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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03. 2020

냉장고를 청소하다 꿈이 하나 생겨버렸다.

한국의 '곤도 마리에'가 되고 싶다고... 문득 생각했다. 

애당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정리하는 것일까? 

결국 방이든 물건이든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정리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정리는 의미가 없다. 


- 정리의 힘 - 





아침 등원과 유튜브 출퇴근을 마친 후 홀로 남겨진 집을 가만 쳐다보았다. 

남들이 보면 꽤나 '편안하고 아늑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부러워할 만한 여자의 정오' 같은 드라마 속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었다만. 마음 상태는 여전히 그리 여유 있게 시간을 '쉼'으로 보내려는 상태는 또 아니었다. 읽다 만 책의 완주를 끝내기가 무섭게 노트북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 급히 서평을 남긴 후,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물 한 모금 마시기가 급하게 '청소'를 하려 했다. 



왜 그랬을까

청소를 하려는 충동적 동기 부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몇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봐도 뚜렷한 영문을 찾지 못하겠다만, 문득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정리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기에. 꽂힌 무엇에 막무가내 실행력 하나는 대장급인 나로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청소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을뿐더러 사실 깔끔 병에 강박관념이 있는 탓에, 약간 어지럽혀져 있었던 그동안의 냉장고를 싹 정리하는 건 '전업주부' 로서의 나름의 책무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런 생각 또한 강박일까 싶다만. 




가지런함이 주는 어떤 편안함.. 



정리 수납 컨설턴트 자격증만 없을 뿐 친정엄마는 그야말로 생활의 달인급 정리 실력의 보유자다. 

그런 그녀를 수십 년 곁에서 지켜봤기에. 서당개 삼 년이면 글자를 깨치진 못해도 어설프게나마 글을 읽는 척 따라쟁이가 될 수는 있다. 나도 마찬가지, 옷장, 신발장, 서랍장, 책장, 싱크대 위 선반대, 주방 곳곳의 수납장, 냉장고, 화장실, 베란다, 하여튼 집안의 구석구석. 친정 엄마의 그것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가방은 가방 안에 수납한다든지,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한눈에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라벨을 깔끔히 붙인다던지. 양말은 동그랗게 말아서 수납한다거나 욕실에는 정말 필요한 물품 이외에는 되도록 바깥으로 꺼내 놓지 않는다던지 등등등.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살면서 이 '기본' 들을 지키면서 사는 건 또 그리 쉽지 않은 것도 같은 '소비하기 바쁘고 사들이기는 여전한 뭐든 과잉의 시대' 같아서. 



정리를 하다 보면 최소한의 것들로만 생활할 수 있는 어떤 '힘' 이 생긴다.

미혼 시절부터 쌓아온 절약과 소비 습관 덕분에 '냉파'는 나름 기혼 이후 우리 집의 기본이고 당연한 것이었기에 냉장고는 다른 곳들의 정리에 비하면 꽤 쉬운 편이다. 거의 텅 비어 있거나 최소한의 음식물들로 차 있었으니까. 친정엄마의 그것을 따라 하다 보니, 대량 구매가 아닌 소량의 식재료를 그때그때 사서 먹을 수 있으면 먹다 보니 그리 많은 음식물을 '쟁겨 '두지 않는 것이 다행히도 감사한 습관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냉장고를 열었을 때 뭔가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드는 날이면 으레 껏 청소를 주기적으로 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던 것이다. 퇴사 전에 퇴사할 줄 모르고 일주일 치 아기들의 식재료를 사다 둔 것을 아직 정리하지 않았던 것이 눈에 띄기도 했고.  



냉동고부터 시작해서 냉장실, 김치 냉장고 칸칸마다. 

쓸고 닦고 식재료들을 구분해서 재배치시키고. 그렇게 정리를 끝내다 문득 이것이 '정리의 마법' 인가 싶었다. 냉장고를 청소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뭔가 대단한 걸 한 것인 홀가분해지기까지 했다. 홀가분..... 어쩌면 나는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 애써 청소를 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비워내는 어떤 홀가분함.. 말끔한 그런 상태를 바랐던 걸까. 




반 강제적 퇴사 이후 여전히 곁에 깔려 있는 상대적인 박탈감 

그로 인해 쉬이 다가오지 못했던 그 시원한 홀가분함을. '청소'를 통해서라도 어떤 깔끔한 마무리를 얻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으로 왜 정리를 하려 하는 건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삶이 굉장히 단순해진다는 것. 단순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박한 삶의 행복마저도. 



아울러 한국의 곤도 마리에가 되어 보고도 싶다는 어떤 야무지고 당찬 꿈마저 붙어 버리려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을 정리하고 나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라고 했던 그녀의 문장이 떠올랐었다. 이왕 이렇게 전업의 생활을 시작한 이상, 나는 그것도 나의 '일'로 좀 더 친숙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한번 해 보자고. 어떤 계기가 되었든 정리를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새롭게 떠오르겠다 싶었던 나는. 



추억의 물건들에도 '예의'를 차려 정리하려는 그녀의 철학을 존경하고 배우는 중이다. 



오늘의 냉장고 청소를 만족스럽게 완수하며 내일의 청소를 생각했다. 

아마도 쌍둥이들 옷장과 장난감들이 그 대상이 될 것 같고, 아울러 당분간 나는 '청소'를 제대로 하면서 뭐든 몸을 움직이는 생활을 당분간 이어갈 것만 같다. 그래야 좀 살 것 같아서... 




#이러다가_자격증까지_딸_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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