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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28. 2020

고요함, 그것은 내 영혼에 건네는 최선의 선물

스틸니스 

명료한 정신과 바른 영혼이 서로 협력하면 깨지지 않는 평온함과 탁월함을 모두 얻을 수 있다. 

눈으로 봐야 할 중요한 것들을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일은 마음과 영혼으로 해야 한다. 


- 스틸니스 - 






나는 내가 꽤 차분하고 고요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틸니스' 의 참된 형태에 대한 일종의 '공부'를 하고 나니 그 생각은 지극히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참담함을 안겨 주었다. 이제라도 알게 되니 다행이지 싶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내면의 '분노'라는 고삐 풀린 망아지를 쉬이 재우지 못하는 나를 요 근래 자주 발견하고 마노라면 어딘지 모르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한창이라는 무력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아직도 철이 덜 든 걸까 싶었고... 아직도 괜찮은 어른으로의 길은 멀기만 한 것 같기도 하다. 



스틸니스 (원제 : Stillness is the Key) 라이언 홀리데이, 흐름출판, 2020.03.18.




퇴사 이후, 가사와 육아와 살림 노동이 최우선으로 자리 잡혀버렸다. 

급작스러운 변화 때문이었을까, 나는 요 근래 부쩍 화를 자주 내는 편이다. 심각한 건 그 화를 내뿜고 마는 대상이 공교롭게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둘째... 나의 괴물 같은 본성을 자극하고 마는 귀여운 훼방꾼... 도저히 아이의 찢어질듯한 비명소리 나 칭얼거림, 일어나자마자 '어린이집 안 가, 엄마 미워, 아이스크림 줘'라고 하는 떼씀의 연속은 결국 나로 하여금 내면의 고삐 풀린 망아지를 재현시키고 만다. 마음의 혼란스러움과 뜨거움은 결국 밖으로 표출된다. 고요함을 잃어버리는 건 그렇게 순간적이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도 흔들리지 않는 것. 흥분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 

반드시 들어야 할 소리만 듣는 것. 

안팎으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동양에서 말하는 도와 고대 그리스 철학과 신학에서 말하는 로고스를 활용하는 것, 불교, 스토아 철학, 에피쿠로스 철학, 기독교 힌두교를 모두 통틀어 보더라도 최고선이자 탁월한 성과, 행복한 삶의 비결로써 내면의 평화인 스틸 니스, 즉 내면의 '고요'를 숭상하지 않은 철학의 학파나 종교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p.18




가벼워지고 싶다는 생각... 어쩌면 그것은 아주 조용한 내 영혼이 내게 건네는.. 절실함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흥분하며 급기야 분노를 표출하고 만 순간 이후의 시간은 

평온하지 못한 마음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된다. 분노는 그렇게 무서운 힘을 갖는다.  일상의 행동에 긍정보다 부정의 시선을 주게 만드니까. 표정은 일그러지고 목소리엔 쓸모없는 힘이 들어간다. 악센트는 커지고 웃지 못한다. 분노하는 엄마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 만무하다는 걸 알면서도. 푹 꺼진 한숨을 쉬고 마노라면 그런 못난 나의 마음을 간신히 붙잡게 만드는 것은 책, 그리고 글, 그리고.... 무엇보다도 첫째 아이의 유순한 토닥임, '엄마 침착해'라는 그 대단한 목소리... 첫째 둥이는  '스틸 니스'를 잘 유지하는 것만 같다. 아이가 때로 나의 어른임은 분명하지 싶다. 




분노는 역효과를 낳는다. 여기서는 격정의 불꽃을 터뜨리고 저기서는 주변의 무능함에 폭발한다. 분노가 순간적으로는 원초적 동기를 발산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도감을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야기하는지에 대해서는 헤아려본 적이 아마 없을 것이다. (중략) 후회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노에 이끌려 행동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은 고요할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로막고 자신의 능력과 목표를 줄어들게 하고 만다.      p.197-8




'스틸니스'는 고요함을 말한다. 침착하고 허심탄회한 공의 상태

고요함으로 인해 우리는 내면의 명료한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고요해야 비로소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크게 동의한다. 한편으로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잘 죽어간다는 것의 다른 말이니까. 나는 언제나 '죽음'을 생각한다. 잊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결국 하루 산다는 건 하루 죽음으로 더 가까이 간다는 뜻일 테니까...  그렇게 매 순간에 집착보다 평안을, 분노보다 잔잔한 기쁨을 주는 것은 결국 '고요함' 뿐. 결국 고요해야 비로소 잘 살 수 있다는 것... 




현재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충분히 시간을 가져야 한다 

조용히 앉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것에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주위의 조언이 우리의 신념에 반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당황하지 않고 심사숙고해야 한다. 


