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Feb 25. 2020

인수인계

퇴사 D-4일

여기서 꿈을 실현시킨 사람이 있어? 


- 한자와 나오키 - 





월요일의 출근 

여느 때 같았으면 분주해서 정신없는 아침이었을 테지만 이번 주는 조금 달랐다. 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졌기에. 일요일 저녁 불가피한 어린이집 원장의 긴급 알림 문을 보고 친정 부모님께 SOS를 청했다. '마지막'이라는 그럴싸한 핑계와 함께. 모든 관 내 어린이집은 휴원 혹은 가정보육을 권고시켰다. 신문 기사를 보아하니 유치원을 비롯한 학원마저도 휴원을 한다고 했다. 친정이 없는 이들은, 누군가의 '외주' 도움 하나 없이 맞벌이를 유지하는 이들의 '대단함' 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 



맞벌이 부부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현실은 양육을 하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세계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사 노동을 '더' 하는 배우자의 보임일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일' 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밸런싱이 맞춰지지 않는다면 더더욱. 모두 다 함께 쉴 수는 없는 환경, 누구는 일을 해야 하고 누구는 그 속에서 '돌봄'을 거듭해야 하는 상황, 각자의 위치에서 비로소 '일'이라는 것이 맞물려 돌아가야 비로소 서로가 생존할 수 있는 사회 속 생태계. 수입 없는 댁내 그림자 노동을 일삼는 이들과 생계를 위한 대외적 수입 노동, 2인 가족이 3인 혹은 4인 가족이 되는 순간 나는 알 것 같았다. 



한쪽으로 치우친 수고스러움이 더해져야 살아지는, 피할 수 없는 어떤 현실들을. 

그간의 '워킹맘'을 겪으며 못내 아쉬웠던 어떤 불편한 것들, 사뭇 돌이켜 생각하자니 마음이 쓰렸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감사함만 생각해야 할지니, 나에겐 비빌 구석 '친정'이라는 무기가 있었고 그 무기 덕분에 어쩌면 여태껏 일하는 엄마 노릇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힘들 땐 '엄마'를 생각한다.. 나의 구원자.. 그녀는 반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직도 힘들까... 나 때문에. 




'어떻게 지켜왔는데'라는, 여전히 힘 빠지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주의 출근길 버스를 탔다. 

사실은 안 나와도 '그만'이었으나 사실 나는 나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마무리'라는 어떤 끝맺음을 되도록 잘하고 싶다는 알량한 핑계를 가장한 채. 아니면 여전히 회사 곳곳의 공간의 그리움 때문일지도. 아니면 어떤 바보 같은 '충성' 심이 완벽히 없어지지 않은 채 '회사 인간'으로 살아왔던 나였던 걸지도.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나는 노트북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탔다. 제법 날이 풀린 듯 봄이 오려나 싶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책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배터리를 꽂아 충전을 시켰다. 

그러는 동안 인쇄해 둔 퇴직 서류들을 물끄러미 읽어봤다. 읽다가 옆에 동료가 눈에 들어왔다. 업무를 인계해야 할 인수자, 그에게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며 업무 중 빈 시간을 물어보았다. 오후가 좋다던 그와 일정 조절을 하고 다른 업무의 인수자들에게 메일을 썼다. 사실상 '그 업무' 가장 큰 '홀' 이 될 게 뻔했고 어떤 오지라퍼의 '걱정' 때문에 일부러 나온 것임을 그들이 알까 싶었다. 



점심을 먹으러 지하 1층의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늘 원고 작업을 점심 틈새 시간에 병행하고 있었기에 샐러드라든지 도시락이나 간단한 선식을 먹는 게 일상이었던 나는 지하 1층의 풍경이 사뭇 낯설었다. 바이러스로 가득 찬 세상의 시끄러움 때문인지 유달리 직원들이 많이 보였다. 저들의 '짬밥' 이 언젠가 그리워질까, 또 어리석은 생각이 잠시 스치며 나는 샐러드를 사들고 5층으로 올라와 동료 한 명과 함께 이러저러 사담을 나눴다. 밖에서도 볼 그와의 점심 샐러드는 아마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더 열심히 먹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작은 양배추 조각도 소중하게 다루듯이. 



짬밥과 야근이 쌓여 '커리어'를 만든다면... 




오후의 인수인계가 시작되었다. 

루틴함만 익히면 금세 따라잡는 일이었고, 적극성만 있다면 부담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일. 다행히 첫 번째 인수자는 '적극' 적이었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 이 정도 1 cycle을 도시고, 루틴함 쌓이면 큰 무리는 없을 거예요. 잘하실 거예요.. 

- 감사해요 책임님... 아.. 뭐라 드릴 말씀이

- 업무 잘 받아 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 오늘 나오실 줄은 몰랐어요. 

