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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16. 2020

경제학 속 명언들

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경제학 

돈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가면을 벗길 뿐이다. 


- 헨리 포드, 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경제학 -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매일 한 문장의 명언들 

그로 인한 '경제'를 좀 더 이해하고, 아울러  '삶'을 다시 고심하게 만드는 시간들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단순한 의도였지만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 읽기 시작한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을 가볍게 접하면서 '경제'를 이해하고 '인간 심리'를 생각하고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지금의 삶' 마저도 생각해보는 사유를 잠시나마 확장시킬 수 있었으니.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계속해서 '책'을 찾고 또 읽고 후의 기록으로 남겨 두는 현재의 악착같은 시간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 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100개의 명언으로 보는 경제학, 댄 스미스, 미래의 창, 2019.08.23.



책의 인용문들이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목적(?)으로 읽다 보니 새삼 알고 있던 것을 한 번 더 마음에 품어 보고 그로 인한 오늘의 행동들을 반성해 볼 줄 알며 아울러 한 걸음 퇴보가 아닌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조금씩 '다시' 만들어 나가는 나를 발견한다. (문제는 발견하고 금세 또 어떤 환경과 마주했을 때 사라지는 용기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다시 만들어 나가면 그만..이겠지?) 




돈이 모든 것의 목적이 아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돈은 모든 경제적 활동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 헨리 포드 - 




핸리 포드는 항상 돈을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원하는 바를 이루는 수단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깊이 동감한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좋은 도구가 되어야 한다. '하루 10분 거꾸로 가계부' 나 '하루 10분 엄마의 돈 공부'라는 단행본 한 권을 만들어 나가며 그 마음은 몇 년의 시차를 두고도 변함없는 마음결이었다. 도구. 이왕이면 나를, 우리 집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 아래서 보다 양질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게 도와주는 좋은 도구로 움직이도록... 그렇게 자산 배분을, 재정 관리를 스스로 해 나갈 줄 알며 아울러 자애를 베풀 줄 아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이자 이타성을 가지며  함부로 삶을 판단하지 않는 자. 나에게는 그런 분들이 진정 괜찮은 투자자이고 부자이고 '어른'인 것만 같다.. 세상에는 진짜 어른은 의외로 많이 없어 보이니까. 여전히도. 




헨리 포드는  '돈밖에 벌지 못하는 사업은 가난한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드는 가치에서 돈이 생긴다고 믿었으며 '많은 사업가들이 금전적으로 성공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이 모든 것의 목적이 아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돈은 모든 경제적 활동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돈은 사람의 본성을 드러낼 뿐, 사람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두 사람에게 각각 100만 달러를 주면, 자애로운 사람은 그 돈으로 자신의 너그러움을 보여줄 것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자신의 탐욕을 확인할 뿐이다. 



또한 '돈'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방향'을 때로 바꾸기도 한다.... 없을 때 더 많이 바꾸게 되는 편이기도 한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 이름 들어 알만한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의 목소리는 또 어떠했나. 

'월스트리트에서 부자가 되는 비밀'에 대해서 그가 주야장천 이야기하는, 이른바 '투자'의 세계에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로는 단언컨대 근본적으로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에게 저평가 주식이란 장기적으로 분명 가치가 있지만 단기적인 문제에 봉착한 주식을 의미한다. 저평가 주식을 찾아내 살 수만 있다면, 해당 주식이 시간이 흘러 제값으로 회귀할 때 또는 미래의 큰 수익을 기대하는 기업들이 매입할 때 비싸게 되팔아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 머리는 꿰차고 있는 지식들 이건만 역시 중요한 건 그럼에도 '실행'이고 '도전'이고 '용기'이지 싶다. 지식은 실천을 따라가지 못하기에. 




모두가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고 모두가 욕심을 낼 때 두려워하라 

단기적으로 볼 때 시장은 인기 대회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울이다. 




고백건대 예전엔 적잖은 기부를 했었다. 

