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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10. 2020

아이의 마음으로 산다면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다가...

인간사에는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라. 

유일한 선은 앎이요, 유일한 악은 무지이다. 


- 소크라테스 - 





이틀째 친정에 있는 둘째와의 페이스톡을 마치고 우리는 산책을 나갈 준비를 했다.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고서. 비가 그리 많이 내리진 않았지만 분명 날이 흐렸음에도 기어코 나가고야 말겠다는 5세 아들의 들뜬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미소였으니. 아이의 그 모습은.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은 설렘이었고, 나는 잠시 그 설렘이 부러웠다. 



비가 내려 바닥에 고인 물 구덩이만 찾아다니는 첫째와 아이스크림집에 도착했으나 

아쉽게도 문은 닫혀 있었다. 서운해할까 싶어서 아이를 쳐다봤더니 의외로 담담한 아이가 보였다. 그대로  문 옆에 있는 뽑기 상자로 관심을 돌리며 장난을 치던 첫째. 잠시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슬그머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3월에도 싸늘한 바람, 흐린 날씨, 닫힌 아이스크림 가게, 그 무엇도 아이와 나의 미소를 막진 못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그런 현상들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 아이스크림 집 닫았네. 잠깐 자리 비우셨대. 있다가 다시 나올까? 

-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 서운하지 않아?

- 않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 우리 민이 많이 컸네... 엄마보다 낫네. 정말... 




바깥은 흐렸어도 아이의 날씨는 맑아 보였다. 참 다행이고 고마웠다... 



문득 아이가 많이 자란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가 금세 나처럼 어른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리곤 어떤 생각이 스쳤다. '아이처럼만...'이라는 어떤 생각을. 그 순수함만큼만, 그 단순하고 선명한 생각만큼만. 서운함 없이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담대함마저도. 모두 다... 모두 좋아 보였다. 아니 심지어는 대단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쉬이 가질 수 없는 투명함은 바로 저런 걸 테다. 더군다나 오늘 새벽부터 오전까지만 해도 나로서는, 어떤 현상을 지켜보며 디스토피아를 상상해버리고 말았으니까. 



블랙 먼데이 유가 폭락에 이어 전 세계 증시 낙폭 바다.

급기야 미국 장 개장 직후 서킷 브레이커 발동으로 15분간 거래 중단, 2008년의 위기는 별 게 아닐지도 모르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세계'가 시작되는가 싶다가 한 편의 드라마 장면을 나도 모르게 상상해버리고 말았기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스템적 붕괴로 우리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어 버린다면? 자장면 값이 100만 원이 되는 세상에서 노동으로 인한 자본력이 더 이상 시장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면?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자본가들이 아이들과 여성들과 노인들에게'만' 이용하려 한다면? 공권력과 신뢰는 이미 무너진 세상, 집에 도둑이 들어도 경찰이 찾아와서 도둑 잡는 게 아니라 댁 내 생필품을 모조리 싹쓰리 해가는 지경에 이른다면? 설국열차의 계급사회가 더 무자비하게 현실로 파고든다면. (너무 나갔다.... 소설은 따로 쓰기로 한다) 



디스토피아라 해도 시간은 멈춤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잔인하고 누군가에겐 호재일 수 있는...'시간'의 마법..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아주 진지한 생각이 밀려오는 날. 

아이와의 짧은 산책에서 어떤 답을 얻고 만다. 아이의 마음으로 산다면 그것이 답이 아닐까 하고. 아이는 바로 당장,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좋아한다. 좋아하는 대상이 곁에 있으면 행복해하고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부재를 궁금해하며 그를 기다린다.  '아빠 언제 와' 하고. 



겨울 같은 세상일지라도, 아이처럼 깃털 같은 마음으로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어쩌면 이 디스토피아가 곧 도래할 것만 같은 요동치듯 급변하려는 세상 속에서 어른의 몸으로 사는 우리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다른 여러 핑계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당장 나부터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손 빨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쩌겠는가' 싶은 알량하고도 슬픈 생각은 여전히 남겠지만. 그럼에도 말이다. '읽고 쓰고 사랑하며 사는 오늘'을 더 기억하려 한다.. 



곁의 사랑들을 지켜내기 위해 살고 있다는, 이 선명한 방향이 부디 흐릿해지지 않기를 

다시금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어디로 방향을 잡고 가야 할지를. 무엇을 지켜내고 무엇에 집중하고 싶은지를. 첫째와 집까지 걸어오며 오늘도 새벽 출근을 불사하는 그이에게 잠깐 아이의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안부를 덧붙이며 나는 메시지를 보냈다. 



새벽에 해 뜨는 거 보고 해 지고서야 돌아오는 그가 새삼... 안쓰러워서 눈물이 나려 했다.... 



'고맙다' 고. 당신이 애써줘서. 이렇듯 애쓰며 살아줘서. 

집에 있다 보니 새삼 배우자에게 이런 마음의 잔정이 생기는 중이다. 물론 그럼에도 결혼 9년 차에 사랑한다는 말은 도무지 쉽게 나오지 않게 변한 것 또한 사실이지만. 어쨌든.  퇴사'당한' 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댁 내' 라는 환경설정에서 약간씩의 EXIT을 계획하고 마는 어쩔 수 없는 나 이지만...




#오후_단상 

#그나저나_요즘_온나라가_들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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