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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09. 2020

내 후원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잠시 슬럼프였을 뿐, 더 괜찮아질 거야 

슬럼프는 인내와 친절이 필요한 삶의 순간일 뿐입니다. 

긴 터널일지라도 맞는 방향이라는 결정이 섰다면 계속 가면 됩니다. 

가다 보면 어느 모퉁이에 예상치 못한 출구가 마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 잠시 슬럼프였을 뿐, 더 괜찮아질 거야 - 





슬럼프를 지독하게 겪었던 게 언제였더라.

멋모르는 학생에게 사기 친 어른에 대한 쓴 추억? 계속되는 원고 투고의 실패? 손절의 기억? 회사에서의 우울증? 연속된 유산의 아픔? 모르겠다.... 다만 기억이 가물한 것 같으면서도 어쩌면 그 슬럼프라는 건 현대인에게 드러나지 않는 '매일' 담고 사는 경미한 마음의 병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흔히 슬럼프에 빠져 버린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결국 말이 쉽지만 정말 본질적인 말이듯 '마음먹고 깨어나려는 실천'에 달려 있으니까.  



잠시 슬럼프였을 뿐, 더 괜찮아질 거야, 한기연, 팜파스, 2020.02.28.



사실 인생을 살면서 뜻하는 대로 되는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뜻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은 감사 함조 차, 결국 그 뜻하는 대로 흐르는 것 뒤에는 내가 꾸준히 노력한 방향대로 제대로 운과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것일 뿐... 결국 '노력' 없는 극복이나 성공은 어디에도 없는 건 분명한 듯싶다. 노력.... 악순환이라면 개선하려는 노력을, 힘들면 힘들다고만 하지 않고 그 힘듦을 충분히 겪은 상태 그 이후에 '회복' 하려는 악착같은 노력... 결국 슬럼프는 극복될 수 있는 지나가는 것이지만 그것에 매몰되는 자와 회복하고 더 성장하는 자는 노력의 차이이지 않을까 싶다... 아주 커다란 극복하기 힘든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면... 




슬럼프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태이자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느라 진이 빠진 상태입니다. 내면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기 모습을 똑바로 보라고 외치지만 그러기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먼저 몸이 피곤하고 지치지요. 피곤하고 지친 몸에 중요한 일이란 그다지 없습니다. 자신의 문제점, 부정적인 면, 개선할 면을 보는 것은 뒷전입니다. 

p.14


슬럼프는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에서 큰 압력을 겪어 사고와 행동이 경직되고 막혀 버리는 상태입니다. 또는 지나치게 감정이 분출해 마음의 사이클에 혼동이 생기는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정상적인 상태라면 일단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에너지를 모아 어떤 행동을 하며 행동을 마치고, 다시 다른 것을 경험합니다. 

p.15



눈이 흐려지면 빛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흐린 눈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사실 나도 안다. 그 슬럼프에 한번 빠졌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생긴 다는걸. 

몸으로 드러나듯, 드러나지 않는 마음적인 힘겨움이 생기든 결국 그 슬럼프의 시간들은 지치지도 않고 '나'라는 사람의 시간들을 갉아먹기 일쑤다. 무기력, 우울, 다 싫어 증, 인생 나 잼... 결국 그런 슬럼프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노력'이라는 것을 스스로 해야만 한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일단 스스로에게 시간을 허용하게 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도 좋은 시간을 따로 만들 수 있습니다. 고독한 것을 허용하고 고독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줍니다. 건강과 체력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쓸 수도 있습니다. 

p.181


상처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상처가 내게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 이 과정이 당신의 상처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치명적인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면 무의식적으로 많은 기억들이 드러납니다. 

p. 188




노력하지 않고 빠져나올 구멍들은 사실 없기에. 

말이 쉽지만 사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내가 겪는 슬럼프를 대신 겪어주거나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단지 '도움'을 줄 수는 있을 뿐, 주도적으로 나오려고 환경 설정을 변화시키고 애써 현재에 몰입하도록 어떤 좋은 습관들을 좀 더 체득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등. 그렇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비로소 슬럼프에서 나올 수 있더라.... 유산하고 정말 힘들었을 때 나는... 알았다. 내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만 비련의 주인공인 줄 알았다. 더 잘 사는 부부들이나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에서 시기심과 질투를 느꼈다. 비교에서 오는 행복은 오래 못 가더라. 시간이 오래 지나서 이제는 더 알 것 같다. 그 아픈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또한.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성취감이 적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세상은 전쟁터이거나 경기장이어서 일정 단계가 되면 승자와 패자가 갈립니다. 모두가 승리하거나 행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실패는 곧 나의 행운이고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눈부시게 성취했다면 난 실패자라는 말입니다. 

p.44



나 자신을 쓰다듬어 줄 것.... 늘 다짐해보는 것. 쉽지 않은 것..



생각해보면 슬럼프라는 일종의 '자기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은 끝없이 부정적이더라. 

인간 본성 상 부정의 에너지는 급속도로 번지고 전염된다. 그게 정말 무섭다. 주변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입히고 마니까. 분노와 화라는 일종의 표출들은 관계를 악순환시킨다. 개선하려는 노력과 의지 없이 그저 타인을 비난하다 결국 자신마저 상처 입힌다. 그러니 과도한 분노 혹은 과도한 의존 그 양쪽 모두 극단적인 행동들... 결국 극복하려는 스스로의 노력 밖에는 답이 없지 싶다. 





타인의 기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사실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말, 비판에 쉽게 마음을 다치지 않습니다. 상대가 부정적으로 말해도, 일의 결과가 나빠도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자신의 본질과 연관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 사람이 나를 부정적으로 볼뿐이고 그저 그 일이 좀 잘못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p.49


화를 잘못 내는 사람들이 범하는 대부분의 오류는 타인을 변화시키는 데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믿음이나 생각, 태도, 행동 따위를 바꾸겠다는 시도는 늘 하나의 경로를 밟습니다. 타인은 변하지 않고 화낸 사람의 불평불만은 점점 늘고 결국 더 많은 화를 불러온다는 경로 말입니다. 

p.110




실수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마찬가지로 슬럼프 한번 겪어보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인생은 고해라 하지 않았던가. 불교에서 고해는 고통의 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삶이라는 바다를 유유히 죽음 끝까지 흘러가면서 우리는 결국 고통스럽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 그걸 담담히 인정하고 오늘 조금 더 좋은 습관들을 체득하면서 좀 더 나 자신을 보듬아주고 살펴주고 사랑해 주려는 '자기 사랑'과 '자기 연민' 만이 슬럼프로부터, 좋지 않은 추억으로부터 나를 건져내어 더 빛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닐까. 



결국.. 나 자신을 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가게 만드는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 

지금 변화된 이 상황 속에서 나는 좀 더 나 자신 스스로 후원자가 된다면 

믿고,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튼튼한 '나'라는 후원자 덕분에 좀 더 기쁜 오늘과 내일이 되지 않을까... 




겨울은 지나고 결국 봄은 다가오니까.... 그 겨울이 꽤 길어도 봄이라는 게 꼭 온다는 걸 우린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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