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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10. 2020

지랄 같아도 그건 사랑의 문장들이었다.

김수미의 시방 상담소 

사람은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집중적으로 온전히 즐길 시간을 가져야 돼요. 

내 고민 다스릴 사람은 나밖에 없거든.


- 김수미의 시방 상담소 -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여자. 

시간관리가 철저하고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하는 사람. 목욕을 좋아하고 욕을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는 여자.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데 돈이 없었을 당시, 한 그릇 얻어먹은 그 음식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여린 사람. 집에 들어가면 의외로(?) 말이 없는 여인, 그러다가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에게 사랑한다고 한 마디 했다가 자신이 생긋 웃어 보이는 소녀 같은 감수성의 여성. 김수미 선생님의 이런 숨겨진 내면의 것들을 직간접적인 문장으로 접했을 때. 원래 좋아하던 이 배우를 더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김수미의 시방 상담소, 김수미, 알에이치코리아, 2020.02.28.




역시 좋은 글은 화려한 필력이 아니라 작가의 살아 숨 쉬는  '경륜'을 통해서 나온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책, '시방 상담소'를 읽으면서 배꼽을 잡고 깔깔 웃다가도 어느 구절에서는 눈물이 나서 엄청 혼이 날 지경에 처하고 만다. 옆에서 첫째 아이가 내 등 위로 올라타더니 말한다. 



- 엄마 왜 울어?

- 아니 웃느라 눈물이 나왔어. 

- 나도 같이 웃어



요 근래 이런 책이 흔치 않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웃다가도 나는 어떤 구절에서 빵 하고 감동했었다. 그래서 나왔던 눈물이라는 걸 차마 아이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아이로 인한 생각들.. 기억들로 인한 미안함의 눈물이었다는 것을. 이 구절은 내내 기억날 듯싶다. 김수미 선생님 버전으로 기억한다면... 나는 어딘지 모르게 힘이 날 것만 같다. 




화나면 내야지 참기만 하면 병나. 엄마가 건강해야 아들도 건강한 건데 이 상황에 엄마가 아프면 아들은 누가 키워. 다만 아이한테 맴매하면 엄마 마음이 아프니까 앞으로는 아무리 화가 나도 맴매는 하지 말아요. 


차라리 목욕탕에 들어가서 목욕탕 벽을 쳐. 발로 공을 차든가 어디 나가서 에이 시발, 욕을 해. 엄마가 괴로워하면 아이가 다 느껴요. 그럼 아이한테도 안 좋아. 엄마랑 아들이랑 다 건강하려면 화가 났을 때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p.141




그 문단에서 정말 울컥했었다. 에이 시발. 욕을 하라던. 너무 웃겼는데 이상하게 너무 슬픈 거다...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세상이다. 

유튜브든 오디오 클립이든, 내가 원하는 것'만'을 찾아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세상... 편리한 세상이 되는 만큼 각박한 외로움도 증폭되기 쉽다는 걸 나는 안다. '고민은 혼자 풀 수는 있어도 혼자 듣고 답할 수는 없다'라는 이 문장에 철저한 동의를 하는 편이기에. 시방 상담소의 촌철살인 뼈 때리는 몇 개의 문장들을 그저 기억하고자 기록을 보태본다. 




내 인생에 로또는 나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너 10분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줄 아냐? 축구 경기에서 마지막 10분에 골도 넣어. 승패가 바뀌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무조건 1시간 전에 나가. 앞으로는 모든 약속을 나랑 했다고 생각하세요. 너 나랑 약속했는데도 늦을래? 아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을 거야 p.52


개 같은 일에 면역력이 없어서 그때도 견딜 수가 없을 거거든. 근데 지금 경험치를 좀 올려놓으면 다음에는 견디기 수월할 거야. 그리고 네가 버티는 동안 그 언니, 오빠들은 알아서 잘려 나가. 점장 정도면 바보 아니거든? 윗사람은 열심히 책임지고 일하는 사람 알아보게 돼 있어. 그러니까 누명을 벗고 싶으면 버텨요. 진실은 늦을 뿐 꼭 밝혀져요. p.103


무기력은 꼬리가 길어서 한번 늘어지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 그 고비 지나면 아침에 눈 뜨는 것부터 달라져 p.113


입 싼 것들은 나이를 먹어도 그 버릇 못 고쳐. 그리고 꼭 옆 사람 피 보게 만들어. 절대 비밀이니까 말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고스란히 퍼트리고 다녀. 입으로 망할 년 옆에 붙어 있지 마. 같이 망해. 조심해. 이런 애랑은 친구 먹지도 놀지도 마. 나는 반대야. 248 


힘든 시기가 제일 지랄 맞은 건 그때 좋은 걸 많이 잃게 되는데 뭘 잃어버리는지 당시엔 모른다는 거야 




맞다. 내 고민은 결국 들어주는 사람과 이렇듯 살뜰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풀고 다스릴 사람은 '나' 밖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보살펴야 한다. 때때로 여유를 찾고 여유가 없는 와중에라도 그런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걸. '온전히 즐길' 시간을 조금이라도 찾을 필요성을... 조금 더 느껴버리고 만다. 그래야 그녀의 말처럼. 어떤 굴곡이 와도 또 기운 차릴 수 있을 것 같기에. 




사람은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집중적으로 온전히 즐길 시간을 가져야 돼요. 내 고민 다스릴 사람은 나밖에 없거든. 내가 해서 막 신나는 거, 재밌는 거, 좋은 거를 찾아. 그리고 그걸 아침, 오후, 밤, 새벽 언제 할지 정해.  그래서 밖에서 사람 구실 하느라 이리저리 치이며 사느라 구깃구깃해진 나를 좀 반듯하게 펴보세요. 그럼 인생에 어떤 굴곡이 와도 다음 날이면 또 기운 차릴 수 있을 거예요. 

p.355



다시 일어서서 태양을 바라보며 고개 숙이지 않을 용기를.



너무 큰 위로를 받아버리고 만 선물 같은 책. 

이 책을 건네고 싶은 두 사람이 문득 떠올랐다. 나의 지랄 염병 같은 마음조차도 한때 줘서 미안했던 그들을 여전히 나는 사랑하기에... 아마 수미 선생님의 음식과 닮았겠지 싶었다. 뭔가 바라지 않아도 마냥 주고 싶은 마음, 그건 결국 '사랑' 일 테니까.... 




#잘 먹고 잘살고 잘되지자 염병. 인생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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