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Mar 08. 2020

조금씩 어긋나도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나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가.


-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사색을 하게 만드는, 오래 느리게 읽고 싶게 만드는 글을 사랑하는 편이다. 

그런 '에세이'를 만났었다. 작년, 작가의 전작인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을 읽고 사실 한참 다른 에세이들이 다 '시시' 하게 느껴질 정도의 미안함을 머금을 만큼.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 읽고 있노라니 이상하게 자꾸만 조용해지면서도 먹먹해지는 거다. 한편으로 '똑같은' 면을 발견하고 '비슷한' 면에서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들거나 결국 그로 인한 '위안'을 얻게 되고 마노라면. 결국 우리가 가장 큰 위로를 얻는 건 그녀의 생각 그대로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누군가의 이야기들 덕분일 것이리라. 지금 이 책을 읽고 난 이후의 나처럼...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박애희, 수카, 2020.03.02.



친정 엄마와의 각별한 애틋함, 그 이후의 일상들...

어쩌면 이 에세이가 그 어떤 책 보다 더 내게 깊숙하게 다가왔던 것은 아마도 그녀가 한때 직장인이었고, 글을 쓰는 여성으로 살았고, 아이를 낳았고, 기르고, 엄마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간직하며 절절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고, 아울러... 지금은 집필 노동의 삶을 꾸준히 유지하는 여자라는 것. 글로 드러나는 작가의 현실 상황들이 이상하게 나로서는 중첩되는 부분들이 참 많아서. 그래서 묘하게 깊이 다가왔다. 원고 한 꼭지들이 전부.... 전부 접어 두고 싶었을 만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말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인생의 선배들은, 간절함과 함께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되돌아볼 수 있을 때,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다. 그 조언이 무거우면서도 참 따뜻하다. 

p.43


나이가 들수록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사는 일이 힘들어진다. 나만 바라보는 작은 아이를 생각하면 나를 위한 시간 따위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보다 힘들고 아픈 이들을 생각할 때면 손을 내미는 게 도리지 싶어 기꺼이 내 시간을 바친다. 

p.53



자꾸만 중첩되는 이야기들 속에서...




'엄마'의 입장이기에 돈이 그리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기 위한 글을 다시 쓸 수밖에 없었다던

그녀의 심정에 너무나도 큰 공감을 하고 마는 글은, 짐작을 해 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을 쓰셨구나를.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연달아 꾸준히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녀의 삶도 꽤나 절절한 고통과 시린 외로움 속에 묻혀 살기도 하는, '나만 그런 건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있구나라고.... 나는 미안했다. 읽으면서 내내 안도를 품었기에.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나만 그렇게 슬프고 아프고 억울했던 건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아 버렸기에. 미안하게도... 그렇지만 참 고맙게도. 




살다 보면 바닥까지 가는 슬픔들이 파도처럼 인생을 삼켜버리는 시간이 찾아온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지만 숨 쉬는 것조차 힘겨운 시간들은 어떻게든 지나간다.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면 우리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어긋나 버린 인생과 후회의 시간을 잘 애도하며 생을 버텨낼 때 인생은 한 편의 예술처럼 내면의 정수를 일깨우고 말해준다.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p.87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도 소중하지만 나 자신으로서의 삶이 절실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집안일에 동동거리느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밤이 되어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작은 스탠드를 켜고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다. 

p.172-173



석양이 지고 내일이 어서 오기를,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누구들은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상처 받기 쉬운 내면의 소유자는 예민하고도 투명한 감수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이 딱 그래 보였다... 그래서 이상하게 더 좋았던 건 아마도 그런 마음결 때문일 것이다. 타인에게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은근한 감정들, 때로는 더 잘난 이들에게 질투심이 나는 것 또한 견디면서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하며 일상을 담담히 돌아보고 견뎌내는 나이 듦에 대한 생각들, 원고 하나하나에서 그녀가 삶을 대하는 곧은 태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꽤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책이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당신과 나는 언젠가 헤어진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차장 온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매일 어제의 우리와 이별하며 살다 결국 모두와 이별하게 될 존재라는 걸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더 넓은 마음으로,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을 텐데. 

p.128



우리는 모두 진짜 어른은 되지 못한 채 어른인 척하며 사는 걸까. 여전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나보다 더 잘 나가는 이를 향한 질투의 시선을, 어려운 상황에 마주할 때마다 허둥거리기만 하는 바보 같은 나를 어쩌지 못한 채, 오늘도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꾸역꾸역 하루를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를 위로하는 진실은 이것뿐이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는 것. 

p.225




나도 오늘 이 서평을 시작으로 몇 편의 쓰고 싶은 글감들이 툭툭 머릿속에 그려진다. 

친정에서의 있었던 시간들, 부모님과 주고받은 짧은 대화 속 긴 여운, 맡겨 놓고 올 수밖에 없었던 둘째 둥이의 얼굴... 차 안에서 곯아떨어진 첫째의 순하고도 순수한 잠든 천사의 얼굴, 그리고... 샤워를 하다가 문득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린 나...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쳐다보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도 모르게 움직여지며 문장들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일... 다시 떠오르는 시작... 아침은 그래서 소중하다..



사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그저 '감사함' 하나를 마음에 새겨 두고자 한다. 

최소한 이런 에세이 한 권 정도 꾸준히 읽어내리며 살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해보자고. 가지지 못한, 박탈당한 거들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들에서 빠져나와, 지금 곁에 있는 존재들에 대한 것만 생각해 보자고..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라는 이 문장에 오늘만큼은 깊숙이 기대 보며... 



매거진의 이전글 철들어 견디는 삶일지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