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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18. 2020

바이러스의 최전선에서

슈퍼버그, 한 의사의 기록물  

병원에서 기다림으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건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한 환자를 진료하고 바로 그다음 환자를 진료하고, 연속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급히 점심을 먹으면서 전화 회의를 하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임상시험에 환자를 등록시키는 일은 크게 다르다.


그 과정은 느리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세트장에서 자신이 출연할 장면을 기다리는 단역 배우처럼

행동에 들어가지 못하고 맴돌며 흘려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액션' 소리가 들리기만 고대한다.


- 슈퍼버그 -






온 세계가 바이러스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이다. 

중국발 코로나 19 사태가 한 달여 넘게 지속 이어지고 있지만 아랑곳없이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눈에 드러나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코로나 19 방역의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라 볼 수 있다. 미디어를 가만 살펴보면 쉽게 그들의 행보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건강 보다 곁 이웃의 건강을 위해 헌신하며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일종의 숨은 영웅들이랄까. 



슈퍼버그, 맷 매카시, 흐름출판, 2020.02.24.



그런 면에서 동 출판사의 '깃털 도둑'과 같은 '에픽' (에세이나 픽션 같은 책)을 연상케 한다. 

의사로서의 작가는 '슈퍼버그'의 위협 속에서 그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과 함께 '항생제 임상시험'이라는 일상을, 아울러 그 안에서의 마주할 수 있는 '생사'의 시간마저도 - 감염병을 앓는 소녀라든지 911 테러 당시의 현장을 사수하던 소방관이라든지 - 철저히 기록으로 남겨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우리에게 그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한데 어찌나 소설 같던지... 문체의 영향이려나. 필력이 가히 의사라곤 짐작되지 못할 정도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를 일이지만. 





척탄병에서 위생병이 된 도마크는 이송된 부상병을 분류하고, 콜레라 환자를 격리하고, 헛간에서의 수술이 도움이 될 수 있는 덜 심각한 부상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전사자와 죽어가는 병사를 공동묘지로 옮기는 일도 했다. 울창한 그 숲 속에서 도마크는 불로뉴의 플레밍과 마찬가지로 유산탄 상처가 곪아가는 것을 목격했고, 그 경험은 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p.51



'중요한 건 연구계획서야.'

월시 박사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그의 연구실에서 달바 임상시험에 대해 논의하려던 참이었다. 우리가 받을 철저한 심사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치명적인 감염을 치료할 약을 병원에 도입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실험의 모든 측면을 명확히 밝혀야만 심사 대상으로 고려될 수 있었다. 그러고도 임상시험이 승인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것은 월시가 즐기는 일이었다. 도전에 이끌리는 그는 치료가 까다로운 환자의 사례와 복잡한 임상시험에 달려들었다. 그는 빈 메모지를 가리키며 끼적이기 시작했다. p.69 




책의 띠지에 나와 있는 분과 흡사한 이미지를 찾았다... 




인간은 보통 자신이 아는 것만 안다고 생각하고, 아는 세계 안에서만 살아가게 마련이다. 

의료계통에 종사해 본 적도, 사실상 그쪽 세계에 여전히 무지한 나로서는, 사실 이 의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들을 기록해 오셨는지 체감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문장을 통해 그가 전하는 기록물 속 대화체를 넌지시 읽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동 출판사의 세간의 주목을 한껏 받았던  '골든아워 (이국종) '의 미국판 버전을 살짝 읽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피데로콜 제조사 대표와의 만남을 끝내고 고무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분명히 연구에 열의를 보였고 새로운 연구에 자금을 지원할 방안도 몇 가지 제시했다. 회의가 끝난 후 내 데이터를 ㅗ함해 성공적인 임상시험 데이터를 차례차례 검토하면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달바 임상시험도 순조로워서 사전 단계의 마지막 환자를 등록시켰고 첫 번째 환자에게 달바를 투약할 준비도 마쳤다 (중략) 


아직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지만, 슈퍼버그와의 싸움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을 전부 바꿔놓을 발견이었다.  p.212-3




뒤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떠오른다. 




비록 의사는 아니지만 대신 '환자' 로서 언제든 병원을 찾을 수 있는 '나'는 

의료 윤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편이다. 그랬기에 작가의 윤리적 관점에서의 실험, 그리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생각들, 그것을 이후의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전파해나가는 모습들을 간접적으로 지켜보면서... 그저 한편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여러 사람들의 고군분투가 있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내 삶이 유지된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니, 오늘의 삶이 대단히 숭고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 또한 이런 생각을 갖는 자들만 가지는.. 감정 들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인간 본성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잔혹할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는 면또한 있으니까. 




의료 윤리는 내가 달바 연구를 시작한 직후부터 관심을 두게 된 문제였다.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동의,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은 신약 임상시험, 치료와 연구 간의 흐릿한 경계 같은 윤리적 난제와 씨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중략) 


우리는 첫 번째 대화, 특히 환자가 서명할 용의가 있을 때 충분한 정보를 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그리고 임상 시험 지원자가 진단서 같은 작은 부탁을 해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임상시험 지원자들이 내준 시간 혹은 어떤 경우 체액에 대한 보상 방법을 결정하는 데 연구자가 지침으로 삼을 체계가 여전히 없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상기시킨다. 현재로서는 옳아 보이는 방식을 채택하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이야기하면 학생들은 옳음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상기시킨다.   p.335-6



달바 연구에서 예상치 못했던 난제 중 하나는 임상시험의 잠재적 지원자 가운데 다수가 노숙자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원 벤치나 지하철 안에서 앉아서 잠을 자며 그런 불편한 자세는 다리에 피가 고이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발목이 부어오르고 때때로 피부가 갈라져서 박테리아가 들어간다. 보호막이 손상되는 순간 감염이 일어나 주변 근육과 뼈, 혈관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임상시험을 통해 나는 이런 환자들 다수가 의사들, 특히 동의서를 들고 다니면서 실험적인 약품 이야기를 하는 의사들을 의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병원에서 신뢰를 쌓기란 결코 쉽지 않아서 임상시험 대상자 조건에 부합하는 환자들과 라포를 형성하는 데 애를 먹었다.   p.378



쉽지 않은 이야기로 보일 테지만 막상 읽을 때 소설 같아서 순식간의 몰입도를 주고 마는....




책을 덮고 한참 있다가 기록을 남기는 이 시점, 

대한민국은 초유의 입학일 연기와 수능일 연기가 검토되고 있는 시점이다. 4월 입학식이 기정 사실화되어 보도뉴스 되고 있고 연일 주가 폭락장과 금리 인하, 그로 인한 양적완화 등등 경제의 급 흐름들 또한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물들이는 시발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겠다. 그 안에서 또한 보이지 않는 선행들, 반대로 누군가의 선행과 대비되는 여전한 집단적 광기(?) 도 볼 수 있는 세계라는 사실에, 사뭇 진지하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골똘히 하게 된다.. 




항생제는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무엇을 항생제로 볼지 규정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모든 항생제는 특징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는가? 또는 특정한 크기인가? 암이나 통풍 같은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약이 항생제 역할도 할 수 있는가? 모든 생물체를 죽이는 산과 표백제처럼 박테리아를 죽이는 화학물질은 많지만 그것들 모두를 항생제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우리를 죽이지 않고도 감염을 치료해 주는 물질이어야 한다.  p.33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야기이지만, 알려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위협'의 그늘에 가려진 '우리' 들의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슈퍼버그'를 읽는 내내 여러 공상과학적 상상만 가득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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