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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14. 2020

나 같은 사람 또 있을까

나는 나의 대체 불가능한 지지자이자,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무너뜨릴 만큼 무서운 적이다. 


- 나 같은 사람 또 있을까 - 





생각 없이 읽었다고. 

정말이지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읽고 싶었기에. 되도록 작가의 문장 자체를 그저 읽어 '내리기만' 하려 노력했다. 물론 완벽히 그렇게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는 어떤 애씀 덕분에 이 예민하고 섬세한 문장들 속에서 작은 위로를 아주 잠깐 느꼈다. 아주 잠 깐 뿐이었지만. 




나 같은 사람 또 있을까, 새벽 세시, FIKA, 2019.12.12.



손 편지를 사랑한다.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무언가를 '받으려면' 되려 주라고 했던 말을 아직도 믿고 있는 것 같다. 되도록 손으로 쓴 메모나 쪽지를 여전히 주는 편이다. 때론 주는 것에 지치는 나였지만 그 마음도 나이를 먹어가니 무던해지는 듯싶다. 주기만 해도 괜찮은 것 같은 요 몇 년이었다. '부모'가 되니 생겨버리고 만 커다란 교훈이 체득된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여하튼 책을 펼치자마자 작가의 작은 손글씨로 새겨진 문장이 어딘지 따스하다. 




매번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꼭, 마주할 수 있는 인연이길 바라요 




그렇게 따뜻한 이야기들만 한가득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조금은 '우울' 하거나 가라앉는 기분이 되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을 간접적으로 어필하고 마는 문장들 속에서 이 문장의 '지은이'를 생각해본다. 그녀도 분명 순탄치 않은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버티듯' 살아내고 있는 걸까 싶었다. 사람은 그래서 참 이기적이고 간사한 동물이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을 '비교'에서 '상상'에서 잠시나마 느끼고 말면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위안'이라고 하는 감정을 느끼고 마니. (나만 그런가 싶지만) 나만 구질구질하게 건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여러 에피소드들이나 감정들을 문장을 전달하고 마는 이 작가의 이야기들은 나로 하여금 어떤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만다. 너무 일상의 순간을 부정으로 몰고 가는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게 되고 말았으니까.  




작고 짙게 생긴 멍은 시간이 갈수록 크기가 늘어나 언뜻 보기에는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짙은 것이 서서히 옅어져 가며 범위를 넓혀갈수록 통증은 조금씩 무뎌질 테고, 그렇게 전부 흐려지고 나면 분명 더는 아파하지 않는 날도 올 테니까. 그때까지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보다 하찮고 칠칠치 못해 보이는 나 자신이 그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도록 스스로 자꾸만 다독여주어야 한다.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자주 부딪히는 부위는 어떻게든 계속해서 상처가 난다. 한번 아파보았던 내가 그 아픔을 또다시 마주했을 때, 적어도 그때만큼은 처음보다 나은 사람으로 조금 더 단단하고 견고해져 있기를. 



등을 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을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한 요즘이다.




연초, 나는 있던 자신마저 깡그리 없어진 기분에 휩싸인 채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애초에 자신감이라는 게 나한테 존재하기나 한 걸까 싶은 의심이 들 정도로. 몸 조금 아팠을 뿐인데 머리마저 어떻게 되어버린 것 같은 감정이다. 한껏 부정적이 되어버린 나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자신이라는 게 없어져 버렸다. 나를 믿지 못하는 상태로, 그야말로 바닥을 다시 치고 말아 버린 것.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내내 해도 답은 없다.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는 의지보다는 그저 밤에 울고만 있는 나를 발견해 버리고 말았으니. 생각해보면 '나'라는 존재만큼 나를 일으키게 만드는 존재도, 반대로 나를 절벽으로 밀어 넣는 존재도 세상엔 없는 것 같다. 




나 자신을 완벽하게 믿어준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나만큼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 정도 일은 할 수 있겠다, 하고 무작정 믿어보겠다고 가정한다면 그게 가능한 이유도, 불가능한 이유도 가장 많이 댈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대체 불가능한 지지자이자,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무너뜨릴 만큼 무서운 적이다. 


지금까지의 기대가 한 번에 무너졌을 때 마음도 함께 무너져본 적이 있는지. 아직까지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렇다면 지금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지. 




벌써 4년 전의 일이 된 '과거'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과거로 다시 돌아갈 것만 같아서 여전히 불안하다. 한껏 우울했던 그 해의 나는 그야말로 거지꼴이나 다름없었지만. 반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자아 역시 이내 나를 붙잡고 있다. 오늘. 내 곁에 있었던 아이들과 친정엄마의 표정을 떠올려 본다. 있는 힘껏 살아가기에도 모자란 생이라는 걸 다시금 느낀다.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여유도 없다는 걸 안다. 

'이러고'라는 것 안에는 온통 부정적으로 빠져드는 '나'가 존재한다. 나와야 한다. 내가 나여서 밉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나여서 고맙다는, 아직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믿어 보며. 아침을 맞이한다. '괜찮을 거다'라는 믿음과 함께. 때론 차가워질 수 있는 이성으로 무장한 채, 필요하다면 웃음기보다는 냉정한 정신력으로... 24시간을 다시 맞이한다. 마음 한편엔 이 문장을 기억하고서. 




내가 나여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을 조용히 응원하겠습니다. 

우리는 분명 이대로도 참 괜찮은 사람이니까요. 




똑바로 정면과 현실을, 현재를 직시할 수 있는 힘을... 길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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