과거형이 되어 버린 이유는 트리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기부'의 행위에 대해서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기부하고 마는 게 아니라 그 이후의 '돈의 흐름' 이 궁금했다. 기부를 받는 '단체' 들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조금 찾아보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충격적인 사실(?)을 공교롭게 발견했었고 (나의 기부금이 온전히 내가 바라던 대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조금은 기부하는 것에 회의적인 편이 되어 버려서 잠시 그 행위를 중단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은 문장들을 접하면 다시금 어떤 상상들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아이들이, 취약 계층이, 저임금 노동의 현장 속에서 여성들이 여전히 빈곤층에 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분배'가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 되지 '않는' 구조, 권력의 집중, 은폐되는 재무, 숫자 장난질....... 등등이 기 때문.... 이라며. (상상이 너무 앞섰나 싶다만) 




부의 집중은 권력의 집중을 낳는다. (놈 촘스키, 불평등의 이유) 

소수의 사람들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면 일어나는 일이다. 

아동노동과 빈곤은 필연적으로 함께 한다. (그레이스 애벗) 



유년기를 자유롭게 겪을 권리를 주기 위해선 '돈'과 '사랑' 이 있어야 한다. 부모는 그래서 극한 직업이다.




여전히, 또한 부모가 된 이상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동 인권'에 대해 늘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착취'라는 관점에서 노동착취는 여전히 배우지 못한 필수 교육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중요한 '경제'라든지 '인권'이라든지 '인성'에 대한 제대로 된 현실적 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경제 교육에 대한 기회마저 생각할 겨를 없이 빈곤하고 악순환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태어난 아동들은 유년기를 가질 권리조차 갖지 못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동뿐 아니라 대한민국 내 외국인 노동자라 지칭되는 이민자도 마찬가지리라. 이민자들의 아동도 마찬가지일 테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얼마나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걸까를.. 아주 엉뚱하게 책을 읽다가 생각해보곤 하면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진다. 성악설을 믿진 않지만 한편으론 인간이 가장 사악하고 무서운 존재일 수 있는 건 '냉소' 때문이겠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그 심보 때문이기도 할 테고. 




애벗을 여성, 아동 노동자들과 같은 다양한 약자들이 쉽게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들을 위한 캠페인을 끊임없이 펼쳤다. 애벗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지금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경제적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당시 많은 아동들은 공장에서 단순 업무를 하면서 낮은 임금을 받았고 아동노동은 아동들이 어른이 된 후에 고임금 직업군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의 기회를 박탈했다. 애벗을 바로 이것 때문에 그들이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작년, 동년배 여자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잠시 동안 어떤 알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 또한 변호사로서 인권에 대한 관심,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도움, 이번 생에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괜찮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그런 고민들을 적잖게 하고 사는 '어른'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경제를 공부하고 재정관리를 해내려는 여성. 아울러 자신의 전문적 커리어를 지켜 나가면서도 아이를 잘 기르려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엄마... 고마움을 느꼈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녀는, 우리들은 그 프레임 안에서'만' 생각을 정체시키는 게 아니라서. 그래서 고마웠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돈을 벌고 만들고 부대끼며 사는 사회적 동물, 어른의 몸을 한 우리들이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혼자만 잘 살자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우리 곁의 아이들, 후세대를 위해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노동, 경제, 착취, 빈곤, 노예, 여성, 아동..... 엉뚱하지만 책 말미에서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다 보니, 어떤 연대마저 꿈꿔보기도 했다. 가소롭지만.. 이 와중에 말이다. 그녀와 올해 어떤 식으로든 '같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마련해보고 싶다는 생각. 버리지 못했고 여전히 품고 지낸다.  생각은 늘 그러하듯 행동에 선행하니.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동시에 어떤 생의 의지마저 다시금 품어 보며... 



생각이 많은 요즘에도 변치 않은 하나는 바로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다. 되도록 자유롭게.... 튼튼하고 바른 어른으로 인도하리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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