소통의 과정을 통해, 나의 이해를 더 깊게 할 수도, 연구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도 있다. 


- 관계의 과학 - 






일이든 공부든, 정말이지 뭔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좋아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웃고 있다. 때로 힘들지만 그 때로의 힘듦 마저도 즐길 줄 아는 것 같다. '호연지기' 라 했던가. 흔들리지 않은 어떤 신념이 있어 보인다. 한때, 대학원생이었던 동생의 박사 과정과 교수 임용 이후에도 논문을 쓰고 학생분들과 연구를 하고 장비 하나를 새로 들여왔다면서 뛸 듯이 기뻐했던 그의 곁을 간간이 지켜보면서. 어딘지 모를 부러움을 내심 느꼈다. '관계의 과학'에서 마주하던 물리학자인 작가님도 그런 마음의 소유자라는 건, 초반 문장에서 '행복'이라는 것을 거론하셨을 때부터 알아챌 수 있었다. 부러웠고, 그래서 존경스러운 경외심마저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그냥 좋아서 해낼 수 있는, 움직이는 그 용기 때문에. 




나는 행복한 물리학자다. 내가 했던 연구 중 많은 것들은 '그냥, 궁금해서' 한 연구들이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연구가 길게 이어지다, 처음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처음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때 느끼는 지적인 쾌감은 정말 짜릿하다. 몇 번 경험해서 중독되고 나면, 이제 여기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다음 호기심 사냥이 다시 시작된다. 세상에 재밌고 궁금한 것은 또 왜 이리 많은지. 




관계의 과학, 김범준, 동아시아, 2019.12.10.



수포자였던 나는 사실 물리라든지 과학과 같은 영역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다양한 책에 관심을 들이고 특히나 '문송'인 나에게 늘 불편한 책은 '과학' 관련 분야였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야말로 최고의 지적 탐구력을 증진시켜준다고 했던가. '코스모스'라든지 '사피엔스'와 같은 힘든 책들을 완주하는 시간들은, 꽤나 지루한 경험이지만 반면에 생각하는 힘을 넌지시 건네준다. 정답을 찾기보다는 그저 지적 희열 그 자체를 희미하게나마 던져주기도 했는데  '관계의 과학' 도 다르진 않았다. 다만 두꺼운 여타 과학서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최고의 특장점이라면 그야말로 너무나도 친절한 문장들 속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로웠고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았기에.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는 것이 정치권의 일상이었던 과거가 우리 사회에 있었다. 온갖 거짓 뉴스가 확대 재생산되며 적절한 비판의 과정 없이 우리 사회를 휩쓰는 것을 여전히 목격하고는 한다. 깨어 있는 개개인의 합리적 이성과, 이들의 열린 소통의 과정이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하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과학 활동에서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 계급장 뗀 치열한 토론과 열린 소통의 방식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진다면,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사회를 더 앞당길 수도 있겠다는 바람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과학 활동이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인문학적 태도를 굳건히 가지는 과학도의 이야기가 어딘지 모르게 경이로울 만큼, 아름... 답다. 문장들 하나하나.



이 책은 과학서라기보다는 과학이라는 분야를 탐구하고 지적 희열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누군가의 에세이인 것만 같아서 그 자체로 좋았다. 벡터나 허브, 창발이나 프랙털, 암흑물질이라든지 중력파, 버스트나 지수 함수, 비선형과 시간과 같은 단어만 나열했을 때 아리송한 키워드들을 일종의 하나의 친근한 문장 및 소주제로 나눠서 상냥한 설명과 세상을 향한 작가만의 해석이 덧붙여진다. '우정의 측정 가능성'이라든가 (우성의 개수를 측정한다는 발상을 해내시다니!) '개미들에게 배워야 한다'라는 말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나무가 산다'라든지 '지성이 만든 지성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의외(?)로 술술 읽혔던 건 이런 인문학적 사고가 과학이라는 지식과 아주 절묘하게 섞여 녹아들어 있는 상냥함 때문일지 모르겠다. 




명백한 거짓인데도 그 안에 담긴 얘기가 따뜻한, 다른 유형의 비과학 질문도 있다. 매일 정겨운 아침 인사를 건네며 키우면 채소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얘기, '사랑'이라고 적은 물통 안에 물을 담으면 물 분자의 형태가 예뻐져 건강에도 좋은 얘기 같은 거다. 이런 얘기를 많은 이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감동적이기도 하다. 지구 위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생명과 물질이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멋진 메시지가 담겨 있다. 


물리학의 양자역학에는 크기가 중요하지 않고 방향만 중요한 경우가 정말로 있다. 양자 상태의 수학적 표현이 정확히 이렇다. 이런 양을 물리학에서는 '빛살이라고 부른다. 인생은 빛살이다. 가 물리학적으로는 짧고도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운'과 '타이밍'에 관한 짧은 문단이었다. 

어째서 이 문단에서 잠시 읽다가 골몰히 어떤 생각을 멈추느라 한참을 애먹었을까 싶다만...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쩌면 타이밍인 걸까, 혹은 일을 시작하는 것,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도 어쩌면 다 운명이라는 굴레 안에서 어제의 내가 오늘의 선택들로 인해 만들어 내게 된 연결의 '천운' 아닐까 싶기도 해서.... 그냥 그랬다. 나의 운과 타이밍을 조금 더 믿어보고 싶은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모든 게 다 때가 있다. 떼가 되었다고 일이 되는 것은 또 아니다. 다 운 때가 맞아야 한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목표를 이루지 못한 친구를 위로할 때 우리가 하는 애기다. '운 때' '의 '운' 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막상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야 말할 수 있어서, 과학자 사회에서 '운' 은 일종의 금기어다. 



세상은 '연결' 되어 있는 것만 같다. 분자와 분자 사이, 공기와 공기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물리학의 눈으로 본 세상은 분명 아름답다. 

모든 관계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세상 속 이야기, 그래서 친근했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도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고 순수한 지적 탐구를 계속해서 수행하며 일반인들에게 표현하려는 뜨거운 나름의 열정을 마음에 품고 계시는 이 '작가님' 은... 책 속에서 거론한 '차은우'를 닮았다는 자신의 호언장담이 어찌나 귀엽게 느껴지던지



연구를 통해 무언가를 알아내면, 다른 이에게 알리고 싶어 진다. 내 얘기를 들은 사람은 또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줄 수도 있다. 이러한 타인과의 소통의 과정을 통해, 나의 이해를 더 깊게 할 수도, 연구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도 있다. 



 책과 글을 애정 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차은우 님보다도 이 작가님이 더 '잘생겨' 보이기까지 한다. 원래 매력이라는 것은 겉모습 3초가 아니라 그 이후의 발언들과 생각 3분이면 진짜 매력이 나오는 것이기에. 이 분의 연구가 계속해서 '연결' 되어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 주실지 벌써부터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생각해보면 과학도 '예술'의 영역인 것 같기도 하다. 파고 들 수록, 형태라든지 이야기라든지, 사실이라든지.. 다른 듯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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