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Mar 24. 2020

그림자 노동의 최후

맥주... 그리고 너희 둘....

얻은 것은 이미 끝난 것이다.

기쁨의 본질은 그 과정에 있으므로.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지 못한 날의 하루는 그야말로 분투의 연속이다. 

쉰다는 건 무엇일까... 참 우스운 질문이지만, 쌍둥이를 낳은 이후 나는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가임기를 거쳐 출산에 이르고 그 생명들을 기르며 일터를 유지하려는 고군분투의 시간들, 심지어는 일을 그만두었음에도 쉬는 것이란 쉽게 허락되지 못하는 일상에 치이다 보면 하루 종일 어떤 찐득한 고통이 내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그 고통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강한 동력이 되어 주며, 나는 가끔 생각하곤 한다. 제발 글을 쓰지 않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나로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은 연속으로 나를 찾는다. 

엉덩이를 붙이고 뭐를 좀 할라 해도 아이들의 사랑(?)은 끊임이 없다. 아침 점심 저녁은 기본, 중간중간 입이 심심하지 않게 챙겨야 하는 간식, 집안에만 있기에 에너지 발산이 되지 않으면 도저히 참기 힘든 아들들의 바깥 외출, 그러고 나면 어느새 반나절은 훌쩍 지나가 있다. 안전을 위해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액티비티들, 아들 둘 사이의 거친 장난과 싸움 중재, 그 외 소소한 생리적 욕구들의 모든 받아 챙김들, 씻기고 먹이고 놀리고 대소변을 코칭하고 등등등. 



쉰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석양, 책, 그리고 맥주...... 



누군가의 심신 에너지를 그야말로 갈아 넣어야, 누군가는 살 수 있다는 걸. 

나는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의 신생아 육아 시절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고 진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 쳐내며 살아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좋아졌고 괜찮아졌다 싶어도 여전히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감과 괴물이 되고 마는 분노의 한계치는 이미 치트키를 써버린 듯한 기분이다. 영유아기의 과정은 나로선 쉽지 않은 시절임은 분명하지 싶다. 고통이 밀려오는 순간 키보드 위에 손을 얹어 뭐라도 써내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을 아직도 스스로 발견하고 마노라면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의 말이 내내 머릿속에 맴돈다. 

'그림자 노동'이라는, 대가 없는 노동은 임금노동이라는 본체에 붙은 그림자와 같다는 의미에서 나는 이 4인 가족 구성원의 가계를 지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걸 애써 인정하면서도 이런 '노역' 이 어디 있을까 싶은 얄궂은 생각에 괜스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중이다. 보수의 유무를 떠나 임금 노동을 철저히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는 그림자 노동의 주인공들의 가려진 '그림자' 같은 이면은 어떨까 싶어서. 



때때로 나라는 꽃은 자꾸 시들어가는 느낌을, 지워내기가 쉽지가 않다.... 치이다 보면....




'가정'을 지키기 위한 그림자 노동의 주인공들은 행복할까. 

행복한 '주부'가 물론 더 많을 것이고 사실 많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그러나 나는... 절대 그 부류로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무리 개인의 의지와 정신 승리에 의지하려 해도 결국 '나'라는 개인이 추구하는 욕망과 충돌하기 십상이기에. 하다 못해 최소한의 쉼 조차 허락되지 못하는 어떤 돌봄의 시간을 맞이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결국 모성애라든지 숭고함이라는 의미부여에 정신을 맡긴 채 내가 아닌 타인들을 위한 봉사와 돌봄이 주된 24시간의 활동 방식이 바로 그림자 노동이라면, 나는 그게 정말이지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 어떤 짧은 찰나의 기쁨을 느끼며 유지되는 노동 같아서, 슬프다. 그런 순간들이...




"매 순간 느끼지는 않겠지만, 고통 없는 상태가 여러 날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얻은 그것을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그 고통을 무디게 하거나 유배시키는 요령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 착한 여자의 사랑




고통스러웠던 하루 끝 그림자 노동의 최후에 남는 건 이 두 가지다. 맥주와 아이들....

결국 이 두 가지로 인해 이 일상은 반복되며, 그것들 '덕분에' 내적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기도 하며 아울러 그 때문에 어떤 고통을 느끼고 슬픔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진실이기도 하다는 걸, 그는 알까.... 절대 모를 일이다. 내가 아니고서야. 



이 시간도 훗날의 그리움일 것임을 알면서도.....



맥주 500ml 한 캔을 단 두 번에 들이켜 마시며 나는 마음속으로 신께 빌었다.

이 시간도 흐르고 나면 아쉬워할 추억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어질러진 거실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신께 고백해버렸다. 이 갇혀버린 쌍둥이집이라는 섬에서, 나는 때때로 일탈을 원해버리게 되었다고. 기능인과 역할적 책무와 소임을 다하는 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나를 좋아해 주는 누군가와 이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그러나 이런 도덕적이지 못한 생각의 경단녀와 사랑에 빠질 사람은 결국 이 세상에 단 두 사람, 보물 같은 존재들.... 나의 아이들이라는 것 또한 안다. 그럼에도, 그런 '착한 여자의 사랑'에 대응해 줄 상대가 나타나 함께 맥주를 마신다면, 나는 그때 울지 않겠노라고. 마음에게 말해버렸다. 



눈물을 안주 삼아 들이켜마시는 맥주가 맛있을 리 없을 테니까. 

다음에 마실 땐 울지 않을 거라고. 꼭... 








#오늘따라 지쳐서 미안했다 애들아... 사랑... 한다.....



너희 둘을 얻었으니, 이미 내 삶은 이로서 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셰익스피어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 이 저질체력에 밀려오는 몹쓸 감정은..... 오늘로서 마음에 묻어두기로...


작가의 이전글 치매에 걸려도 일상은 계속될 테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