고요야말로 탁월한 성과를 위한 핵심적인 방법이다. 힘주어 꽉 잡고 있는 것보다 느슨하게 잡고 있을 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더 큰 통제력이 생길 것이다. 더 이상 생존을 위해 활을 쏠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술의 필수 기술은 변함없어 보인다. 집중, 인내, 호흡, 집요함, 명석함, 그리고 무엇보다 내려놓는 힘.      p.108



고요해지려면 고독을 즐겨야 한다. 혼자의 시간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오히려 그 시간은 축복이다.




요즘 세상은 급히 변해버린 것만 같다. 

불현듯 다가온 바이러스의 시대,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전쟁 직전의 분위기를 느낄 정도의 거리에 사람이 없으며 가게는 텅텅 비어 있다. 증시는 연신 변동폭이 심하고 공포 지수는 들쭉날쭉이다. 유가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전 세계가 들썩인다. 이 시간,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건 결국 마음의 평화다. 그것은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으로 해야 하는 것들일 테다. '



행복보다 불행에, 만족보다 불만족에, 절제보다 과욕에 익숙한 우리들일 테니까.

현대인의 영혼은 지치기 쉽고 고요보다는 시끄러운 잡음이 가득한 시대에 놓여 있다. 마케팅, 브랜딩, 영업, 판매, 신기술, 끝없는 개발, 부자, 성취, 소유, 욕망... 온갖 것들이 즐비하게 머리와 마음을 정복하고 마니까. 그럴수록 반대로 잘 살고 잘 죽고자 하는 현자들은 고요함을 택한다. 아울러 그들은 힘들고 시끄러운 관계 속에서도 비로소 내면의 고요를 그 덕분에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된다.  '스틸니스' 가 말하는 '정신, 마음, 몸' 이 세 가지의 고요를 그들은 이미 현실 안에서 실현시키고 만다. 결국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 튼튼한 '철학'을 가진 '철학자'의 삶을 살게 된다. 누가 아랑곳 하든 말든, 그들의 세계는 보다 굳건해진다. 그게 바로 흔들리지 않는 '사유하는 인간' 으로서의 삶이지 않을까 싶고...




철학자 나심 탈레브의 말이 딱 들어맞는 까닭이다.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믿음은 신이 위대하다는 게 아니라 신이 우리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이다. (중략) 


믿음이 중요한 까닭은 이를 통해 우리가 머리를 비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실의 관점에서 차분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높은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을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은 이것이다. '그 존재'가 당신 마음속에 들어가도록 하라. 옳은 말이다. 우리의 지성과 직접적인 관찰 경험만을 절대적인 판단 근거로 삼지 말고 우리 너머 더 큰 존재를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p.181





나의 세계는 요즘 다시 '육아'라는 전쟁터에 놓인 것만 같다. 

그러나 이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이번 생의 업을 그대로 짊어진 채, 도망치고 싶은 순간의 나를 일순간 붙잡는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고 생각을 한다. 이 시간도 훗날 그리워서 사무치게 슬퍼할 수 있는 시간 이노라고. 그러니 후회를 덜 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웃어야 한다고. 그렇게 아이를 감싸 앉아야 한다고. 생각에는 힘이 있는 걸까? 아주 잠깐, 거친 분노의 물결이 닥치려 할 즈음에, 우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대신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이 생각을 한다. 그리고 고요하려 노력한다. 고요함이란 이렇게 애를 쓰며 노력을 해야 겨우 붙는다. 그런 것이 참된 고요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나는 신이 아니니까. 다만 아이와의 관계, 이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이제 나로서는 분명 생의 큰 '가치' 이자 '의미'인 것만은 선명하기에. 그 '믿음' 이 있기에... 




부유해지고 유명해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당신 삶 속의 누군가에게 부모나 자식, 영혼의 단짝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물론 관계라는 것은 가족뿐만 아니라 스승과 제자, 가장 친한 친구 등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그리고 일부의 주장처럼 이러한 관계가 개인의 물질적 또는 창조적 성공 가능성을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둘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p.185




아이와의 실랑이가 급속도로 잦아지는 요즘, 나는 애를 쓰더라도 '고요해지기'를 택한다. 

결국 고요하고자 하는 이 강한 의지에 믿음을 보태볼 뿐일 테다. 믿음... 그것은 요즘의 나를 일으켜 세우는 단 하나의 희망, 단 하나의 치트키인 것만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요할 수 있다는, 우울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다시 활짝 웃을 수 있다는,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다시 더 좋은 글을 써낼 수 있다는... 그런 '믿음' 들은 결국 '나'를 온전히 '나'로 살게 만들고 마는 '유일함' 이기에.. 



명료함, 잔잔함, 상냥함, 고요함, 정신, 영혼, 몸

이 단어들을 기억하겠다고, 나는 오늘도 강하게 맹세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주고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며... 



해가 지고 하루가 다 지나갈 무렵에 나 고요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미안한 엄마는 눈을 적신다.... 토끼눈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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