- 네... 나와야죠. 마무리하러. USB 주시면 그동안 정리했던 파일 다 전달드릴게요.




노란색 포스티 잇에 메모를 적어 USB를 그의 책상 위에 올려 뒀다. 

그리고 두 번째 인수인계가 시작되었다. 오지라퍼의 '걱정' 스러운 그 업무를 이제 와서 '제대로' 그간 내가 했던 일을 아무리 알려주려 한 들,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두 분 중 한 분은 '포기' 했다 했고 또 한 분은 '안 될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나왔다. 더군다나 '지정된 인수자' 두 명을 만나기 전에 나는 '팀장들' 에게 불려 갔었다. 내 업무의 '난이도'를 묻는 그들에게, 나는.... 어떤 알 수 없는 분노가 일렁거렸다. 사태 파악을 '이제야' 했나 싶어서. 떠나는 마당에 '그러거나 말거나'였지만. 웃으면서 마지막의 '일침'을 가하고자 했다. 



그들은 '일침'이라 느낄 리 만무하겠지만. 

단순한 질문에 어떤 단순한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막막함을 뚫고. 내 목소리는 리더들을 앞에 두고 비로소 터지기 시작했다. 



- 이 일이 그렇게 어려워요?

- 팀장님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일은 따지고 보면 '할 수 있는' 업무예요. 다만 인수자 두 분이 왜 그렇게 '할 수 없다' 고 어렵고도 부담을 느끼시는지도 저는 다 압니다. 왜냐면... 제가 그 '할 수 없을 것 같음'을 TFT에 영문 없이 불려 와서 '맨땅에 헤딩' 하듯 업무 처리하면서 절실히 겪었으니까요. 


사내 누구 하나 가이드 주지 않았고 실상 아는 사람도 '없었고' 없는 와중에 일은 당장 '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리더님들의 결정이 그러셨잖아요. 비빌 구석은 '실무자의 똘기, 맨땅에 헤딩, 해내고자 하는 의지' 하나밖에 없잖아요. 매뉴얼이 있어요. 시스템은 적응하고 부딪히고 겪다 보면 다 할 수 있어요. 다만 뭐랄까 이 업무는요. 재무나 회계에 관심이 있든가 그러지 않고서라도 '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으면 '못하는' 업무 이기도 합니다. 


개발했던 사람한테 갑자기 영업 뛰라고 하는 성격... 이죠. 저야 운 좋게 마케팅하고 물동 관리하고 영업관리하고 프로젝트 관리했던 오랜 이력 덕분에 재무 회계 부가세 복원 등등,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려고 했으니' 했던 거고요. 

-...... 


- 이 업무, 인수인계 때문에 사실 나온 거고, 최대한 알려 드리겠습니다만, 사실 이 업무. 처음부터 다 공유하고 알려 드렸어요. 어떤 형태의 업무인지. 무엇이 힘든 부분인지. 그땐 아무도 모르셨죠. 이제 와서 '막상 닥쳐서 배우려고' 하니 부담이 더하신 걸 압니다. 

- 그래요. 수고했어요. 끝까지 잘 인계해주시고 

- 네.. 이번 주 며칠 나올 거니 마무리, 할 수 있는 선에서 하고 나가겠습니다. 



파도에서 나와 '객'의 상태로 파도를 바라보니... 또 달리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큰 교훈이다..




웃으며 나왔지만 사실은 목구멍에서 씁쓸함이 밀려왔다. 

한 사람의 급 퇴사로 인한 업무 홀, 그로 인한 광풍을 아는 것은 오직 셋 뿐인 것 같았기에. 남겨진 실무 두 명의 고충을 충분히 들으면서 마음이 이상하게 아팠다. 아플 이유가 사실 없어야 하는 데 왜 나는 이렇게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걸까. 회사의 정책으로 인해 아래 실무자들의 '아비규환' 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회의실을 먼저 나와서 퇴근을 하려는 길, 문득 입사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꿈'을 꾸었던 스물다섯의 나는 이제 삼십 대 중반을 지나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정도의 '꿈'을 회사 다니면서 이뤘다 하나 한편으로 누군가는 각자의  '꿈'을 실현시키면서 회사에 '충성' 하고 있을까 싶었다. 생각 또한 모두 부질없고 무쓸모 한 '오지랖' 일 테지만... 



퇴사 D-4일. 

내일은 비가 온다 하니 집에서 '육아 출근'을 할 생각을 했다. 신생아 시절이 생각나서 벌써부터 숨이 턱 막혀왔지만 뭔들 하면 또 길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 시절 나의 막막한 꿈이 실현이 된 것처럼. 지금 이 시간 또한.... 언젠가의 '꿈'처럼 그리워질 날이 올 것처럼...




흩날리듯... 그리움도 그렇게 없어진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그리움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삶이라면. 



작가의 이전글 이가 없다면 잇몸으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