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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04. 2020

할머니 딸도 말 안 들었으면서

둘째의 팩트 폭격...  

숨 쉴 틈도 주지 마. 정신없이 오늘 하루만 살아. 그렇게 살다 보면 살아져. 견뎌져


- 하이 바이 마마 - 





퇴사 후 그동안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것들을 하나 둘 해내 보기 시작했다. 

청소, 유튜브, 그리고 4인 가족의 식사 장만들이 요 근래 가장 집중적인 시작들이라 볼 수 있겠다. 사실 청소나 음식과 같은 댁 내 살림 돌봄 들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당연히 해내던 일과들이었지만 뭐랄까. '제대로' 해낸다는 생각은 늘 들지 않았었다. 쌍둥이 등 하원 시키면서 직장 생활 유지하면서 (존버) 원고 쓰는 것에 정신 팔려 있었던 나였으니까. 지금은 평일 대부분의 커다란 시간을 차지했던 것이 쑥 빠져 있으니 단언컨대 그 나머지 것들에 에너지를 더 쏟아야 한다는 나름의 강박이 나를 여전히 사로잡는다. 



퇴사하면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여유'라는 게 좀 생길까 싶었지만 그것은 착각...

결국 사람마다 받아들임이 다르기에 나로서는 권고 퇴사 그 이후의 또 다른 '생존 현실'을 생각하고 마노라면 이상하게 숨 쉴 틈이 또 쉬이 생기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결국 '성격 탓'을 해 본다. 뭐든 생각한 기준에 딱 맞아떨어져야, 한편으로는 그 근사치까지라도 들어서야 하는 이 성격 때문에. 



고정 수입을 벌어 들이는 회사로 출근만 하지 않았을 뿐, 나는 여전히 쉼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준비하는 시간과 작업량에 비하면 그리 썩 좋은 페이를 받지 못하고 마는 (시급은 센) 강의 준비, 기타 콘텐츠 기획과 생산들 (원고와 영상 등 각종 미디어 관련 콘텐츠 포함) 그리고 청소와 가사에 초집 중적인 '가사 노동'과 양육 노동까지. 이것들은 모두 돈이 되지 않는, 혹은 아주 소액의 변동 수입을 주시는 소일거리들이고 나는 이 '일' 들을 놓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는 더 '잘 해내려고' 해서 탈일 지경이다. 금방 에너지가 소모되기 일쑤니까. 




돌봄에 지친 나는 가끔 '석양' 의 시간이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그냥 시간이 금방 지나갔으면 싶어서...




이 '일' 들 중 기쁨과 고통의 양극단을 달리는 건 단언컨대 '양육' 노동이다. 

원래 워킹맘이었을 때도 배우자의 분담 혹은 도움 조차 쉬이 얻을 수 없었지만 '전업' 이 되고 난 이후에는 더더욱. 나는 아예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혼자 아들 쌍둥이 둘의 기초적인 양육을 포함하여 요즘 최고 난제로서의 '훈육'과 '교육' 활동이 더해지면서 나는 그야말로 미쳐버릴 것 같은 하원 이후의 시간을 간간히 지내보는 중이다. 특히 나를 종종 괴물엄마로 끄집어내기 일쑤인 둥이 2호, 둘째 덕분에.. 나는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진땀을 빼고 만다. 온몸에 힘이 쫙 빠질 정도로 '사건을 저지르고 만 아이'를 두고 인내심을 겨루다 기어코 터지고 나면... 



직장 일을 할 때는 이토록 화를 자주 내진 않았었다. 미안해서. 

결국 그 알 수 없는 미안함 때문에 아이에게 화를 많이 내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쩐지 전업이 '급작스레' 되고 만 이 현실에서 나는 아이에게 화를 자주 내는 나를 발견하고 만다. 오늘도 기어코..... 아이는 그런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내가 무척이나 바보 같이 느껴졌다. 무척이나...



- 할머니 딸도 말 안 들었으면서 



그래.... 나도 엄마 말을 안 들었던 때가... 많았겠지 싶어서 말을 잃고 말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기쁘고 보람되고도 놀라운 순간은 나로서는 새로운 '문장'을 발견할 때다. 

미안할 정도로 나의 편의와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아주어 자꾸 도와주려고 하는 첫째의 대견한 문장들에서 (엄마 괜찮아, 사랑해, 진정해 등등) , 아울러 애교가 퍽 많은 둘째의, 혼이 나도 그 밝음은 어디 간데 없이 시종일관 웃으면서 장난을 치며 훅 들어오는 '문장' 들에서. 



아이는 옳다. 

나는 친정엄마의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는 딸이어서 그녀를 힘들게 했던 때가 남동생보다 유독 많았다. '여자' 여서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엄마는 내게 일반적으로 조언했지만 나는 그 '일반적'이라는 것들에 유독 '반항적'이었다. 묘하게 가부장적인 행위들의 강요일수록 더더욱. 그랬기에 지금 '엄마'가 된 나는, 둘째 아이의 그 문장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할머니 딸'인 나도 사실 말을 안 들어서 나의 친정 엄마의 속을 애태웠었는데. 그게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는 격이라 뭐라 할 말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를 크게 나무라고 싶었던 마음은 아이의 말 덕분에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나는 웃었고, 아이는 약간 찡그리려던 얼굴에서 다시 화색이 돌듯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도 그 장난에 장단을 맞춰 아이와 함께 어질럽히고 놀았다...(그 뒷감당은... 맥주 두 캔의 힘을 빌려 성격대로 다 치웠.... 하아.... 쌍둥이.. 아무나 키우나 싶다) 



쌍둥이....아들..........못할 게 이젠 정말 없겠다.... 나는 훈련 중이다....제대로 된 인내심 자비 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훈련을. 




지금의 '일' 들을 사랑해보겠다고 

우울감은 여전하지만, 그걸 이겨낼 기쁨과 성과 또한 이 '일' 들과 함께 만들어 보겠노라고. 나는 더더욱 다짐해 보았다. 그러면서도 괜스레 또 눈물이 나려 했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내가 왜 이런 처지에 갑작스레 놓여야 하나 싶어서. 하지만 그 덕분에 아이의 문장들에 조금 더 신경을 쓸 수 있고 그로 인한 기쁨의 발견들을 해내는 지금의 일상을 그저 감사하게 살아 보자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의 '일' 이 '진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향해 

'숨 쉴 틈을 주지 말고 정신 없이 오늘만 사는' 그렇게 반복하다보면 또 견뎌지는 이 삶은 진짜라고... 



#5세아들둥이육아도_진짜_할말_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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