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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25. 2020

이가 없다면 잇몸으로도

퇴사 D-5 , 일요일의 다짐 

하루 종일 수많은 기회가 오고 간다. 

무수한 기회 가운데 이거다 싶은 기회가 찾아온 순간, 힘을 갖고 싶다. 

더불어 날카로운 직감도, 무언가에서 도망칠 때의 기민함도 남겨두고 싶다. 

여차할 때 전력을 다해 멀어질 수 있도록.


- 일상의 악센트 - 






아이들의 성화에 힘입어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두꺼운 깁스를 했음에도 아픔 따위 전혀 없는 듯, 첫째 아이는 나가기 전부터 신이 났고 둘째는 마냥 집에 있다가 나간다 하니 뛸 듯이 기뻐했다. (그래서 정말 방방 뛰어다녔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주말 내내 옅게 일렁이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복잡했던 사념들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 같기도 했고. 



4인 가족이 유일하게 서로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 

주말은 그래서 되도록 '일'을 하지 않기로 배우자와 약속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지지고 볶으며 함께 양육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최소한 '주말' 만큼은 서로가 완전한 지지를 해 주기로. 그이는 핸드폰 혹 '이메일'을 되도록 보지 않을 것을, 나는 되도록 만족스럽지 않은 배우자의 서포트에 '화'를 내지 않을 것을. 그렇게 서로의 기준에 온전한 만족스러움을 줄 수 없어도.



우리는 서로를 지켜내려는 애씀을 펼친다. 

주말에는 더더욱. 나의 가사노동과 물리적인 양육 살림, 그이의 정서적인 육아 놀이, 그것들의 조화는 결국 몇 년에 걸쳐 나름의 좌충우돌을 겪으며 경험을 쌓고 훈련과 일정한 패턴적 습관이 되어 그렇게 우리 네 명의 '주말'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일을 하는 궁극적 이유는 어쩌면 이 '가족공동체' 속의 네 사람의 안전과 평온, 아울러 기쁨을 좀 더 도모하는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일 테니까... 이 신념은 쌍둥이들이 태어난 이후에 생긴, 뭐랄까 나와 그이의 삶을 아주 단단하게 지탱하는, '부모'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주려는 부모의 마음...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주방에 담겼을 때의 그 시간..평온한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때로 일상과 분투한다.  




회사가 숨구멍 같았던 내가 퇴사를 하고 과연 집에서도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더' 화를 내는 나로 변해버리지는 않을까, 내 능력은 이렇게 사라지고 마는 걸까, 애초에 나에게 '능력' 이라든가 '재능'이라는 것이 있긴 했었나, 어떻게 회사를 다녔나... 등등. '퇴사'로 인해 예전에는 미처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낯선 문장들이 내게 다가오며 질문이 쇄도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반성이 된다.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해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도 함께. 그렇게 바깥으로 나가려는 아이의 성화에 나와 그이는 계단실에 둔 웨건을 같이 챙기고 간단한 짐을 싣고 집 밖으로 산책을 떠났다.  



코에 제법 찬 바람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리 냉랭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익숙해졌나 싶었다. 

웨건 속 쌍둥이들은 나오자마자 신이 났는지 서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시국이 '바이러스'로 북적이는 와중에도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건 그이와의 짧은 대화와 아이들을 관찰하고 난 이후의 어떤 다짐 덕분이었다. 



- 우리 올해 여행 갈까?

- 갑자기 왜...?

- 독일 가고 싶다 했었잖아. 아니 네덜란드였던가.. 아무튼, 혜원이 동유럽 안 가봤잖아. 체코 스위스 아니면 그 반 고흐 박물관 가고 싶다고 그러지 않았었나. 마일리지 아직 남아 있으니까 올해 다녀오자

- 회사에 그렇게 오래 휴가를 낼 순 있고? 

- 한 달에 하나씩 생긴다니까.. 미리 예약하고 추석 지나가면 될 것 같은데. 

- 아이들 데리고 아직 해외여행... 자신 없고 국내 여행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 그게 아니라 아이들 말고 우리끼리

-..... 

- 서로 오래 다닌 회사, 올해 다 그만뒀잖아... 나름 서로 기념하는 거지.




곁에 있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그런 말들의 주고받음 덕분이리라.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던 건 '서로'라는 명사 때문이었을까. 

한 회사에서 만나 '짝' 이 되어 버린 그이와 나는 같은 해, 한 달을 거르고 그렇게 연속적인 '퇴사'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한 사람은 마지못한 이직을, 한 사람은 타의적인 권고 퇴사를. 이 시절이 훗날 어떻게 기억될지 나는 애써 좋은 상상을 펼치려 했다. '그때 그랬었지' 하면서 웃을 날이 오리라고, 사실 아직도 지금 그 날이 오긴 올까 싶은, 철저히 혼자 남겨진 밤이면 울먹이는 내가 있음에도... 



공원에 도착해서 웨건에서 나온 아이들이 뛰어 놀기 시작했다. 

깁스를 하고 약간 절뚝거리면서도 멀쩡한 다리처럼 호기롭게 뛰어다니는 첫째를 보고 이상한 반성이 일렁거렸다. 현재를 인정하되 그 현재에 최선을 다해 신나고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깁스를 한 첫째 둥이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그 일상의 모습에서 나는 다시금 잊고 있던 일상의 교훈이 떠올랐다. 



이가 없다면 잇몸으로도 

그렇게 현재를 살아갈 것을. 지금의 다가오는 물음들 속에서도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놓치지 않는다면

즐거울 수 있다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이와의 고마운 대화의 짧은 주고받음 속에서.. 


퇴사 D-5일, 마지막 출근을 앞둔 일요일 주말. 

나는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집 '밖'으로도, 그리고 '회사'라는 공간 '밖'으로도... 




밖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겠지만, 그 '밖'은 또 빛과 구름, 햇빛도 있을테다.. 믿는다면. 스스로를. 

 



#이틀_지나_올리는_일요일_단상_저장된_글을_힘겹게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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